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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通

경기도 협동조합을 찾아서 | 이웃문화협동조합

청년, ‘놀이’를 기획하다
아이디어가 자산…‘재능벼룩시장’,‘예술가의 식탐’,‘달, 팽이’로 관심 몰이


 

 


잘 놀고 잘 살자.
누군들 바라지 않을까 만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얼음만큼 차가운 현실은, 조금씩 조금씩 추워진다고 느끼는 사이, 어느새 따뜻한 양지(陽地)를 모두 앗아간 것만 같다. ‘잘 놀기’ 와 ‘잘 살기’는 설익은 축구선수의 ‘똥볼’ 차기로 경기장 밖 저 멀리로 날아간 축구공 신세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잘 놀기’부터 생각해 보자.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긴 나라다. 그뿐 아니다. 중고생은 ‘대입’이라는, 대학생은 ‘취업’이라는 절체절명의 목표점을 향해 목숨 걸고 달려야 한다. ‘잘 놀기’는 커녕 시간이 주어져도 ‘노는 방법’을 몰라 불안해하기 일쑤다.
‘잘 살기’는 더 힘들다. 워킹 푸어, 하우스 푸어, 베이비 푸어…. 놀지도 않고, 놀지도 못하고 죽도록 공부하고 일해도 가난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푸어(poor)’의 종류는 시간이 갈수록 늘기만 한다. 적지 않은 청년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노인빈곤은 OECD 1위를 달리는 나라다. ‘잘 살기’는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층이 점점 많아진다.
이런 가운데 이웃문화협동조합(이하 이문협)의 젊은이들은 ‘잘 놀고 잘 살자’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말 그대로 ‘잘 놀고 잘 살기 위해’ 협동조합을 열었노라 말한다.

재미를 창조하는 협동조합
그들에게 협동조합은 놀이터다. 이수아 이문협 사무국장은 협동 조합을 그렇게 생각한다.
“무조건 재미가 있어야지요. 활동도 재미있어야 하고 일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도 재미있고, 인간관계를 통해 일을 만들고 꾸려나간다는 것도 재미있지요. 재미있게 일하면서 생활도 하면 그야말로 잘 놀고 잘 사는 거 아닐까요”?(이수아 사무국장) 20대 초반 젊은이의 생기발랄함이 느껴진다. 여름철 한바탕 장대비를 쏟아낸 먹구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햇빛처럼 밝아, 보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뭘 모르는 아이들이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철없이 일 벌이는 것 아니냐고? 꼭 그렇지는 않다. 이들은 IMF와 서브 프라임의 쓰나미를 넘어선 ‘위기 극복 세대’다.
보자. 이들은 수원시 팔달구 지동 골목한 귀퉁이에 ‘놀이터’ 겸 ‘일터’를 꾸려 놓았다. 이름 하여 ‘핑퐁음악다방’과 ‘이웃공방’이다. 규모는 작다. 두 공간을 합쳐야 열댓평 될까. 하지만 이곳이야말로 이들이 자신의 꿈을 일구는 터전이다.
“오전에는 탁구를, 오후에는 차를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스포츠와 예술을 브랜딩하자는 취지였지요. 지금은 자리가 부족해 일단 탁구대를 치웠지만 원하시는 분이 있으면 언제든 탁구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이수아 사무국장)
지난 9월 7일과 14일 양일간 수원 행궁동에서 열린 축제에서도 이를 기획한 이문협 젊은이들의 생생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톡톡 튀는 수준을 넘어 생경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오가닉 아트 페스티벌(Organic Art Festival)’. ‘유기농’을 뜻하는 ‘오가닉’에 ‘예술’을 덧붙인 축제다.
내용도 신선하다. ‘예술가의 식탐, 주민의 식탁’이라는 부제를 보면 대충 뭘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먹기’와 관련된 예술가의 공연과 주민의 먹거리 잔치가 한바탕 어우러지는 장(場)이다. 한쪽에서는 대중 음악가나 예술인들이 주도하는 그림과 노래, 춤판이 이어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민을 상대로 한 먹거리 장터가 벌어졌다.
지난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지동에서 있었던 ‘달, 팽이 프로젝트’ 역시 현란한 아이디어의 경연장으로 보인다. 등에 집을 이고 다니는 흔한 연체동물 ‘달팽이’가 아니고 ‘달, 팽이’다.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표현이고 뜻을 알고 나면 무릎을 친다. ‘달’이란 둥근 달의 형태를 따 공동체의 상징으로 쓰고, ‘팽이’는 놀이의 상징으로 쓴다.
더 재미난 것은 ‘쉼표’에도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쉼표’는 그냥 ‘쉼’이다. ‘달, 팽이’는 결국 ‘공동체의 쉬고 놀기’를 뜻한다.

