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通

띠 마케팅-근거 없는 상술로 기업들만 배불려

<Thinking Economy>

 

근거 없는 상술로 기업들만 배불려

띠 마케팅

 

#1.

고 대리 76년생이지? 올해는 용띠 고 대리의 해네. 신성한 용의 해에 결혼하는 게 어때?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 하라구.”

노처녀 고민경 대리는 시무식날 김 사장에게 새해 덕담을 들었다.

사장님, 올해는 그냥 용의 해가 아니라 60년만에 찾아온 흑룡띠의 해에요. 와이프가 올해 둘째 출산하는데 용의 기운을 받아 아이가 크게 됐으면 좋겠어요. 고 대리도 결혼 서둘러 올해 득남하지 그래?”

박 대리는 흑룡의 해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다.

박 대리. 황금돼지, 백호, 흑룡뭐 이런거 믿는거야? 흑룡이다 뭐다 떠들어대서 애들 경쟁률만 치열해지잖아. 다 마케팅 상술이라구. 하지만 박 대리 둘째는 꼭 상서로운 리더로 자라길 바랄께.”

고 대리가 답한다.

 


유통업계 흑룡 마케팅 바람

2012년은 임진년(任辰年)이다. 10개의 천간 중에서 검은색을 상징하는 임()자와 12간지에서 용을 의미하는 진()자가 결합, 임진년은 흑룡의 해가 됐다. 그냥 용도 아니고 60년만에 한번 찾아오는 흑룡이라니 상서로운 기대감에 들뜬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기업들은 흑룡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에서는 용 캐릭터가 그려진 출산 준비물 등 유아용품이 히트 상품 리스트에 올랐고, 중량 1, 순도 99.99%흑룡 은괴도 인기를 끌고 있다. G마켓은 용띠 해 유기농 출산준비물 세트등을 내놓았고, 옥션에서도 탯줄을 검은 용기에 담아 도장으로 만든 아가 쿡 용띠 탯줄도장’, 세뱃돈에 함께 넣으면 좋은 황금흑룡지폐등이 출시됐다. 롯데마트, 현대백화점 등에서도 흑룡 막걸리, 흑룡 저금통, 흑룡 속옷, 흑룡 기념메달 등을 선보이며 흑룡을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LG상사 트윈와인은 매년 스페셜 에디션으로 띠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호랑이·토끼에 이어 총 2만병 한정 출시된 흑룡 와인도 구정을 기점으로 전량 판매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출산율 증가로 유아용품 매출 급증

띠 마케팅 특수는 특히 출산율 증가로 이어져 출산 관련 분야의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 흑룡의 기운을 받아 출산을 하면 좋다는 말이 퍼지면서 산후조리원과 산부인과, 유아 및 신생아 용품 매장 등의 매출이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황금돼지띠해와 백호해엔 출산율이 10% 정도 늘었다흑룡 해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돼 예비맘들을 위한 기획전을 여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띠 마케팅이 활발했던 2007년 황금돼지해의 신생아수는 497,000여명으로 최저출산을 기록한 2005년 대비 59,000명이나 증가했다. 2010년 백호해에는 47171명이 태어나 2009444,849명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실제로 이 시기 롯데백화점의 유아용품 매출은 2007년에는 전년 대비 15.5%, 2010년에는 11.7% 증가했다.

용인시 수지구에 사는 박미영(35) 씨는 황금 돼지띠가 좋다고 해 그때 첫 아이를 낳았다돌이켜 생각해보면 근거 없는 미신적 사상을 상술로 활용한 마케팅에 놀아나 아이 유치원 입학부터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흑룡 오히려 꺼림칙(?)한 상징

실제로 특정 띠가 복을 가져다준다는 띠 마케팅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판석 한국역술인협회 부회장은 “2007년 정해년은 붉은색을 나타내는 정()과 돼지가 합쳐져 붉은 돼지의 해이지만 중국 사람들이 붉은색을 좋아해서 붉은 돼지를 황금돼지로 바꿔 부른 것이라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흑룡 역시 그리 상서로운 동물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조선의 건국설화에서 태조 이성계의 할아버지 도조는 꿈에서 흑룡을 활로 쏘아 죽여 조선왕조 건국의 기틀이 됐다는 얘기도 있고, 용의 해인 임진년에 일어난 임진왜란도 흑룡의 해에 일어난 일로 언급한 문서 기록도 있다. 이에 따르면 흑룡은 좋은 의미가 아니다.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오행설로 흑룡이라는 개념이 나올 수 있지만 흑룡이 다른 용에 비해 신성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띠동물 민속전문가인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해마다 연초에는 띠동물의 좋은 점만 이야기 된다흑룡 마케팅은 아주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과도한 마케팅에 현혹되지 말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상술인지를 구분하는 현명한 소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현정 기자 phj@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