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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역사기행 | 광주 지수당(地水堂)

| 경기도 역사기행

 

광주 지수당

물빛에 담긴 선비들의 풍류와 멋

 

임금이 이천(利川)부터 가교(駕轎)를 타고 경안역(慶安驛)에 이르러 주정(晝停)하였다. 남한 산성(南漢山城)의 좌익문(左翼門)에 이르러 갑주(甲胄)로 갈아입었고, 수어사(守禦使)가 처음과 같이 영접하였다. 임금이 이어서 지수당(地水堂)에 나아가 대신(大臣)·수어사에게 명하여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하교하기를,
“이 당은 사면이 지수(池水)로 둘려서 제군(諸軍)이 해갈(解渴)할 수 있다. 이 당은 어느 해에 세운 것인가”?
하매, 서명응(徐命膺)이 말하기를,
“현묘(顯廟) 임자년 사이에 고(故) 부윤(府尹) 이세화(李世華)가 세운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수라는 이름은 ‘땅속의 물은 병중(兵衆)이다. 노성(老成)한 사람이라야 길하다. ’라는 뜻에서 딴 것인가?”
하매, 서명응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l 조선왕조실록 정조 3년 기해(1779,건륭 44) 8월 7일 (무오) l

▲자수당은 1672년(현종 13년) 당시 이곳의 부윤이었던 이세화가 건축했다.

 

선비들의 낚시터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때부터 꽤 큰 공을 들여 축성한 성이다. 수도 한양이 위험할 경우 임금과 조정이 옮겨가 항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피난처였기 때문이다. 인조 이후 순조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시설 확충이 이루어진 탓에 남한산성에는 숱한 건물과 사적들이 남아 있다.
지수당(地水堂)도 남한산성의 여러 시설물 중 하나다.
특이한 것은 남한산성 대부분의 시설물들이 군사시설과 관련되어 있는데, 지수당은 그 목적이 전혀 달랐다. 지수당은 인공으로 만들어진 3개의 연못 사이에 지어진 정자로, 당시 고관들이 낚시를 즐기던 장소였다고 한다.
지수당과 관련된 기록은 정조가 이곳을 방문해 이름의 의미와 건축한 사람의 이름을 묻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에 기록되어 있는 정도다. 앞의 인용문(국역 조선왕조실록, 한국고전종합DB)이 그 기록이다.

인현왕후, 그리고 이세화
사실 지수당은 남한산성을 자주 찾는 사람일지라도 그냥 지나치기 쉽다. 남한산성 광주 방향 좌익문(동문)에서 올라오다보면 도로 옆 왼쪽으로 보이는 정자로 눈여겨보기 쉽지 않다.
원래 3개였던 연못은 2개만 남아 있다. 지수당 옆의 연못은 ㄷ자 형태로 촘촘히 돌을 쌓아 만들었다. 옆에는 또 다른 연못이 있는데, 가운데 섬처럼 생긴 터가 남아 있다. 이곳에 원래는 관어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수당을 건축한 사람은 앞의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지만 쌍백당 이세화(1630~1701)다. 그는 후세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숙종 때 유명했던 인현왕후 폐비사건과 관련해 반대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인현왕후 폐비설을 듣고 상소를 올리며 가장 앞에 이름을 올렸던 그는 숙종의 노여움을 사 왕의 친국을 받았고, 귀양까지 갔다. 얼마 후 인현왕후가 다시 복위되고, 그 때 일을 크게 뉘우친 숙종은 그를 대사헌, 호조판서 등으로 중용하려 했으나 사양했다고 한다.


▲관어정 자리. 지수당 인근에 있는 3개의 연못 중 하나. 가운데 관어정이란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영춘정. 서울과 성남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오른쪽사진)
▲침괘정. 무기를 제조하던 곳이다.(왼쪽사진)

◀ 이세화 공더비. 1714년(숙종 40년) 이세화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금이 사랑했던 신하
이세화는 1652년(효종 3년)에 사마시에 합격해 생원이 됐고, 165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갔다. 이후 황해도, 평안도,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했고 공조, 형조, 병조, 예조, 이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했으며, 청백리로 선정된 임금과 백성이 아끼던 선비였다. 풍계의 충렬사에 향사 되었고 시호는 충숙(忠)이며, 고향에 충신정문이 세워졌다.
지수당은 1672년(현종 13년) 당시 이곳의 부윤이었던 이세화가 건축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누각이다. 정자 앞에는 1714년(숙종 40년) 이세화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공덕비가 있다.
지수당은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됐다. 경기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남한산성 내 다른 정자들로는 영춘정, 영월정, 침쾌정 등이 있다.


글 l 이신덕 기자 · 사진 l 김영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