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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通

역사가 된 기업 이야기 | ⑦프랑스 미쉐린

이동 문화 파는 100년 장수기업
1889년 설립, 끊임없는 기술투자·혁신 경영으로 타이어 시장 선도


 

 


1891년 한 경륜 선수가 펑크 난 자신의 자전거 타이어를 수리하기 위해 한 고무공장을 방문했다. 그 당시 자전거 타이어는 쇠바퀴에 고무타이어가 붙어있는 일체형이었다. 펑크 난 타이어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쇠바퀴에서 타이어를 분리시킨 후 이를 고쳐 다시 바퀴에 붙여야 했다. 수리하는 데에만 수 시간이 소요되고 수리가 끝난 후에는 밤새 건조시켜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경륜 선수의 요청에 따라 타이어를 수리하던, 공장의 두 형제는 고민에 빠졌다.
“번거로운 타이어 수리 과정을 좀 더 쉽고 간단하게 할 수는 없을까?"
이들의 고민은 결국 세계 최초로 15분 만에 교체 가능한 착탈식 자전거 타이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좀 더 간단한 타이어 수리 방법을 고민하던 두 형제의 성은 ‘미쉐린(Michelin·프랑스어 발음으로 읽으면 ‘미슐랭’). 1889년 설립돼 올해로 124세가 된 장수기업 ‘미쉐린’의 창업자들이다.

기술로 승부하다
1889년 프랑스의 소도시 클레르몽-페랑에서 앙드레와 에드아르 미쉐린 형제가 세운 기업 미쉐린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기업 중 하나이다. 현재 창업자 일가가 4대째 기업을 이어오고 있다. 설립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이 기업은 여전히 세계 타이어시장 1, 2위를 다툰다. 2011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존경받는 기업 순위 8위, 2009년 미국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앞으로 100년간 살아남을 100대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급변하는 환경에 무수한 기업들이 사라져 가는 이 때, 미쉐린은 ‘타이어 제조’라는 전통 굴뚝 산업의 본업을 유지하면서 100년이 넘게 업계 선두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과연 이 기업의 장수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쉐린의 ‘유일무이형 기술혁신’을 비결로 꼽는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동성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지요.”
앙드레와 에드아르 미쉐린 형제는 창업 초기부터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현대 운송 수단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 수단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노력은 타이어사에 기록될 ‘세계 최초’ 혁신제품의 개발로 이어졌다.
1891년 착탈식 자전거 타이어를 최초로 개발한 미쉐린은 그 해 파리-브레스트-파리 경륜 대회에서 이를 선보였다.
당시 미쉐린이 만든 타이어로 대회에 출전한 샤를 테롱(Charles Terront) 선수는 2등과 무려 9시간 격차라는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미쉐린은 ‘세계 최초’, ‘최신 기술’ 이라는 수식어를 단 제품을 잇달아 세상에 내놓았다. 1895년 자동차용 고무타이어를 최초로 개발하는가 하면 1946년에는 세계 최초로 타이어에 금속을 넣은 제품인 래디얼 타이어를 만들어냈다.
특히, 타이어 역사를 새로 쓴 기념비적 발명품인 래디얼 타이어는 기존 타이어보다 30~40% 높은 내구성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꾸며, 미쉐린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당시 미국 타이어시장의 강자였던 파이어스톤은 우수한 성능의 래디얼 방식을 거부하고 기존 방식을 고집하다가 시장주도권을 상실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1981년 세계 최초 항공기용 타이어, 1992년 최초로 친환경 타이어인 ‘그린 타이어’, 2005년 공기 주입이 필요 없는, 모양이 지면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되는 타이어 ‘트윌’ 등 미쉐린은 남보다 한 발 빠르게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으며 시장을 주도했다.
그 결과 미쉐린은 ‘한우물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생산 제품군을 보유할 수 있었다. 현재 미쉐린은 일반 승용차에서부터 항공기, 농기계, 트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 차량의 타이어를 특화 생산 중이다.

