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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COVER STORY | '신의 한수'로 성공한 기업들




엔타스 박노봉 대표
“현명한 포기야말로 최고의 전략”
철저한 통계·매출 기준 투자 결정, ‘100% 본사직영’원칙 고수로 연평균 15% 성장



인천 연안부두 근처에서 시작한 갈빗집이 22년 만에 한식·일식·중식·양식 등 총 10개 브랜드를 거느리는 외식 업체로 거듭났다. ‘경복궁’, ‘삿뽀로’, ‘고구려’로 잘 알려진 엔타스가 그 주인공. 이 기업은 현재 3개 메인 브랜드를 중심으로 전국 7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엔타스가 외식업체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건 2009년 이후부터다. 인천 지역을 거점으로 35개 매장을 운영하던 엔타스는 2009년을 기점으로 서울과 전국으로 영역을 늘리며 3년 만에 두 배 이상 매장 수를 늘렸다. 짧은 기간에 빠르게 매장 수를 늘린 것뿐만 아니라 매출 경쟁력도 확보했다. 연평균 15%씩 성장하며 지난 해 1,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무엇보다 단 한 곳도 적자 매장이 없다. 외식 업계의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엔타스’. 이 기업의 ‘신의 한수’는 무엇일까.

포기가 성장의 기회로
“손해가 예측된다면 그것이 더 커지기 전 초기에 끊어내야 합니다. CEO에겐 빠른 포기도 전략입니다.”
박노봉(40) 엔타스 대표.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시절, 손해를 감수하고 포기했던 땅 계약을 ‘신의 한수’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사업 확대를 위해 인천 구월동에 부지 매매 계약을 하면서 4억원 상당의 계약금을 미리 지불했지요. 그런데 그 다음날 IMF 외환위기가 터진 것입니다”라고 회상했다.
계약금으로 이미 상당한 금액이 투자된 상황이었다. 여기서 계약을 포기하면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이 모두 사라진다. 계약을 계속 진행할 것인지, 아니면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중단할 것인지. 두 갈림길에서 박 대표는 과감하게 계약 중단을 결정했다. 시장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무리한 투자는 결국 회사의 위험 요소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 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의 포기가 지금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신의 한수’ 였습니다. 당시 무리하게 계약을 끌고 갔다면 아마도 회사에 미치는 피해는 4억원, 그 이상이 되었겠지요. 계약금 포기는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 이상 피해가 커지면 회사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요인이 되었을 겁니다. 계약금이 아깝다고 알 수 없는 시장에서 도박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1991년, 대기업 입사 2년 만에 사표를 내고 차린 갈빗집을 22년 만에 11개 브랜드 70여 개 지점을 둔 외식업체로 키워 낸 박 대표. 공격적인 투자와 빠른 성장으로 외식업계의 ‘승부사’로 평가되는 그이지만 이외로 자신의 투자에 대해선 치밀한 계산 하에 이뤄진 보수적인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들이 봤을 때는 공격적인 투자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에게 투자란 모든 경우의 수를 대입해 최악의 상황을 예측했을 때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결정하는 신중한 선택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보수적이면서 신중한 선택. 이것이 박 대표의 투자 원칙인 셈이다. 이를 위해 박 대표는 모든 결정을 통계와 매출 등 객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치밀하게 판단한다.
음식점을 창업하면서 박 대표는 일본 유학시절 접했던 일본의 선진화된 외식 시스템을 비즈니스 관점으로 접근했다.
박 대표는 “일본은 외식업이 잘 발달해 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 나름대로 많은 걸 배웠죠. 당시 한국은 외식업을 생계 수단이 아니라 비즈니스 개념으로 접근한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이를 위해 박 대표는 가장 먼저 숯불갈비 매장에 인테리어 개념을 도입했다. 엔타스 70개 매장 대부분의 인테리어 도면은 박 대표가 직접 나무 자와 연필을 이용해 그린 것들이다.
그는 “숯불 갈빗집만 해도 옛날에는 큰 상에 음식을 쭉 깔아 놓고 여러 손님들이 섞여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게 보통이었죠.
하지만 ‘경복궁’은 공간을 나눠 고객 편의를 높였어요. 소득 준이 높아지면서 고객들이 음식의 양과 가격이 아니라 서비스의 질과 가치에 돈을 지불하기 시작한 시점과 엔타스의 경영전략이 잘 맞아 떨어졌어요”라고 말했다.
외식업계에서 박 대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 바로 그의 고집스러운 ‘100% 직영’ 원칙 때문이다. 엔타스는 70여개 지점을 모두 본사가 직접 운영한다.


