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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에세이 | 유머가 곧 힐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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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가 곧 힐링이라

 

살다보면 잠시나마 한 줄기 소나기 같이 쏟아질 유머가 그리울 때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분위기에 알맞은 유머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해주니 말이다.
유머에는 우울한 상황을 유쾌한 분위기로 전환시키는 재치가 있어야 하겠다. 하지만 상황이나 분위기에 알맞은 유머의 발상을 떠올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남다른 기지의 발휘가 요구된다. 너무 호들갑떨지 않는 여유로운 마음 빛, 꾀바름보다 진실로 다가오는 표정….
기지란 어디까지나 세련된 재치여야 한다. 그 사람의 평소 고매한 인격과 교양이 수반되어야 하겠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예의가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우러나오는 슬기가 유머에까지 이어지는 자라면 참으로 품격을 지닌 사람이 아닌가 싶다.
선조宣祖 때 오성대감 이항복은 어릴 때부터 뛰어난 기지와 유머의 소유자로 전해온다. 그 재치가 하도 뛰어나기에 한번은 임금이 오성대감을 시험해보고자 했다. 사전에 신하들과 의논한 임금은 내일 아침 조회 시간에 모두 계란 한 개씩을 가지고 나오도록 했다. 꿈에도 모르고 있던 오성이 혼자 어리둥절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어떤 임기응변이 나올 것인가 하는 기대와 호기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튿날 조회 시간에 임금이 “약속한대로 가지고 온 것을 내 놓으시오” 했더니 모든 대신들은 도포자락 속에 감추고 온 계란을 하나씩 내놓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오대감인지라 잠시 당황하기야 했지만 장난인줄 눈치를 채고는 도포자락을 닭의 날개처럼 휘둘러 홰를 치면서 큰소리로 “꼬끼오!” 소리를 지르고는, “나는 수탉이니 알을 낳지 못 하오” 했다는 것이다. 느닷없는 상황에서 그 임기응변에 오히려 어리둥절하게 놀란 것은 선조 이하 여러 조정대신들이었다.
골탕을 먹이려 들다가 역逆으로 골탕을 먹였으니 이항복으로서도 이보다 더 통쾌한 일도 없었으리라, 더군다나 그때는 남존여비 시대이라서 상대방을 암탉으로 비유해 몰아버리고 자 유머가 곧 힐링이라 신만이 혼자 수탉으로 독존한 것을 보여 준 것은 참으로 일품의 기지라 아니 할 수 없다. 이항복의 이런 촌극은 재치와 유머가 적절히 조합된 전형적인 해학의 사례라 하겠다. 또 그 재치는 매우 세련된 것이어서 비록 폭소를 자아내기는 했지만 왕 이하 그 누구에게도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대응하는 정도가 적절하여 딱딱한 조정회의 분위기를 크게 바꾼 윤활유 역할을 했다고 본다.
유머 속에 감춰진 웃음은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것이다. 유머는 늘 너와 나의 가슴 속, 속모를 곳에 고여 있다. 즐겁고 행복하고 부정보다는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곳에서 움튼다. 이것이 곧 요즘 말하는 힐링이기도 하고…. 생각만 해도 오호 쾌재인지고. 우리의 핏줄 속엔 조상들의 차원 높은 웃음 치유문화의 DNA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수필가 윤주홍 l inbo34@naver.com
(필자는 국문학과 출신 의사로 ‘봉천동 슈바이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수필가이자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