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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通

힐링에세이 | 파리스의 사과 증후군

파리스의 사과 증후군

 

 

이웃에 사는 대학생이 배가 아프다며 필자의 진료실을 찾 아왔다. 여자 친구가 건네준 설익은 사과를 먹은 후 탈이 난 것이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는 일이다.
오래 전에 고구려의 유적지를 살피러 백두산을 들러 중국 지 안을 밟은 적이 있다. 8월 무더위에 호태왕능(광개토대왕능) 고구려의 자존심에 들떠 있다가 마을사람들로부터 지안사과 (고구려 사과)를 받아먹은 적이 있다. 물론 아직 완숙되지 않 은 시고 떫은맛이지만 고구려의 사과라는 역사적 향수에 겨워 한입 넘긴 것이 탈을 일으켜 고생한 적이 있다.
사실 사과는 황홀한 과일이다. 모든 과실을 대표하는 열매이 며 매력적이어서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곤충까지도 좋아한다. 모양은 미인을 닮았고. 아! 그 색깔과 향기는 감히 쫓아올 과일 이 없는 백과(百果) 중 왕이다. 그러니 질투를 살만큼 매혹적이 고 그 유명세만큼이나 인류 역사에 커다란 변혁을 일으키는 화 근을 내포한 과일이다. 에덴동산의 사과, 웰리암 텔의 사과, 뉴 톤의 사과들은 모두 인류의 역사를 뒤바꿔 놓을 만큼 위대한 역사들로 사과와 유관한 히스토리로 유명하지 않는가.
사과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의 이란고원이다. 공교롭게도 성서 지리학자들과 성서 식물학자들의 연구도 같은 고증이 다.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낙원동산이 곧 이 곳과 일치하고 있어 흥미로운 일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런 의미에서 사과를 먹을 때는 인류를 타 락시킨 원죄의 상징이라 하여 교회의 원 천정으로부터 들어오 는 햇빛에 사과를 쏘여 원죄를 삭힌 다음에 먹었다는 재미난 이야기도 있다. 우리들 목에 돋아난 목젖을 아담스 애플 (Adams apple)이라고 하는데 아내 이브가 건네준 사과를 막 넘기려 하는데 때마침 신이 “먹지 말라”는 소리에 놀라 넘기 지 못하고 걸려 생긴 연골의 별칭이다.
사과는 이름만큼 주술적 마력도 많은 과일이다. 뱀의 유혹으 로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후 우리 인류가 마 음을 앓으며 지금껏 방황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인류의 고통 과 생사를 가름한 사과의 사건을 단테는 <신곡>에서 “관대하 시고 인자하신 신이 지혜를 독점하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브가 유혹 당해 아담과 함께 먹었던 사과는 덜 익은 풋사과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풋사과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신화시대에 가장 격렬했던 트 로이전쟁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 전쟁의 원인도 덜 익은 풋사 과 때문이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나체가 된 세 여신 가운데 가장 예쁜 미스 트로이에게 익은 사과를 건네주도록 주신인 제우스로부터 하명을 받았다. 그 세 후보는 보통 여신 들이 아니다. 첫째는 제우스의 아내로 질투의 여신이요, 둘째 는 창과 칼로 무장한 무용의 여신, 셋째는 음해만을 일삼는 미의 여신이었다. 헌데 파리스 왕자는 미의 여신에게 눈이 반 해 익은 사과를 음해의 여신에게 주고 제우스의 비(妃)에게 풋사과를 준 것이 화가 되어 전쟁을 일으키고 마침내 나라를 망치고 만다. 그래서 지금도 파리스의 사과하면 불화와 망신 을 뜻한다.
세상사 인심도 설익은 짓으로 파리스의 사과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생각보다 많음을 본다. 설익은 짓이나 욕심 때 문에 아직 익기는커녕 열매로 맺어 있는 것을 먼저 따먹고 수 치와 망신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많이 본다. 우리 아예 수치와 망신 나아가 망국의 ‘파리스의 사과’ 풋사 과는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어떨지.


수필가 윤주홍 l inbo34@naver.com
(필자는 국문학과 출신 의사로 ’봉천동 슈바이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수필가이자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