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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Dynamic Country | 독일

혁신에 강한 세계 4위 경제대국
자동차·주방가전 등 세계 최강… 유로존 위기에도 무풍지대


 

 

▲독일은 물론 유럽의 물류 중심이자 금융 허브역할을 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시가지 모습.

지난 5월 미국 뉴욕타임즈는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가 전 세계를 덮친 뒤 5년이 지난 현재 미국과 한국보다 훨씬 더 탄탄하게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나라로 독일을 꼽았다. 뉴욕타임즈는 경제 회복의 정도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인 실업률을 예로 들며 독일의 청년 실업률은 8%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유로존 국가들의 평균 청년 실업률이 30%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독일 경제가 얼마나 탄탄한지 짐작이 간다.
뉴욕타임즈 보도가 아니더라도 유럽 국가들이 유로존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독일 경제만이 유독 견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경제뿐 아니라 독일은 정치, 문화, 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콧대 높은 영국도 이를 인정하며 최근 독일을 닮으려 노력 하기 시작했다.

통독 후 ‘아젠다 2010’ 통해 경제 재건
독일은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다. 이미 독일 통일 전인 1980년대 후반에 서독의 국민총생산(GNP)은 세계 4위를 기록했으며, GNP의 1/3을 수출했다. 1990년 독일 통일은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례없는 성장의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통일 후 독일은 시장경제체제의 서독과 역동적이지 못한 중앙경제체제를 고수한 동독 사이에 발전의 격차와 불평으로 인해 대량 실업 등 많은 혼란이 야기됐다. 결국 2003년, 집권 사민당의 총수 슈로이더는 인플레와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는 독일 경제를 개혁하기 위해 ‘아젠다 2010’을 꺼내들었다. 아젠다 2010은 ‘독일병’ 이라고 불리우는 과도한 복지, 방만한 연금구조, 노조의 사회적 권한 등을 축소하는 자유주의 개혁 방안이었다.
그로부터 독일 경제의 내핍이 시작됐고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 결과 바닥을 기던 마르크화가 강세로 전환되면서 경제는 다시 일어섰다. 아젠다 2010 개혁의 성공으로 독일은 유럽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재정위기가 유럽을 휩쓰는 동안에도 안정세를 구가할 수 있었다. 독일 경제의 힘은 강력한 제조업에서 나온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로 가장 크고, 전체 노동자의 약 1/3이 제조업에 종사한다.
전체 산업체 가운데 일부 광산·철강·석유가공·자동차 제조부문의 업체들만 고용 규모가 500명을 넘을 뿐 절반 정도는 고용 규모가 50명에도 채 못 미치는 중소기업들이다. 노동자는 완전히 조직화돼 있으며, 노사간 및 노동조합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 법원도 있다.

세계시장 주름잡는 ‘히든 챔피언’ 많아
독일 경제의 강점은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에 있다. 소위 ‘히든 챔피언’으로 일컫는 엘리트 중소기업들이 즐비하다는 점이다.
‘독일 경제가 강한 13가지 이유’를 쓴 경제학자 헤르만 시몬 (Herman Simon)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세계 정상급 중소기업을 찾는데 25년째 몰두하고 있다. 그의 목록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강소기업 2,734개가 있는데 그 중 독일 기업이 자그마치 1,307개에 이른다. 이들 중소기업들은 독일 수출의 1/4을 차지할만큼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독일만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헤르만 시몬은 덧붙여 독일은 인구 100만명 당 16개의 히든 챔피언이 있는데 프랑스는 1.1개, 미국은 1.2개, 일본은 1.7개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독일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주방가전부문만 살펴봐도 히든 챔피언의 존재감은 크다. 밀레, 지멘스 등 완제품 업체들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쇼트, EGO 등 소재부품의 히든 챔피언들이다. 쇼트가 유리세라믹을 최초로 쿡탑(레인지)용 상판을 도입하고, EGO가 쿡탑 조직에 터치컨트롤 기술을 적용하면서 여기에 적합한 고급 주방가전과 조리기구들이 잇따라 개발되는 식이다.
디스카운트 슈퍼마켓 알디는 중소제조업체들이 협력해 기존 대형유통업체들을 넘어선 사례다. 알디는 소비자 권장가를 적용하지 않는 중소업체를 찾아 알디에서만 판매하는 최저가 전략상품을 개발했다. 그 결과 알디는 전 세계 8,000여개 점포를 가진 유통업체로 성장했고 자국 제조업체들에게는 세계시장으 로 향하는 판로를 열어줬다.