끊임없는 R&D투자로 혁신
“어떠한 경우에도 미쉐린은 R&D투자를 줄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도 투자를 줄이지 않았고, 공장 설비를 철거하지 않았으며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습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세계 최초’ 의 기술을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 미쉐린. 기술을 중시하는 미쉐린은 연구개발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또 경기가 나빠져도 연구개발 투자비를 줄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미쉐린은 타이어를 만들어 ‘이동성의 향상’에 기여하라는 창업자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매년 5억유로(7,700억원)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이 중 20%는 기간을 정해 두지 않은 장기적 관점의 기술 개발에 쓰이고 있다. 미쉐린 연구개발 인력은 총 6,000명에 달한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미쉐린은 지난 1980 ~ 1990년대 무리한 글로벌 M&A로 인해 부도 위기에 처했다. 1990년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의 유니로열 굿리치 타이어를 15억 달러에 인수한 미쉐린은 유니로열이 지닌 막대한 부채로 인해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야 했다. 이 때 미쉐린은 오히려 신소 재를 활용한 혁신제품 개발을 감행했다.
1992년 타이어 접지면 스레드를 모래로부터 추출한 실리카로 교체한 ‘그린 타이어’를 출시했고 이 타이어가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올해 6월, 미쉐린은 또 한번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다고 발표했다. 본사 R&D센터와 프랑스 트럭타이어 생산기지 강화에 8억 유로(한화 약 1조2,100억 원)를 투자한다는 계획 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 R&D 센터는 기존 설비를 보강하고, 인근에 새로운 최첨단 센터를 추가로 설립한다. 공사 기간은 2019년까지, 6년. 미쉐린은 이번 시설 투자에 대해 기술혁신 능력을 극대화하고, 시장의 요구에 신속히 대응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이러한 미쉐린의 대규모 투자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쉐린의 탁월한 미래 예측 능력은 업계에서도 유명하다. 지난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파산도 타이어 업계 가운데 미쉐린이 가장 먼저 예측해 이에 대응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눈과 끊임없는 R&D투자, 100년 기업 미쉐린의 장수비결인 셈이다.



문화를 파는 감성마케팅
“미쉐린은 인간의 이동성을 어떻게 하면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는 기업이다. 기업 내 혁신도 항상 그 이동성에 초점을 맞춘다.” 미쉐린의 혁신은 단순히 제품 품질 향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쉐린은 타이어가 ‘인간의 이동을 더 안전하고 행복한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런 노력은 미쉐린의 마스코트 ‘비벤덤’과 ‘미슐랭 가이드’로 현실화 됐다. ‘비벤덤’과 ‘미슐랭 가이드’는 미쉐린이 단순히 타이어를 생산하는 제조 기업이 아닌 이동의 문화를 창조하는 기업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898년 태어난 미쉐린의 마스코트 ‘비벤덤(Bibendum·미쉐린맨)’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이자 세계 최초 상업적 마스코트 중 하나이다. 투실투실한 몸에 타이어를 두른 듯 온몸에 주름이 잡힌 이 캐릭터는 미쉐린 창업자인 앙드레 미쉐린이 “타이어를 쌓아둔 모양이 꼭 사람 같지 않아?”라고 묻는 동생 에두아르의 말에 착안해 개발했다. 비벤덤만큼 타이어제조 기업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잘 드러내는 캐릭터는 없었다. 초기 미쉐린 광고에서 비벤덤은 유리조각과 못이 가득 든 와인 잔을 치켜들고 이렇게 말한다. “자, 한잔합시다.” 당시 소비자들의 골칫거리였던 타이어 펑크 문제를 해결했다는 자신감이 위트있게 표현된 것이다.
이후 미쉐린의 상징 ‘비벤덤’은 딱딱하게 느껴지는 타이어라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설명하는 든든한 대변인으로 100년 이상 미쉐린의 곁을 지켰다.
이러한 ‘캐릭터 마케팅’의 성공은 미쉐린 브랜드의 가치를 키움은 물론이고 향후 많은 기업이 벤치마크할 수 있는 교본이 됐다.
이와 함께 미쉐린은 이동의 문화를 확산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펼쳤다. 타이어를 팔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많이 팔려야 하고, 그러려면 자동차로 즐길 만한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게 창업 초기 미쉐린의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미쉐린은 세계 최초로 도로에 표지판을 만들고, 도로마다 번호를 붙이기 시작했다. 아울러 복잡하기 그지없는 유럽의 도로망을 도시별·구역별로 알기 쉽게 정리해낸 지도와 식당을 안 내하는 자동차여행 안내책자 ‘미슐랭 가이드’도 발간했다. 초기 ‘미슐랭 가이드’는 타이어 정보, 자동차 정비 요령, 주유소 위치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식당정보는 그저 운전자의 허기를 달래 주는 차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호평을 받자 돈을 받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잡지는 1926년부터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난 호텔에 별을 붙여 평가했다. 식당에까지 별을 붙이는, 지금의 방식이 완성된 것은 1933년이다. 이 후 100년의 세월 동안 심사의 엄격성과 정보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미슐랭 가이드는 오늘날 ‘미식가들의 지침서’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미슐랭 가이드를 출판하면서 앙드레 미쉐린은 “이 책은 이 시대와 함께 태어났다” 라는 예언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동성의 향상’이라는 미쉐린의 비전은 소비자에게 미쉐린을 타이어기업이 아닌 ‘여행의 동반자’로 각인시켜 그들이 보다 친근하게 여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현재 미슐랭 가이드는 세계 90개국에서 연간 1,700만부 이상 판매되고 있다.


이미영 기자 l misaga@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