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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通

Movie & | '햄릿', 1948

영화에 녹아든 연극론


 

 

셰익스피어 원작의 햄릿을 영상화한 작품이 80편이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햄릿의 대중적 인지도나 인기는 대단하다.
원작의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해서 웬만한 연출가가 아니면 손댈 생각도 한다고 하니,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대학로 등지에서 연극으로 수없이 많이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장기공연으로 대성공을 이룬 ‘락햄릿’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서양 영화계에서 셰익스피어의 가장 전통적인 해석자라고 하면 로렌스 올리비에를 흔히 꼽는다.
세기의 대배우로 존경받는 배우 중 한 명인 이 로렌스 올리비에의 작품을 접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저런 논평들에 대해서 필자가 동의한다거나 혹은 거부한다거나 하는 주관적인 의미는 없다.
다만 “그렇다더라”라는 말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또한 로렌스 올리비에의 작품이 햄릿을 영화화한 그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상당히 연극적으로 잘 만들었군”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정말 “셰익스피어 시대에 공연되었을 햄릿이 아마 저런 모양이 아니었을까?”란 상상까지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고전적인 무대와 의상, 배우들의 대사까지 모든 것이 말이다. 배우들의 독백과 대화들이 굉장히 연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연극적이라는 말은 ‘무대에서의 감정표현을 가장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뜻으로, 이를테면 마음 속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다거나 풍부한 비유법의 활용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카메라의 이동이다. 흔히 보는 영화적인 연출에서 벗어난 것이 이 영화를 분명히 인상깊게 만들어준다.
그것은 바로 장면의 연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흔히 한 장면이 끝나면 감독이 “컷”이라고 외치고 카메라가 끊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이 별로 없다. 실제 연극에서 관객의 시선이 끊길 때가 암전이 되거나 장막이 내려올 때를 제외하곤 없듯이 이 영화에서도 카메라의 시선이 끊기는 경우는 막이 바뀔 때를 빼고는 별로 없다. 커다란 덴마크의 왕궁 세트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카메라가 계속 이동하면서 각각의 공간들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보인다. 중간에 아예 필 름이 끊기는 부분은 당시에 썼을 필름테이프를 다 돌려서 새 걸로 가는 도중에 생긴 일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 본다. 배우들이 등장하고 퇴장하는 부분도 별로 없다.
카메라가 이동하면서 인물을 자연스럽게 등퇴장시켜버린다.
즉, 우리가 실제로 연극 볼 때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관객은 객석에 앉아서 무대에 등퇴장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이들의 연기를 지켜본다. 영화에서 관객의 시선은 카메라에 해당한다. 다만 연극이 2차원으로 무대의 한 방향만을 바라봐야 하는 한계가 있다면 햄릿은 영화라는 매개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관객의 시선을 3차원으로 확장시켜준다. 그토록 집요한 카메라의 시선이지만 그 사각이 또한 효과적으로 계산돼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거트루드 에겐 보이지 않고 햄릿에게만 보이는 아버지의 환영을 특수효과 하나 없이 만들어낸다.
내용이야 수없이 봐온 햄릿이고 그 중 한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지나치게 화려한 촬영기법이나 연출 없이도 그 예술적 진지함과 풍부한 연기만으로 햄릿이라는 작품에 상당히 몰입할 수 있게 해준 그런 작품이다. 괜히 군계일학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홍훈표 자유기고가 l exom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