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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通

Movie & l '대부', 1972

악에 대한 관심


 

 

가장 문학적인 영화를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사람에 따라 여러 의견이 나오겠지만 필자는 주저 없이 <대부>를 꼽겠다.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 그들 사이의 사연과 갈등을 보고 있노라면 웬만한 문학 작품보다도 더 디테일한 설정에 놀라게 된다. 워낙 복잡해서 한 번만 봐선 내용과 메시지를 100% 이해하는 것이 힘들 정도다. <대부 2>는 “2편은 1편보다 못하다.”는 영화계의 속설을 뒤집은 최초의 사례다.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전편에 이어 속편도 작품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 밖에도 코폴라가 감독상, 로버트 드 니로가 남우조연상을 받았으며, 각색상, 미술상, 작곡상도 수상했으니 놀랄 만하다.
대부 시리즈 전체를 꿰뚫는 주제는 마이클 꼴레오네의 인생사다. 그의 아버지 비토 꼴레오네는 마이클을 법 앞에 당당한 변호사로 키우려 했지만 결국 어긋나 버린다. 마이클은 결국 암흑계의 권좌에 오르게 된다. 온갖 범죄를 조종하지만 그는 ‘합법’ 의 영역으로 사업을 끌어가기 위한 노력도 나름 해 본다. 하지 만 쉽지 않은 일. 결국 ‘패밀리’의 대부인 그는 사랑하는 실제 ‘가족’들을 다 잃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흔히 1990년대부터 대략 10년간 한국 영화계는 조폭 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조폭마누라>의 대성공으로 생겨난 유행인데, 천편일률적인 내용도 문제였지만 청소년들의 교육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말도 많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조폭의 문제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작품도 꽤 나오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외에서도 폭력집단들을 은근히 미화하는 영화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느와르 영화의 전성시대로 가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다.
왜 우리 인간들은 이렇게 ‘폭력’에 대한 관심이 많을까? 결국 폭력은 ‘악’인데 ‘악에 대한 관심’은 왜 끊이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을 끝없이 파고들어가다 보면 결국 윤리철학과 만나게 된다. 도덕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몇몇 철학자들의 답을 한 번 간단히 들어보자. 공자와 맹자는 우리 인간이 본래부터 선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칸트는 어찌보면 공맹과 비슷하다. 도덕이 ‘우리 인간 내면의 양심’ 때문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도덕이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라고 선언했다. 니체는 타고난 선악 따위는 없고, 가치와 가치가 대결해 가다가 결국 현재의 도덕이라는 기준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다.
사실 필자는 니체를 옹호하는 편이다. 본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렇다. 수많은 질투와 욕망과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면을 절제하고 사회적 행동을 끌어내는 올바른 정신도 분명히 있다. 이런 것들은 항상 마음 속에서 경쟁하고 있다.
모든 마음이 100% 선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없다고 본다. 애초 질문의 해답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마음 안에 악한 심정을 갖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감추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이 가진 악에 대한 관심은 대리욕구이겠다. 실제로 자신이 감추고 있는 저열한 욕망과 계 산이 영화로나마 표현되는 것을 볼 때 인간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아닐까?


자유기고가 홍훈표 l exom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