건전한 문화 생태계 꿈꿔
이문협 활동가들의 이력도 만만치 않다. 협동조합 설립은 지난 7월로 겨우 5개월 남짓이지만 사업 기간은 만 3년이 넘는다.
이문협은 ‘청년둥지’라는 청년들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에서 시작됐다. 2010년 ‘수원시민 창안 대회’ 공모를 위해 수원 청년들이 모인 이 팀은 ‘재능을 나누는 벼룩시장’을 만들자는 제안으로 대회 1등을 차지했다. 이름 하여 ‘재능벼룩시장’이다. 이 대회에 참석, 이문협을 이끌어 온 송주희 이사장은 “공모에서 수상하자 젊은이들의 창업 의욕이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결국 이 대회 수상이 현재 이문협의 원동력이 됐다. 이후 청년 3명은 6개월 동안 정식으로 인큐베이팅 교육을 받았고, 수원시 사회적기업 창업 경연대회에 출전, 2등을 차지해 정식으로 주식회사 ‘이웃’을 만들기로 했다. ㈜이웃이 만들어진 것은 2011년. 당시 경연 내용은 놀이기획사를 만들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으로, 2년 뒤 ㈜이웃은 이문협을 만들어 그때의 약속을 지켰다.
“이문협은 지난 3년 동안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또한 많은 것을 체험하고 배웠습니다. 미래는 과거보다 밝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송주희 이사장)
이문협에는 현재 두 명의 상근직원이 있다. 최현지 기획팀장과 이수아 사무국장이 그들이다. 1989년생으로 동국대 영어학과를 졸업하고 영어 통번역에 능한 최 팀장은 문화기획자를 꿈꾼다. 1992년생인 이 국장은 현재 경희대 국제학부 학생으로 휴학 중이며 내년에 3학년으로 복학할 예정이다.
이들이 이문협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다양하다. 최 팀장의 경우 취업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졸업 즈음에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달, 팽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게 이문협에 동참한 계기가 됐다. 최 팀장은 “협동조합을 통해 건전한 문화 생태계를 꾸미고 싶다”는 꿈이 있다.
이 국장의 참여 계기는 최 팀장과 많이 다르다. 시민사회와 사회 운동,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생활정치란 목적을 공유하고 가치를 생산하고 생산물의 공유를 통해 삶을 향유하는 공동체 정치”로 보는 이 국장은 “이문협의 활동은 생활 정치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현재 이문협은 상당한 고민에 빠져 있다. 수입원이 탄탄하지 않아서다. 협동조합의 수입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조합원의 조합비와 사업수익이다. 이게 이문협의 성장을 담보하지 못하니 문제다.
현재 이문협의 조합원은 약 70명이다. 월 회비를 5,000원씩을 내고 있으니 수입은 기껏 30만~40만원에 불과하다. 사업도 쉽지 않다. 조합원의 놀이터나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주로 쓰이는 다방과 공방 수입은 협동조합 운영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놀이기획사업도 지자체 공모사업 위주여서 큰 벌이가 되지 않는다. 올 들어 프로젝트 수행 실적은 4~5건. 실비 위주여서 큰 돈이 남는 것도 아니다.
직원 두 명에게 급여를 주는 것도 벅찬 게 이문협의 현재 상황이다. 최 이사와 이 국장이 받는 급여 수준은 월 100만원 남짓. 금액으로만 보면 아르바이트 수준이다. 하지만 두 명의 자부심과 기대는 당당하다. 이 국장은 “당연히 직업”이라며 “향후 5년 안에 탄탄한 일자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송 이사장은 내년 총회가 중요한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최근 이사회에서 수익모델에 대한 논의가 잦습니다. 뭔가 새로운, 이문협의 미래를 지탱할 탄탄한 수익사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올해는 조합의 상근 직원들에게 연금이나 보험 혜택을 주기에 조합의 구조가 불안정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월급도 올리고 연금이나 보험을 통해 조합 내 직원들의 경제적 자립과 복지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지요. 당연히 조합은 문화 사업을 통해 주수익을 창출할 것이고 내년 총회 때 그것이 결정될 것입니다


이재광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l imu@gr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