▲독특한 인테리어로 유명한 엔타스의 일식브랜드 ‘삿뽀로’와 한식브랜드 ‘경복궁’의 매장 모습.

100% 본사직영 원칙 고수
“왜 프랜차이즈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사업을 이끌어가기 에 지금의 방식이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프랜차이즈 사업은 매장 인테리어비, 가맹비 등을 통해 회사가 이윤을 내는 구조인데 사업 경험이 없는 점주들이 5~10년 동안 꾸준히 이윤을 내는 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프랜차이즈 지점의 경우 실패의 책임을 가맹점주가 지어야 한다. 하지만 직영은 그 모든 책임을 회사가 진다.
그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가맹점주와 함께 최소 5년 이상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찾을 때까지 직영 원칙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엔타스의 강점은 합리적인 메뉴 구성이다. 이를 위해 메뉴를 다양하게 구성하고 코스이면서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세웠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 역시 본사가 모든 점포를 직접 운영하는 ‘직영’ 방식이기 때문이다. 엔타스는 푸드앤이라는 식자재 물류 계열사와 식품 가공 및 판매 업체인 엔푸드를 별도 운영해 ‘바잉 파워’를 키우고 있다. 또 자체 육가공 시스템도 완비했다.
박 대표는 “차별화도 기본을 잘 지킬 때 가능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싸게 사서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게 엔타스의 경쟁력이죠”라고 말했다.
현재 엔타스는 ‘한식 세계화’를 위한 해외진출을 앞두고 있다. 미주·유럽·홍콩·싱가포르 등으로의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구상 중이다. 국내와는 또 다른 성공 방정식이 필요한 만큼 무엇보다 ‘현지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외식업계에서의 성공비법은 단순해요. 가게에 찾아온 고객들이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느끼게 만들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메뉴를 객관적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요. 아무리 힘들게 개발한 메뉴라도 가격이나 맛에서 제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폐기처분하죠. 엔타스의 매장에서 고객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에스텍파마 김재철 대표
“불황기 공장증설에 매출액보다 더 투자”
금융위기 당시 250억원 투자, 생산능력 2배↑ 중국진출 기틀 마련


‘창업 이래 마이너스 성장이 한번도 없었던 회사’, ‘국내 시장0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기업’ 이는 원료의약품 (API) 전문회사 에스텍파마의 이야기다.
에스텍파마는 전 세계 5대륙 35개국 120여 개 거래처에 위궤양치료제, 소염진통제, 천식치료제, 빈혈치료제 등 50종의 핵심원료의약품을 개발해 공급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특히 이 회사는 매출의 80% 가까이를 해외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일본 등 해외시장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에스텍파마는 2007~2012년 사이 연평균 매출액이 27% 성장했으며 수출 도 55%씩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화성공장이 완공된 후에는 4·4분기 매출액이 195억원(전년 동기 대비 26.6% 증가), 영업이익이 57억원(39% 증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1996년 설립 이제 만 7년차인 이 기업이 짧은 기간동안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에스텍파마 그 ‘신의 한수’ 가 궁금했다.

