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기고|융합의 시대
COVER STORY
기고|융합의 시대
사람‧사회 중심 융‧복합 지향해야
복잡한 기술보다 감성에 맞는 제품이 성공 불러
바야흐로 융합과 통섭이 대세인 시대다. 한 분야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깊이를 더함으로써 전문가가 되고 그 전문성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고 분석하는 것이 지난 백년간 학문분야를 이끌어 온 도도한 역사적 흐름이었다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융합과 통섭을 통한 새로운 해법을 이야기한다. 과학기술분야에서 이러한 노력은 특히 두드러진다.
가장 기본적인 과학 분야인 화학과 물리학이 서로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학문분야인 나노과학을 자리 잡게 하고 바이오와 그린이 융합하는가 하면 생물학과 IT가 만나 새로운 신약개발의 길을 찾는다. 비단 기초적인 학문분야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술간 융합을 끊임없이 추구해왔다.
2000년 이후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단어가 융합이라고 할 만큼 융‧복합, 통섭은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사업화를 전제로 하는 연구개발 분야의 융?복합 이슈는 무엇일까?
투자 대비 성과 없는 시장창출 효과
경기도는 중앙정부와 함께 많은 과학기술연구과제를 개발하고 지원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에는 경기바이오센터,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나노소자특화팹 등을 잇달아 지원 개소 하는 등 기술 간의 융‧복합에 많은 관심과 투자를 집중하였다. 당시에는 IT/BT/NT를 융‧복합하여 새로운 미래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연구개발을 위한 가장 중요한 아젠다였고 미국, 유럽 등에서도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약 10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투자자들이 기술의 융‧복합에 대한 시장창출 효과를 분석한 결과 막대한 재원의 투입에 비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한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엄청난 투자를 받았던 나노‧바이오관련 벤처기업들이 폭발적인 시장창출은 하지 못한 채 사라져갔고 몇몇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IT/BT/NT기술 융?복합 연구로 축적된 연구개발의 인프라 자연스럽게 주제를 그린,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옮겨갔다. 유가인상과 지구온난화문제로 인해 집중적인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풍력발전, 태양광패널, 연료전지, 전기자동차 등 녹색신재생에너지 분야의 기술들도 대표적인 융‧복합 기술로서 지난 10년간 많은 연구개발비가 투자되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상품으로 출시되어 신산업분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노바이오 분야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에는 경제성이나 필요성 측면에서 아직 힘겨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기술 만능 시대 지나가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체계는 100년간 지속되어온 분석적 접근 방법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다만 그 주제가 과거에는 하나의 기술이었다면 서로간의 장점을 융‧복합 하는 기술로 바뀌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실제로 그간 많은 기업들이 10년 후의 시장을 바라보고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입하여 새로운 기술을 선점하는 방식의 운영을 해온 것이 사실이며 1990년대 까지는 이러한 기업들이 세계경제를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경향에 큰 변화가 생겼다. 확보한 기술들이 미처 시장을 형성하기도 전에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퇴출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10년 후 성장을 이끌 연구개발도 중요하지만 이제 생존을 위한 1~2년 후의 시장에 적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기술개발 이전에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이러한 역량을 키워내는 혜안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시장의 상황은 경이적이면서 또한 매우 절망적이기도 하다. 기술력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기업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위기를 맞고 매각되는 일이 허다해졌다.
통신업계 기술력으로는 최고를 자부하던 모토롤라(Motorola)는 구글에 매각되었고 세계최고 휴대폰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던 노키아(Nokia)는 시장 퇴출 상황에 몰려있다. 일본의 대표적 IT기업 소니(SONY), 파나소닉(Panasonic), 닌텐도(Nintendo)가 연일 적자를 기록하며 퇴출 위기에 몰려있고 어느 사이 소규모 오디오용 기기를 판다고 생각하던 애플(Apple)이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등극했다. Apple의 융?복합 코드는 나노도 IT도 바이오도 아니었고 소비자가 좋아하는 디자인, 소비자가 좋아하는 콘텐츠, 소비자 편의성을 위한 기술력 이런 사람중심의 융‧복합이었다.
소비자 중심 기술 개발해야 생존
이러한 새로운 시장의 변화가 연구개발 분야에도 당연히 반영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새로운 융‧복합의 경향은 바로 이러한 시장상황을 반영하여 시장중심, 인간중심의 융‧복합기술로 전환하고 있다.
많은 연구개발 과제들이 인문사회과학과의 융‧복합, 디자인과의 융합 등을 꾀하고 있지만 아직 과제의 기획조차 어려움이 많은 게 현재의 실정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아직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에서 나서서 빨리 시도해야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아직 너무나 많은 기업들이 복잡한 기술개발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고 그로 인해 성공하기도하고 부도가 나기도 한다. 물론 기술개발은 제조기업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슈다. 그러나 애플이 기술개발에 대한 노력에 앞서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대해 깊이 연구 하고 거기에 필요한 역량만을 최고로 확보함으로써 세계 1위 기업이 되었다는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이 기업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암시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술이 실제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소비자의 생각과 의견이 이 시대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반증이다. 더 이상 슈퍼브랜드를 자랑하던 기업들이 소비자를 향해 “우리제품을 사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하던 시대는 오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융?복합을 해나갈 때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다.
융‧복합 과제 발굴 적극 지원할 것
‘강한 기업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기업이 강한 기업이다’라는 명언처럼 우리 산업생태계에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들을 많이 키워내는 것만큼, 오래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을 많이 키워내는 것도 우리가 생각해야 할 명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시장중심의 융‧복합, 인간중심의 융‧복합은 우리가 지향해야할 새로운 R&D의 지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시장중심의 융‧복합이란 기술중심의 융?복합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지금까지 ‘융‧복합기술이 구현되기만 하면 시장지배력을 당연히 가질 것이다’라는 개념에 맞서,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기술이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으므로, 기획 단계부터 사람과 사회에 중심을 두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를 위해서는 심리학, 진화론, 사회학, 유학, 역사학, 철학 등 인간과 사회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 먼저 이루어져야한다. 이러한 개인의 심리변화와 소비행태의 변화, 그에 따른 사회전반의 변화를 예측해낼 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수 있는 제품을 기획해낼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된다. 필요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의만 제대로 된다면 소비자를 위한 진정한 제품?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고 기대처럼 커다란 신산업 생태계의 창출도 가능해 진다.
최근 경기도는 새로운 R&D과제 수요조사를 통해 이러한 시장중심 융?복합 연구개발 과제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21세기 초반의 화두는 통섭이지만 이후의 경제변화는 시장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과 신산업 육성을 위한 창조적 역량의 확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이라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인간중심, 시장중심의 융‧복합 기술개발을 통해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견인하는 창조적 신산업 육성의 역할을 수행해주길 기대해본다.
전성태 경기도경제투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