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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21세기 전염병 '비만'의 사회적 비용은 얼마?

지난 20세기 후반 인류 건강의 최대 적이 에이즈였다면 21세기 현재는 비만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선언했다. 비만이 더 이상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닌 사회․경제적인 국가의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기업생산성 저하, 빈부격차는 물론 건강보험 재정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는 등 비만으로 인한 직간접적 사회비용이 급증하면서 세계 각국은 비만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비만인구 향후 10년간 50% 증가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오는 2015년엔 세계 인구 4분의 1에 가까운 15억명이 비만이 된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비만을 바라보는 세계 경제적 시각’ 보고서에 따르면 비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체질량지수(BMI)다.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 30보다 크면 비만으로 분류된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체질을 감안해 ‘25 이상’을 비만으로 간주한다.

WHO는 비만 인구를 10억명으로 추정했다. 이로 인해 연간 1,700만명이 심장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비만으로 인한 심장 질환은 전 세계 사망률 1위다. 비만 인구는 향후 10년간 5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5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23.4%가 비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소득 불평등할수록 비만율 높아

비만은 왜 생기는 걸까? 보고서는 비만의 의학적인 원인으로 지방과 소금, 당분을 많이 먹는 나쁜 식생활, 앉아서 일하는 노동 문화, 자동차 등 교통수단 발달로 인한 운동량 감소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사회․경제적으로는 소득불평등이 비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사회학자인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학 교수는 2009년 출간한 <스피릿 레벨>에서 경제적 불평등 지수와 비만율의 정비례 관계를 밝혔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국민의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커 비만율도 높다는 게 윌킨슨 교수의 논리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8년 기준 통계를 보면, 불평등이 심한 미국과 영국의 비만율이 각각 34.3%, 24%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에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처럼 상대적으로 평등한 나라의 비만율은 7.7~10.7%에 머물렀다. 비만율은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 30을 넘는 인구의 비율을 뜻한다.

자유무역의 확대도 비만 심화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식량전쟁>의 저자 라즈 파텔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뒤 멕시코의 비만 문제가 심각해진 까닭을 값싸고 질 나쁜 수입 농산물과 식품이 전통식품을 대체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개도국 도시빈민들의 비만율이 급상승하고, 암·당뇨·심혈관계 질환의 80%가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 등 비서구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도 비만이 빈곤과 연관돼 있다는 증거로 제시됐다.

한국 저소득층 소아청소년 비만 급증

 

비만과 빈곤의 상관관계는 한국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은 지난 10년 사이 저소득층 소아청소년들의 비만율이 배 가까이 급증하면서 소득 격차에 따른 비만 격차가 심각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998년 저소득층(소득 수준 하위 25%)의 소아청소년 비만율은 5.0%였으나, 2008년엔 9.7%로 10년 만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전 소득계층 가운데 가장 높은 비만율을 기록한 셈이다. 반면 10년 전 가장 높은 비만율(6.6%)을 보였던 고소득층(소득 수준 상위 25%)에서는 비만율이 5.5%로 떨어졌다.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 역시 저소득층은 지난 10년 새 235kcal 증가했다. 다른 소득층에서는 줄거나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전체 소아청소년 비만율은 1998년 4.2%에서 2008년 6.7%로 늘었다. 우리나라의 성인 역시 저소득층 비만율이 24.8%에서 33.2%로 증가해, 26.6%에서 29.4%로 증가한 고소득층의 비만율을 앞질렀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소아청소년의 비만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마땅히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바깥 활동이나 운동 대신 컴퓨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햄버거·라면 등 열량이 높은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한비만학회 오상우 총무이사는 “소아청소년 비만의 68%가 그대로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비만은 당뇨병·고혈압·심장병·뇌졸중 같은 모든 만성질환의 근원인데 어릴 때 비만이 되면 그만큼 만성질환이 시작되는 시기가 앞당겨 진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강재헌 교수도 “건강 관리 비용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의 비만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소아청소년층도 예외가 아니다”며 “특히 어릴 때부터 비만하면 자신감이 떨어져 학업 성취도가 낮고 비만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취업도 힘들어져 비만과 가난의 대물림이 맞물려 돌아가게 될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비만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 급증

결국 늘어나는 비만 인구는 건강보험비용 증가 등 국가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기업 생산성 저하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며 우리나라에서 성인비만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최소 3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 국민의 1%가 앓는 ‘정신분열병’ 치료에 들어가는 직·간접 비용(연간 3조2,510억원)을 넘는 것으로, 비만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비만으로 인한 직접비용은 전체 국민 의료비의 2.2%로 이는 미국을 제외한 서구 선진국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비만으로 인한 의료비용은 전체 의료비의 5~7%를 차지한다. 미국은 비만인이 일반인에 비해 의료비를 36% 가량 추가 지출한다고 추정했다. 또 비만 근로자는 정상체중의 근로자에 비해 결근일이 연평균 2~5일 많아 생산성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기업은 비만 근로자 고용 시 1인당 약 800달러의 비용을 추가 지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캔음료 한 개에 30원 비만세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증가하자, 지난해부터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한 유럽을 중심으로 비만 식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비만세 도입이 늘고 있다.

헝가리는 소금 설탕 지방 함량이 높은 가공식품에 개당 10포린트(약 55원)의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햄버거법’을 통과시켰다. 덴마크는 2.3% 이상 포화지방이 함유된 식품에 지방 1㎏당 16덴마크크로네(약 3400원)의 세금을 매기고 있다. 청량음료와 주류에도 관세율 10%를 추가로 적용한다. 프랑스는 330㎖ 용량의 청량음료 캔 하나당 0.02유로(약 30원)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영국도 비만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비만 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국내에서도 보험연구원에서 비만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비만이 건강보험의 재정 악화, 기업의 생산성 저하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는 만큼 징벌적 세금을 부과해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비만세 도입에 부정적

한국에 비만세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정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한국은 모든 품목에 동일한 부가가치세율(10%)이 적용돼 품목별 차등 과세가 어려워 저소득층의 식품 구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고 물가상승 등의 부정적인 효과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신 비만 방지를 위한 성별·연령별 맞춤형 프로그램과 대책을 개발해 보급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어린이 비만을 초래하는 고열량 저영양 식품의 TV 광고를 어린이들의 주 시청시간대인 오후 5~7시에 방영하지 못하도록 한데 이어 학교 내 비만식품 판매도 금지하고 있다. 또 각 지역 보건소와 학교등에서도 비만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속적인 관리를 하고 있기도 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세수확대 수단으로 비만세를 논하는 것은 어렵다”며 “건강한 식생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신흥국 간 정책 공조 등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