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通

Issue & Trend | 신흥국 외환위기 오는가

인도·인도네시아 美 출구전략에 휘청
경상수지 적자 지속 등 펀더멘탈 취약… 한국은 신흥국과 차별화

 



▲인도는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대외부채 증가 등으로 외환위기 도래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사진은 인도 뭄바이 거리.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들의 외환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출구전략을 시사한 이후 신흥국 시장의 통화 가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펀더멘탈이 약한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등은 신흥시장 위기의 진앙지가 될 확률이 높다”며 “국제 금융시장의 압력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신흥국 시장의 위기 확산 여부를 판가름 짓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펀더멘탈 약한 인도 가장 우려
신흥국 시장의 대표 주자인 인도의 경제 상황은 심각하다. 수년간 8%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왔지만 올해 성장률은 5%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 대표 일간지 가디언은 “인도가 국제통화기금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최악의 단계에 와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경상적자 폭과 물가상승 추이는 심각한 수준이고, 대외부채 증가 등 펀더멘탈(경제의 기초체력)이 취약해 다른 신흥국들에 비해 외환위기 도래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인도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4.8%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도의 국가부채는 지난 3월말 기준 3,900억달러이며, 향후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 규모도 1,720억달러에 달한다. 이같은 경제상황은 루피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은행 크레디 아그리꼴은 올해 루피화 가치가 달러당 68루피대로 하락하고, 내년에는 달러당 75루피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인도의 루피화 가치는 8월 28일 달러당 68.84루피를 기록하며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9월 4일 인도중앙은행(RBI) 총재에 취임한 라구람 라잔이 시장에 유동성 공급과 금융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시행하면서 루피화는 반짝 반등세를 보였으나 다시 떨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인도 경제성장 여력 약화
해외 자금이 유입돼야 경제성장이 가능한 인도 경제는 미국의 출국전략으로 인한 외자 유출시 경제성장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 경상수지 적자가 수년간 누적된데다 미국의 출구전략까지 가시화 되면서 해외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통화가치가 단기간 급락하게 됐고, 환율이 올라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이는 내수 부진으로 이어져 인도 경제의 성장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
현재 인도의 국가신용등급은 투자적격 등급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한 단계만 하향 조정되면 곧바로 투자부적격 등급에 놓이게 된다. 인도 시중은행은 일일 지급준비금 확보 비율을 대폭 강화하고, 인도 정부는 경상수지 적자 보전과 외국인 투자 촉진을 위해 통신, 신용정보사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100% 허용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은행과 기업들의 대출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루피화 환율 방어에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단기 외채 급증
신흥국 경제 위기의 진원지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는 인도네시아 또한 경상수지 적자 지속과 단기 외채 급증 등 경제위기의 전운이 감돌고 있어 체질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장기간 침체기를 겪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상수지 적자가 98억달 러(GDP 4.4%)로 1분기(58억달러)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발표되자 증시 종합 지수가 4,200 아래로 떨어져 지난 5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5,214)보다 20% 가 까이 곤두박질쳤다. 루피아화도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온 달러당 1만1,000선 이 무너졌다. 외신에 따르면 8월 달러화 대비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가 2008 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로 하락했고, 8월 한달간 총 1조200억루피아의 자금이 인도네시아로부터 유출됐다.
더욱이 인도네시아 경제의 뇌관인 단기 외채 증가도 큰 문제다. 2007년말 18억 6,540만달러였던 단기 외채는 올 상반기 46억6,780만달러로 2.5배나 늘었다. 공공부문 부채는 4억달러 느는 데 그친 반면 민간부채는 이보다 6배나 많은 24억 달러가 증가했다.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 보유액을 풀면서 인도네시아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는 2009년 36.4%에서 47.6%까지 상승했다.
이에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은 외환 안정 5대 정책, 재무부의 경상수지 적자 억제 대책, 기준금리 인상 등을 발표하며 강도 높은 대응을 하고 있다.
데이비드 카우언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자문관은 “인도네시아의 금리인상은 투자자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조치”라며 “루피아화가 경상수지 적자 완화라는 부담을 견딜 수 있을 것으 로 믿는다”고 말했다.

브라질, 달러화 순유출 현상 지속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같은 상황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신흥국 금융 위기가 아시아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 역시 낮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마크 탄(Mark Tan) 골드만삭스 동남아시아 이코노미스트는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일부 국가들의 기초체력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1997년보다는 취약성의 정도가 훨씬 양호하다”고 말했다. 신흥국의 부채비율이 높지 않고 외환보유액을 상당액 쌓아왔기 때문에 방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 출구전략에 따라 아시아가 흔들리는 사이 남미 대륙의 브라질도 경제위기설에 휩싸였다. 인도와 함께 급성장하던 브라질 역시 통화 가치 하락, 인플레율 상승 등의 시장 불안을 보이고 있다. 브라질 국 립통계원(IBGE)에 따르면 8월 인플레율은 0.24%로 7월의 0.03%와 비교해 크게 높아졌다. 8월 달러화 순유출은 58억 5,000만달러로 1998년 이래 15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이고, 달러화 순유출 현상은 지난 6월부터 3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브라질 통화 당국은 헤알화 가치 방어를 위해 연말까지 545억 달러(약 60조원)를 투입하고, 기준금리를 8.5%에서 9.0%로 인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세계 경제와 브라질 경제가 최악의 위기 국면을 지난 것으로 보인다”며 “투자와 농업, 제조업이 활기를 띠고 있는만큼 올해 말 까지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내 년부터는 뚜렷한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 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은 금융시장에서 신흥국 위기와 차별화되고 있다. 올해 7월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사상 최고치인 3,297 억달러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말보다 1,000억달러 이상 많고, 경상수지는 지난 7월까지 18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등 펀더멘탈이 과거와 다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해졌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며 “위기 상황을 대비해 통화스와프를 늘리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l phj@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