자동차·정밀기계 등 세계 최고 기술력
독일 경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자동차 산업이다. 이를 증명하듯 독일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는 뮌헨이나 함부르크 같은 대도시가 아닌, ‘폭스바겐’ 자동차로 유명한 중부 니더작센 주의 작은 도시인 볼프스부르크다. 볼프스부르크는 1인당 GDP가 9만2,600유로(미화 12만3,000달러)로 독일 모든 도시를 제치고 1위다. 한국출신 구자철 선수가 속한 축구팀의 홈그라운드인 볼프스부르크가 이처럼 풍요를 구가하는 것은 독일 최대 자동차 회사인 폴크스바겐 본부가 있어 자동차산업이 지역경제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자동차 회사인 아우디의 본부가 있는 바이에른주 소도시인 잉골슈타트 역시 경제력 순위에서 4위에 랭크됐다.
독일 자동차산업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배경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사회적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LG경제연구원 ‘표준에서 협력하고 적용에서 경쟁하는 독일의 사회적 혁신’ 보고서 참조) 즉 완제품 기업을 중심으로 시장 생태계가 형성돼 있고 부품업체들은 다소 낮은 위상을 보이는 대다수 국가에서와 달리 독일은 완제품 기업과 부품업체간 관계가 대등해 다양한 형태의 공조가 가능하다.
부품업체와 완성품업체의 협업이 잘 이뤄지고 있다. 두 업체가 협력해 시도하는 표준화 노력, 부품 업체와 소재업체의 시장 혁신이 완제품업체에 전해지는 박람회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협업의 장이 그 사례다.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전기·전자장비(전장·電裝) 부문에서 많은 표준을 만들었다. ‘표준에서 협력하고 적용에서 경쟁한다’는 모토로 추진하는 ‘AUTOSAR’는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간 협력은 물론, 완성차업체간, 부품업체간 경쟁을 가속화함으로써 독일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AUTOSAR’는 BMW, 벤츠, 폴크스바겐 등 완성차업체들과 보쉬, 지멘스 등 부품업계가 전기전자부품의 공통규격을 만들어 호환성과 안전을 보장하는 연합이다.

고령화 따른 노동력 감소 큰 걱정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깃발을 들고 나온 이후 요즘 우리나라에는 독일 붐이 불고 있다. 어떠한 외부환경의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세계 4위 경제대국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세계 최강의 기업들을 다수 보유한 독일을 배우기 위해서다.
독일은 지난해 2,400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내 세계 1위를 차지했으며, GDP는 3조5,000억달러로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도 고민이 없지 않다. 독일 경제가 언제까지 무한정 튼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빨라지는 고령화는 10년 내 노동인구 650만명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는 “독일의 노동력 부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등 노동력 확대를 위한 지속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실시된 인구조사 결과 전체 인구가 약 8,000 만명으로 예상보다 150만명 가량 적어 독일사회가 충격을 받기도 했다.
최근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올해와 내년도 GDP 성장률을 각각 0.3%와 1.5%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말 전망치보다 올해는 0.1%p, 내년은 0.4%p 낮춘 것이다. 분데스방크는 또 재정건전화와 개혁 노력이 느슨해 지면 언제든 위기를 불러올 수 있음을 스스로 경고하기도 했다.

오석원 기자 l won@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