금융위기 때 과감히 투자
“모두가 투자를 미루는 불황 때 공장증설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어차피 기업을 위해 해야 될 투자라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었죠. 회사의 성장을 믿었 기에 과감히 투자를 할 수 있었습니다.”
김재철(53) 에스텍파마 대표가 꼽은 ‘신의 한수’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대규모 공장증설 투자 결정이다. 김 대표는 당시 한해 매출보다 많은 250억원을 투자해 경기 화성시에 공장을 세웠다.
김 대표는 “신 공장을 짓기 위해 부지를 사놓은 상황에서 금융위기가 터졌다”며 “당시 회사의 연매출은 200억원 정도였는데 공장을 짓기 위해서 250억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불황인데 회사의 내실을 좀 더 쌓은 후 투자를 할까, 아니면 지금 당장은 회사에 무리가 가겠지만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투자할까에 대해 고민했다”며 “고민 끝에 어차피 해야 할 투자라면 지금 당장 하자는 결정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불황의 시대, 모두가 말렸던 투자였다. 남들의 눈에는 무리한 이 투자가 김 대표에게는 에스텍 파마의 성장을 이끈 ‘신의 한수’가 됐다고.
김 대표는 “공장증설 후 원자재 가격이 많이 올라서 공장증설 비용이 30%이상 뛰었다”며 “만약 투자결정을 미뤘다면 높아진 건설비용 때문에 더욱 투자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 했다.
그는 이어 “리스크를 안고 한 과감한 투자결정이었지만 이로 인해 에스텍파마는 두 배의 생산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며 “늘어난 생산으로 해외의 수요를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매출이 증가할 수 있었고 이는 다시 중국 북경 연구소 건립이라는 또 다른 투자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위기(危機)는 한자로 보면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를 동시에 뜻한다. 경기가 나쁠 때는 특히 중소기업엔 위험 요소가 많지만 거꾸로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미리 시장을 예측하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투자하는 것.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에스텍파마의 ‘신의 한수’인 셈이다. 에스텍파마는 화성공장 증설로 두 배의 생산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이 공장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기준에 적합한 신규 시설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김 대표는 “현재 가동되고 있는 제1공장에는 20개의 반응기가 돌아가고 있다”며 “제2공장에는 이보다 많은 21개의 반응기가 설치됐는데 올 상반기 가동을 시작하면서 연간 생산능력이 예전보다 2배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얼마 전 일본에서 온 기자가 취재 겸 화성공장을 방문했는데 시설을 보더니 깜짝 놀라더라”며 “일본 내 상위 기업보다 에스텍파마의 시설이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에스텍파마의 화성공장은 미국 식 품의약국(FDA) 기준에 적합하게 설 계했다. 국제 수준의 의약품제조품질관리기준(C-GMP) 설비로 인증을 받게 되면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 진출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의약품 원료 시장은 잠재력이 무궁 무진하다. 의약품 승인·심사 등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지만 기술력을 확보한 에스텍파마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는 “일본 제약사들의 오리지널 약품 특허만료로 아웃소싱을 늘리면서 에스텍파마가 오리지널 의약품원료까지 수출하게 돼 일본 수출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며 “또 2014 년 수익성이 높은 MRI조영제 매출이 본격화하면 영업이익률은 기존보다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에스텍파마의 연구원들이 전 세계로 공급되는 핵심원료의약품을 개발 중이다.

시장 다각화로 안정성 높여
김 대표는 향후 비전과 관련해 머릿속에 두 가지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원료의약품 위주의 사업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종합제약회사로 나아간다는 계획과 프리필드시린지(Prefilled Syringe·사전 충전형 주사기) 사업이다.
그는 “원료의약품 생산이 안정적 단계에 접어든 만큼 앞으로는 완제품을 만들어 팔 예정”이라며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중요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에스텍파마는 올해 중국과 인도네시아 진출 등 신시장 개척을 통한 시장 다각화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올 3월 중국 베이징에 북경연구소를 열고 10명 정도의 연구원을 채용해 업무를 시작했고 올해부터 성장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시장인 인도네시아에도 진출한다.
김 대표는 “최근 인도네시아 시장을 개척해 현지 제약사와 위궤양 치료제 3종을 수출하기로 했으며 올해 내로 수출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오는 2014년에는 중국 시장에서 2015년에는 미국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시현코리아 이소영 대표이사
“새로운 아이템에 사활 건 승부수 던져”
2006년 제2의 창업 성공, 친환경 IT융합 네트워크로 차세대 동력 확보




