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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COVER STORY | 기업을 살린 신의 한수1




기업을 살린 신의 한수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총합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선택의 중요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선택을 한다. ‘오늘 점심 메뉴로 무엇을 먹을까’라는 사소한 선택부터 어떤 직업을 가지고 누구랑 결혼할까 등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까지. 이런 각각의 선택이 쌓여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이는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이 존재한다.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그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하나의 선택에 따라 기업은 성장하기도 혹은 몰락하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 선택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진다. CEO라면 누구나 고민했을 법한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선택, 기업을 살린 ‘신의 한수’에 대해 알아봤다.

■ 글 l 이미영 기자 misaga@gfeo.or.kr


흥망성쇠의 기로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결정적 선택
독특한 시스템·끊임없는 투자는 기본, 시대 변화 맞춘 경영철학 갖춰야

1988년 이후 20년 이상 휴대전화 세계 1위 자리를 지켜 온 노키아(Nokia)의 몰락, 130여 년의 장수기업이면서 아날로그 카메라 필름의 세계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했던 코닥(Kodak)의 파산신청, 워크맨 신화로 한때 세계 최정상의 전자업체로 군림하던 소니(Sony)의 추락, ‘혁신의 상징’이었던 세계최대 게임회사 닌텐도(Nintendo)의 50년만의 적자 등. 최근 글로벌 경제 불황기를 지나면서 영원한 부와 성공을 누릴 것 같았던 세계 1위 기업들이 속속 몰락하고 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 숱한 기업들이 쓰러지고, 넘어지고, 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 평균수명 13년
미국 포브스지가 창간 70주년을 맞아 70년 전 100대 기업 리스트인 ‘포브스100’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쟁쟁했던 기업들의 리스트를 70년이 지난 후 살펴보니 놀랍게도 18개의 기업만이 살아남았다. 그만큼 기업의 흥망성쇠가 심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한국기업성장 50년의 재조명’에 따르면 한국 경제가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한 1955년 매출 상위 100대 기업 중 글로벌 경쟁에 처한 현재까지 100위권 안에 남아 있는 기업은 7개사에 불과했다.
1955년 100대 기업 중 CJ(제일제당), LG화학, 현대해상(동 방해상보험), 한진중공업(대한조선공사), 한화, 한국전력 등 만이 지난 2004년 100위권 안에 포함됐다. 또 1955년 1위였던 삼양사와 1965년 1위였던 동명목재는 이미 100대 기업에서 빠졌고 1975년 1위였던 대한항공은 24위로 밀렸으며 1985년 1위였던 삼성물산은 18위로 떨어졌다. 이에 반해 1975년 만해도 27위였던 삼성전자가 1위에 올랐다. 재벌들의 경우도 1964년 10대 그룹 중 삼성과 LG만이 현재의 10대 그룹에 남았다.
‘100년 기업의 조건’을 쓴 케빈 케네디와 메리 무어는 세계 기업의 평균수명이 13년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의 기업이 단명하는 이유로 외부 요인이 아니라 지속적인 혁신 실패나 학습역량 상실과 같은 내부 요인을 지적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선택
반면에 수많은 기업이 쓰러질 때 꿋꿋이 자리를 버티고 오히려 성장의 기회를 잡은 기업들이 있다. ‘위기는 늘 기회와 함께 온다’는 말처럼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승승장구하는 기업들의 성공비법은 무엇일까. 이들 기업에게는 위기의 순간, 기업을 살린 결정적 선택이 있었다.
지난 150년간 지속성장을 달성한 코닝은 유리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다. 코닝은 1990년대 말 인터넷 광풍이 몰아치자, 새로운 성장기회를 맞았다. 인터넷 광풍으로 인해 모든 통신사들이 앞 다투어 광통신망을 늘렸고, 코닝은 광통신망에 사용되는 광섬유 제품의 글로벌 1위였기 때문이다. 코닝은 보다 품질 좋은 광섬유를 생산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회사 이익의 80%가 광섬유 사업부에서 창출되었고, 기업가치도 1,200억달러에 달했다. 탄탄대로가 지속되리라 생각했지만 위기는 언제나 성공과 함께 다가오는 법이다. 2002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엔론, 월드콤 등 대형 통신 기업들이 회계부정으로 일순간 파산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인터넷 거품이 사라지면서, 수요는 더욱 빠르게 줄었다. 모든 주문이 취소되었고, 창고에는 재고만 늘어갔다. 기업가치도 전성기의 1/8 수준인 15억달러로 떨어졌다. 기업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때 코닝은 결정적 선택을 했다. 기존의 광섬유 사업이 아닌 고품질의 유리제품 발굴에 착수했다. 어떤 경쟁기업도 모방하기 어려운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 때 발굴한 제품이 대형 평판 TV에 사용되는 대형 유리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코닝의 제품은 폭발적으로 팔렸고, 2008년 성장성, 수익성, 기업가치 모두 전성기 시절을 뛰어 넘은 성과를 달성했다.

