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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通

경기도 협동조합을 찾아서 | ⑥김포 과수원길협동조합

“농촌 고령화 파도, 협동조합으로 넘을 것”
체험 프로그램·천연 염색사업 바탕 관광마을로 육성



▲과수원길 협동조합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점점 더 이름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정보가 한여름 장대비처럼 하염없이 쏟아지는 탓이다. 요즘 이름은, 가던 길을 멈추고 곁눈질을 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슈퍼 모델급 미인처럼 사람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과수원길협동조합.
좋다. 아스팔트와 이기심에 지친 도시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카시아 꽃 하얗게 피고 실바람 날리는 동구 밖 과수원길’을 연상 하기에 꼭 알맞다. 하지만 8월 한여름 뙤약볕을 물리치고 과수원에 도착하니 이 같은 기대는 반감되고 만다. 엘덴과수원의 주작물인 배와 포도는 아직 과일 보호용 종이봉지도 걷지 않은 상태다.
과수원 주인인 과수원길협동조합의 윤효경(55) 대표는 “날씨 탓에 수도권 과일은 9월 중순이나 되어야 수확에 들어가니 그 때 다시 한 번 오시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준다.

농촌문제 해결 위해 뭉쳐
지난 8월 14일 수요일 오후. 김포시청 정문 앞에서 만난 윤 대표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뜨거운 여름 햇살을 벗 삼아 곡식을 일구고 과일을 따는 시골 아낙의 모습 그대로다. 시청에서 30분 가까이 달리고 나서야 도착한 김포시 하성면 양택리 역시 서울 근교 농촌의 전형이다. 마을 초입 몇몇 공장이 들어서 있고 아기자기한 논 밭에 늘어선 벼와 온갖 과실은 곧 올 풍성한 추석을 알린다.
마을에 도착한 윤 대표는 부지런히 ‘형님’을 찾았다. 바로 옆집에 사는 동서 이순옥(57) 씨는 이 협동조합의 부대표이기도 하다. 윤 대표는 “협동조합 취재를 나왔으니 부대표와 함께 인터뷰를 해야한다”며 이웃이자, 가족이자, 협동조합 동료를 챙긴다. 농작물을 손보다 부리나케 온 이 부대표 역시 시골 아낙네의 모습그대로다.
마을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30여 가구는 모두 한 가족처럼 지낸다. 윤 대표의 말 대로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들은 협동조합을 설립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경제’를 꼽는다.
윤 대표는 “최근 수 년 사이 계속 적자를 봤습니다. 농법이 바뀐 탓이지요. 농업 추세에 따라 농촌은 저농약에서 무농약, 무농약에서 유기농으로 바뀌어 가는데요, 농가는 그 추세를 쉬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표의 경우 수년 전 유기농으로 전환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농약을 주지 않으니 벌레가 많아지고 화학비료를 안 쓰니 과실이 잘다는 것이다. 그는 꼭 유기농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기도 했지만 그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유기농의 경험을 축적시키고 있다.
이곳 농촌의 문제는 ‘농법의 전환’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농촌과 동일한 또 하나의 문제가 고민거리다. 바로 고령화다.
80세 이상 노인이 수두룩한 이 마을에서 50대 중반인 윤 대표는 아직 ‘새댁’ 소리를 듣는다.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윤 대표의 막내는 이 마을에서 유일한 초등학교 학생이다.
윤 대표와 이 부대표가 협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계기는 마을의 ‘현재’와 ‘미래’ 모두와 관련이 있다. 유기농법에 적응하며 적자를 보고 있는 것은 ‘현재’요, 점점 더 늙어만 가는 고령화는 암울한 ‘미래’다. 이들은 협동조합이 이 같은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최적의 발전모델로 본다.

관광업으로 농업의 적자 보전
“체험학습이라는 관광상품을 발전시켜 농업에서 오는 적자를 보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농한기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손이 비고 농번기라 해도 주부들은 약간의 짬을 낼 수 있어요.” 윤 대표는 협동조합의 기대효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부대표는 이어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여름이나 가을철 수확기에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면 채소나 고추, 과일 등 재배한 농산물을 직접 팔 수 있죠. 우리에게는 중간도매상에 파는 것보다 이익이 많이 나고 소비자는 일반 마트보다 싸게 살 수 있으니 모두에게 이익이에요”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모든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체험학습이라는 관광사업을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을까?
윤 대표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한다. “이미 수년 전부터 체험학습장을 운영해 왔다”는 것이다. 주로 가을 수확기에 ‘과수원 체험학습’을 이끌어 오다 지난해부터는 쑥캐기, 냉이 캐기 등 새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골치 아프게 굳이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한 것일까? 이전처럼 혼자 하면 될 텐데….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니 혼자 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가을 한 철 하기도 벅차지요. 협동조합을 만들어 더 많은 마을분들을 참여시키면 프로그램을 확대해도 매달 새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고 1 년 내내 관광객을 끌어 모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윤 대표는 이미 월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3, 4월 봄에는 각종 봄나물캐기 9, 10월 수확기에는 과일따기, 12월과 1월 겨울에는 얼음놀이하기 등이다.
윤 대표는 “관광객 1인당 7,000~1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체험학습은 2012년 1,000명이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과수원길협동조합의 윤효경 대표(오른쪽)와 이순옥 부대표(왼쪽).

정부 지원 마을기업에도 선정
하지만 의문 하나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협동조합은 ‘고령화’라는 ‘미래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이 부대표는 “농사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나이가 들면 하기가 어렵지요. 그렇다고 농사꾼이 농사 안 짓고 어떻게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땅을 판다고요? 그건 안 되지요. 땅을 임대 줄 수는 있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수입이 어렵습니다. 협동조합은 노인들도 힘들지 않게 일하며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야 하지요”라고 답했다.
‘노인들을 위한 편한 일자리 만들기’가 협동조합을 설립한 또 하나의 이유인 셈이다. 윤 대표는 그 ‘일자리’ 후보 중 하나로 천연염색사업을 든다. “어려운 작업은 젊은 사람이 하고 노인은 천을 물에 넣고 슬슬 헹구는 일만 하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윤 대표는 바로 천연재료로 염색한 T셔츠나 스카프 등을 들고 와 늘어 놓는다. “이미 시작했고 꽤 팔았다”고 한다.
마을의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열쇠 협동조합. 그러나 협동조합이란 게 만들기는 쉬워도 운영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윤 대표도 그 사실을 잘 안다. 당장 체험학습을 확대하려면 시설비가 든다. 협동조합은 일체의 자금지원이 없다. 윤 대표는 이 사실도 잘 안다.
그래서 윤 대표는 또 하나의 국가사업을 기획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마을기업사업이다. 이는 마을의 자원을 활용해 공동체가 사업을 일으킬 경우 시설 자금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윤 대표는 올 초 협동조합과 마을기업을 거의 동시에 신청, 둘 모두를 얻는 수확을 거뒀다. 올해 과수원길협동조합은 정부로 부터 1억원의 사업자금을 받게 된다.
윤 대표는 “지원금은 모두 시설자금으로 쓸 계획”이라고 말한다. 협동조합의 이름 그대로 과수원 사이사이 ‘길’을 만들고 체험학습장도 새로 꾸밀 생각이다. 농산물 직판장을 만드는 데에도 이 자금은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윤 대표와 이 부대표는 처음으로 ‘협동조합’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이제 막 첫걸음을 떼고 있다. 그리고 이 첫 걸음에 마을 전체의 ‘현재’와 ‘미래’가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이재광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l jkrep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