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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Thinking Economy | 기초연금제의 허실

국민연금 장기가입자들 “우리가 봉?”

“뭐야? 더 내고 덜 받기로 마뜩잖은 국민연금도 내기 싫어 죽겠는 마당에 국민연금을 오래 납부한 사람은 기초연금도 덜 받는다고? 직장인만 봉이네 봉!”
고 과장은 정부가 발표한 기초연금제 뉴스를 듣고 분통을 터뜨린다.
“아니야. 그렇지 않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증가할 때마다 국민연금 지원 금액이 기초연금액 감소분보다 높게 설계됐대. 실제 지급받는 공적연금액이 크다는 얘기지. 요즘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30~40대 직장인들 노후를 국가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봐.”
박 부장의 선비 같은 대꾸에 고 과장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소득, 국민연금 따져 지급
기초연금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 정책이 불합리한 방식이라며 자 진 사퇴해 버린 사상 초유의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소득 하위 70% 의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10~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지난해 기준 소득상위 30%를 제외한 노인의 90%인 약 353만 명이 내년 7월부터 월 20만원을 받게 되고, 나머지 38만명은 월 10만~20만 원의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
이는 지난해 대선에서 소득이나 국민연금 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주겠다는 여당의 기초연금제 공약을 수정한 것이다. 소득 상위 30%(현재 207만명)는 기초연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소득을 판단하는 기준에는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부동산이나 금융자산도 포함돼, 노인 단독가구 83만원(부부 132만8,000원) 이하여야 기초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 내면 기초연금 깎여
또한 정부안은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액도 줄였다. 소득 하위 63%까지는 20만원, 64~70%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연금액을 줄여 10 만~19만원을 지급한다.
‘국민연금 가입자 역차별’ 논란이 일자 정부는 “국민연금에서 지원받는 금액이 월 1만원 이상이기 때문에 실제로 지원 받는 공적연금액은 더욱 커진다”며 “미래세대는 가입기간이 짧아도 기초연금을 20만원씩 수령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연명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을 계속 내면 기초연금이 깎여도 국민연금액이 늘어서 괜찮다는 정부의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기초연금법 제정안은 국민연금을 계속 낼 경우 돌려받는 돈이 1만원씩 늘어날 때마다 기초연금은 6,700원씩 감소한다. 인센티브가 적은 만큼 국민연금 납부를 포기하고, 기초연금 20만원을 받으려는 국민들이 충분히 늘어날 수 있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재정 고갈이 우려되고 있어 납입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공약 수정으로 소요 재원 17조원 감소
정부가 기초연금제를 축소한 건 재정난 때문이다. 기초연금 소요 재정은 2014년 부터 2017년까지 4년간 약 39조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모든 사람에게 기초연금을 주는 ‘보편적 복지’ 공약을 실현할 때보다 비용이 17조원 가량 줄어든 셈이다.
정부의 누적 빚은 올해 480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36.2%다. 공공부문 부채 520조원까지 합하면 나랏빚은 GDP의 100%에 육박하는 1,000조원을 넘는다. 올해도 세수가 모자라 23조원의 적자를 낸 마당에 현 세대를 위해 빚을 내 복지를 확대하는 건 미래 세대에 대한 죄악이다. 그러나 기초연금제 수정과 관련 정부와 여당의 수차례 설명과 해명에도 많은 국민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21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민연금바로세우기국민행동은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청장년층을 차별하고 노후를 불안으로 몰고 가는 나쁜 정책”이라며 “국민연금 연계는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들에게 불이익을 줘 공적 연금의 지속성을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박현정 기자 l phj@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