포기도 전략이다
누구나 가진 것을 놓을 때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경쟁사를 앞선 차별화된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1990년대 IBM은 높은 기술력의 제품과 서비스로 명성을 쌓았다. 특히 대형 컴퓨터의 운영체제로서 AIX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기능, 성능, 안정성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IBM은 이 사업부분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기능을 추가해도 고객들은 외면했다. 반면 경쟁사인 썬 마이크로시스템은 고공행진 중이었다. 기술 수준을 비교할 경우, 썬 마이크로시스템의 운영체제는 IBM의 AIX에 맞설 적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반 고객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기능과 성능을 제공했고, 결정적으로 매우 저렴했다. 고객들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썬 마이크로 시스템은 다소 부족한 기술력을 압도적인 편의성으로 보완하면서 승기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경쟁우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000년 1월 IBM은 AIX와는 별도로 기술력은 조금 낮지만 편의성은 매우 높은 운영체제를 출시한다. 바로 리눅스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눅스를 IBM의 운영체계로 제공하는 아이디어는 사내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품질을 지향하는 IBM의 기업문화를 거스르는 위험한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IBM의 CEO 팔미사노는 물러서지 않았다. 경쟁사 썬 마이크로시스템을 앞서려면 무엇보다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설령 기존 제품보다 충실성이 부족할지라도, 일반 고객이 요구하는 수준만 맞춘다면 문제없으리라 생각했다.
팔미사노의 예상은 적중했다. 리눅스를 탑재한 제품 덕분에 시장점유율이 1년 만에 6.7%나 증가한 것이다. 결국 2004년에는 시장 1위를 차지하며 확고부동한 입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과감하게 미래산업에 투자
글로벌 기업 듀폰은 3세기에 걸쳐 세계 최고의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의 생존 비결은 말 그대로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과감한 변태’에서 찾을 수 있다.
듀폰의 CEO 채드 홀리데이는 2004년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섬유사업을 매각하고 대신 종자회사인 파이어니어를 사들였다. 듀폰의 이런 결정에 세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섬유 사업은 나일론 개발로 화학섬유의 혁명을 일으키며 듀폰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끈 주력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사업은 2004년에도 듀폰을 이끌어가는 핵심 사업이었다.
하지만 듀폰은 급속한 기후변화가 국제 사회의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 21세기엔 식량 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 이라고 예측했다. 결국 고심 끝에 주력사업인 섬유부문을 과감하게 팔아 치웠고 대신 미국 중부 아이오아주 존스톤에 듀폰의 미래를 심기로 했다. 3,300평에 달하는 듀폰의 파이어니어 연구센터에서 그들은 가뭄에 잘 견디는 옥수수, 병충해에 내성을 지닌 옥수수, 에탄올 수율이 높은 옥수수 등 갖가지 옥수수를 키우며 미래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와 함께 듀폰은 1998년부터 7년간 무려 600억달러에 달하는 M&A를 단행,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바꿔 나갔다. 그 결과 현재 듀폰의 전체 매출 중 34%가 최근 5년 안에 개발된 신제품에서 나올 정도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의 변경은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경제가 예고 없는 급락을 거듭하는 요즘, 듀폰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수기업으로 여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 몇 십년간 캐시카우였던 기존의 핵심 사업을 ‘잘 나갈 때 접고’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미개척 유망분야를 과감하게 발굴해 집중 투자한 결과이다.
과거의 영광이 발목을 잡는 덫이 되지 않도록 미연에 선방을 날린 것이다. 이로써 듀폰은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향후에도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과감히 실행
기업을 살린 위대한 선택이란 결국 빠르게 변하는 시장의 흐름에 맞춰, 적절한 타이밍에 내린 선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해야 더 큰 이익을 얻는다”,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라” 경영 전문가들은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업이 이를 그대로 실행한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
특히 성공한 기업일수록 성공 뒤에 따라오는 막대한 부와 영예로 인해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
제록스가 캐논에게, 시어즈가 월마트에게, 노키아가 삼성과 Apple 등에게 선도적 위치를 빼앗긴 것은 이들이 과거의 영광에 도취돼 전략적 혁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은 변하는데 기업들의 대처가 점점 느려지면 결국 그 기업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1등 기업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뒤를 돌아보고 주위를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을 살린 ‘신의 한수’는 결국 변화에 맞춰 적절한 타이밍에 과감히 실행한 기업에게 주어진다.


