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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通

긴 예술성의 회복

긴 예술성의 회복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명언은 영원한 진리일까?
예술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정복자 나폴레옹도 로마 에 입성했을 때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전쟁터의 처참한 시체 앞에서도 끄덕하지 않던 그가 다빈치의 미술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니 예술이 얼마나 위 대한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때 수행한 부관이 “각하께서는 저 험한 알프스 산을 넘을 때도 울지 않으셨는데 어찌하여 이 보잘 것 없는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때 나폴레옹은 어찌 참 새 따위가 봉황의 뜻을 알겠냐는 듯, “그러니까 너는 평생 부 관밖에 못해 먹지”라고 나무랐다. 그러면서 다시 부연하기를 “위대한 예술의 영토는 세월이 흐를수록 넓어져가겠지만 내 가 정복한 영토는 나의 인생과 더불어 끝날 것이 아닌가. 그 러니 저 위대한 예술 정신의 영토에 비하면 내가 정복한 이 영토는 그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이냐”며 스스로 움츠리는 자세로 눈물을 흘렸다.
오로지 침략과 살육 밖에 모르던 정복자가 이와 달리 전쟁 중 에도 괴테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품안에 넣고 다 니며 읽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서정성 곧 예술성이 엿보인다.
이러한 영웅적 기상과 인간적 면모에 반했던지 괴테는 송시 (頌詩)를 써서 바쳤고, 이후 도에 넘치는 침략양상에 송시를 취 소했다지만, 베토벤도 영웅 행진곡을 만들어 바치려고까지 했 다. 지금도 파리 박물관에 전시된 미술작품 중에는 나폴레옹이 로마에서 가져온 것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정부가 반환 청구를 못하는 것은 당시 나폴레옹이 미술품을 강 탈, 약탈한 것이 아니라 작품마다 기증서가 구비되어 있어 법 적으로 반환 청구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위대한 예술의 가치를 모르고서야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셰익스피어, 괴테,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명작이나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명곡을 읽고 들을 때 세월이 흘렀다 해서 그것이 낡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퇴색되기 보다는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있는 깊은 영감의 느낌을 받는 것은 그것이 모두 우리 인생의 심오한 본령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폴레옹의 말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그 위대한 예술의 영역은 더욱 더 넓어질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예술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부러운 존재라 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미미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 가능성 하나로도 부러운 존재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시절이 하수상해서 그런지 오늘의 우리 예술인들은 아무래도 너무 움츠리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위대한 예술이 어찌 평안과 안일 속에서만 탄생할 수 있을까. 위대한 예술이 비싼 희생의 대가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스스로 값싼 흥정거리로 전락해가는 오늘의 예술 풍토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더러는 자신의 예술이나 문학을 발판으로 스스로 정치 속으로 빠져들어 가려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상업주의 예술로 영원성 따위는 아랑곳없이 일과성(一過性), 일회성(一回性) 예술로 치달리고 있으니, 결국 오늘날의 예술가는 긴 예술이 아닌 짧은 예술에만 급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아있는 예술의 본질은 인간성인 사랑과 영원성 곧 영혼이 잠존해 있어야 하리니 곧 예술인의 정신적 치유 회복이 예에 있다 하겠다.

수필가 윤주홍 l inbo34@naver.com
(필자는 국문학과 출신 의사로 ‘봉천동 슈바이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수필가이자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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