경북대 전자공학부 박사 출신인 시현코리아의 이소영(47) 대표.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기업 경영에 뛰어들게 됐다. 2000년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입사가 결정돼 있던 국가출원연구소에서 갑자기 날아든 입사 취소 통보. 이 통보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셋이나 딸린 그녀를 창업 시장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이 대표는 현재의 시현코리아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회사를 창업했다. 엔지니어 출신답게 남다른 기술로 승부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한 첫 사업은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곧 안정궤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03년 그녀는 자신의 기술로 창업한 회사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와야 했다.
3년 간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에게 일을 빼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다시 일어서고 싶었지만 돈도 인력도 없었다.
“첫 번째 회사와 똑같은 아이템으로 창업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를 믿고 첫 번째 회사에 투자를 해주었던 투자자와의 신용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결국 이 대표는 첫 번째 기업과 다른 아이템을 찾기 위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익숙한 분야가 아닌 새로운 분야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개발에 힘쓰면서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2006년 11월, 이 대표는 플라스틱옵티컬파이버(POF)를 이용한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과 R&D(연구개발) 전문업체인 ‘㈜시현코리아’를 설립할 수 있었다.
위기가 다시 기회로 바뀐 순간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시현코리아는 지난 7년간 매년 수억 원의 매출을 바라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내가 만약 첫 번째 회사와 동일한 아이템으로 창업했다면 저는 과거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제2의 창업을 위해 3년이라는 세월을 연구개발에 힘쓴 결과, 저에겐 전혀 새로운 분야의 기술력이라는 강점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죠. 그 선택으로 인해 저는 변화하는 시장에 발맞춰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시현코리아가 개발한 플라스틱옵티컬파이버(POF)는 5㎜ 이내의 곡률 반경으로 3Gbps 양방향 데이터를 50m까지 전송이 가능한 특수 고분자로 이뤄진 광섬유를 말한다. 수소와 탄소로 구성돼 화재 발생 때에도 유해가스가 발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000가구의 통신선로를 구축할 경우 12t의 이산화탄소(CO2) 저감과 6t의 구리 자원을 대체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이 유일하게 국제표준화를 완료했고,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친환경 IT융합 네트워크로 각광받고 있다.
이소영 대표는 “중소기업이 끊임없는 변화하는 시장을 쫓아간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과 생존을 위해서는 이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게 현실이죠. 이는 중소기업에게 있어 서로의 강점을 가지고 새로운 분야를 창 출하는 네트워크 협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기쁨과행복㈜ 김윤곤 대표이사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에 모든 것 투자”
고효율 동력전달장치 국산화 성공, 자체 브랜드 JOYRO 풀리로 시장 선도




2005년 독일에서 열린 하노버 산업박람회. 이곳에서 기쁨과행복 ㈜ 김윤곤(48) 대표이사는 기업의 미래를 위한 ‘신의 한수’를 만날 수 있었다.
1999년 6월, 김 대표는 산업에 쓰이는 각종 동력전달장치를 제작하는 부품 전문기업 기쁨과행복㈜를 설립했다. 그는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인 부품 기업을 운영하면서 회사를 대표하는 차별화된 기술력 발굴에 목말라했다고.
창업 이후 타고난 성실함과 신뢰 경영, 질 좋은 부품 제공으로 업계에 이름을 알리며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 나간 김 대표. 거래처가 늘어나면서 매출은 꾸준히 늘어났지만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성실함과 신뢰만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만의 차별화된 기술력, 기쁨과행복만의 제품이 절실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5년 하노버박람회에서 만난 덴마크 회사 제품의 풀리는 그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공장이나 건물의 공조기(냉방장치)에 쓰이는 부품인 풀리는 벨트를 걸어 모터나 기계를 돌리는 역할을 한다. 당시 국내에서 공급되던 제품은 무른 재질에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모터 구동시 전기 부하가 크고 마모로 인한 손실률이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덴마크에서 내놓은 풀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력이 있었다. 기존 대비 40~50% 무게 감소로 구동시 전기료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제품에 구멍이 뚫려 있어 사용 시 발생 되는 벨트의 열기도 크게 낮췄다. 이는 벨트의 수명 증가로도 이어지는 획기적인 기술력이었다.
기술로는 더 이상 흠을 잡을 게 없을 정도로 완벽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당시 국내 제품대비 8배 이상 비싼 가격은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관계자들 모두 고개를 저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렇게 제품 수입을 포기해야 했던 김 대표는 지난 2008년 다시 이 제품의 수입에 도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풀리가 구동되는 모습이 눈에 선했어요. 그러다가 2008년 이 제품 가격이 국내 제품대비 1.5배 수준으로 떨어진 것을 알게 됐죠. 이 정도 가격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에 바로 회사에 연락을 취했고 3개월의 설득 끝에 국내 독점계약을 따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 제품을 국산화하기 시작했다. 국산화 연구에 돌입,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비규격 사이즈까지 대응할 수 있는 준 양산체제까지 구축했다.
이와 함께 김 대표는 지속적인 금형개발과 다량생산이 가능토록 부품기업 간 네트워크망을 형성해 제품의 가격대를 낮추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자체 생산하는 조이로풀리는 수입제품과 달리 대형 사이즈에 강점이 있고 비규격 제품도 만든다는 점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세계시장의 틈새를 거꾸로 공략하겠다는 게 기쁨과행복의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