 



장고 끝 악수
“시장 트렌드·변화 못 읽으면 必敗

애플에서 아이폰이 나오기 전, 지금의 스마트폰 형태 핸드폰을 먼저 선보인 회사가 있다. 바로 1990년대 무선혁명의 선두주자이자 20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온 휴대폰의 최강자 노키아(Nokia)가 그 주인공이다.
노키아는 아이폰이 나오기 7년 전 이미 버튼 하나 위에 컬러 터치스크린이 있는 휴대전화를 내놓았다. 당시 이 기기는 음식점을 찾고 레이싱 게임을 하고 화장품을 주문할 수 있는 등 현재의 스마트폰 기능을 담고 있었다. 이외에도 1990년대 후반 노키아는 비밀리에 또 하나의 제품을 개발했다. 인기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애플 아이패드처럼 무선인터넷 연결과 터치스크린이 탑재된 태블릿컴퓨터였다.
그러나 노키아는 이들 기기들을 출시하지 않았다.
연구개발에 엄청난 돈을 들이면서도 이 제품들을 출시하지 않았던 이유. 노키아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었다. 노키아는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에 변혁을 가져온 시점에서 오히려 스마트폰에서 일반 휴대폰으로 중점을 변경하는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
그 결과,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부진을 겪으며 대대적인 주가 폭락과 수천명 직원의 정리해고 끝에 마이크로소프트에 스마트폰 영업부를 포함한 휴대폰 사업부분을 인수당하는 굴욕을 겪게 된다.
엘롭 노키아 최고경영자는 한 인터뷰를 통해 “연구개발을 통해 개발된 기기들이 실제로 출시되었다면 노키아의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을 개발하고도 때를 놓쳐 몰락한 사례는 비단 노키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130여년 장수기업이자 아날로그 카메라 필름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코닥(Kodak) 역시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다. 심지어 1981년 내부보고서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장래 자사의 미래를 위협하는 제품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적혀 있다. 하지만 코닥은 이 기술을 상용화하지 않는 결정적 실수를 저지른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해 미래의 트렌드를 무시한 코닥의 선택은 참담했다. 최고 전성기인 1997년 회사가치가 300억달러에 달했던 코닥은 결국 지난 2012년 미국 법원에 파산신청과 함께 디지털카메라 사업에서 손을 떼야만 했다.
노키아와 코닥처럼 미래의 변화를 무시한 잘못된 선택으로 몰락한 사례는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올해 9월말 25년 만에 사업 종료를 선언한 크라운베이커리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6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던 업계 부동의 1위 기업이었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 와중에 모기업인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맞으며 어려움을 겪은 데다 2000년대 이후 SPC의 파리바게뜨와 CJ푸드빌의 뚜레쥬르의 마케팅 공세에 밀리며 시장 3위로 내려앉았다. 매출은 2010년 548억원에서 2012 년 296억원으로 반토막이 났고 손익에선 2008년 이후 매년 적자가 이어졌다. 보다 못한 크라운제과가 지난해 12월 흡수 합병했지만, 9개월 만에 결국 손을 들었다.
이러한 크라운베이커리의 실패에 대해 업계는 치열해진 시장 경쟁에다 정부의 신규 출점 제한 등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대대적인 혁신과 체질 개선이 없었던 게 패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시장의 변화를 무시한 기업의 선택은 결국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잘못된 선택은 세계 1위, 100년 장수기업도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업 환경 속에서 변화의 타이밍을 잡아 이를 실행하는 기업의 ‘한수’가 더욱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