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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COVER STORY | '성공'을 꿈꾸는 '실패' 3

윤정웅 ㈜대한후렉시블 회장
“실패 두려워 연구개발 멈출 순 없어”


 

 

“연구 과정에서의 실패는 당연한 겁니다. 제품을 개발하려다 망한 사람도 많아요. 모방은 쉬워요. 하지만 경쟁력을 갖추려면 실패를 무릅쓰고 개발을 해야 합니다.”
윤정웅 ㈜대한후렉시블 회장은 “연구개발은 곧 실패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연구개발비에 들어간 돈은 성공하기까지는 버려지는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 정도 버리고 나중에 벌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구개발에 투자 한다”고 밝혔다.
㈜대한후렉시블은 직원 50여명의 중소기업이다. 주생산품은 건축물의 환기나 환풍을 위한 공조시스템에 사용되는 덕트다. 1982년 창업해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분야만 고집했다. 창업자 윤정웅(69) 회장은 이 분야의 선구자다. 1981년 당시 건축물을 지을 때 공조시스템용 덕트는 함석으로 된 네모난 관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그릴을 넣는 것은 숱한 시행착오를 필요로 했다. 이것을 본 윤 회장이 ‘호스로 만들면 어 떨까?’하는 생각에 접착제를 이용해 원단을 강선에 붙여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 열로 붙이는 방법도 그가 고안해냈다. 지금 생산하는 제품에도 여전히 그때의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친환경공조호스, 대전방지용 호스, 시스템 전용 보온 호스, 벨트식 클램프, SUS 벨트팩 등이다. 이들 제품은 모두 ㈜대한후렉시블이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업계 최초로 선보인 것들이다.
제품개발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실패가 따른다. 물론 ㈜대한후렉시블에도 그런 사례가 무수히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클릭 타입 SUS 밴드’다. 이 제품은 덕트를 강관과 연결할 때 조여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특별해 보이지 않는 제품이지만, 현장에서 시공된 후 불량으로 인해 전 제품을 다 뜯어내고 다시 시공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거친 파란만장한 사연이 깃든 제품이다.
“처음 만들어보는 제품이라 모양이 같으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품에 불량이 생긴 것은 금형 때문이었어요. 금형에서 제품을 많이 뽑아내면 닳아서 오차가 생기는데 그걸 계산하지 못한 거죠. 이 제품은 0.001㎜까지 정밀도를 요구합니다.”
윤 회장은 이후 금형 하나당 생산량을 측정했고, 최적의 생산량을 찾아내 시행착오를 끝냈다.
지금의 불편은 더 나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윤 회장은 얼마전 제품생산에 꼭 필요한 기계를 하나 주문했다. 이전에 있던 제품이 아니라 설비제작업체에 필요한 용도와 기능을 설명하고 제작을 의뢰한 것. 제작업체에서는 2,700만원정도가 소요된다고 견적을 뽑았다. 하지만 제작비는 두 배로 뛰었다. 완성된 설비를 본 윤 회장에게 다른 아이디어가 솟구쳤다. 설비를 보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한 것. 비용이 훨씬 더 들게 생겼지만, 처음 설비로 인해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설비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윤 회장 스스로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개발했지만, 지금은 연구소를 두고 신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연구소 설립 이후 개발된 제품으로는 항균호스, SUS 밴드, 친환경 후렉시블 소스, 클릭 타입 SUS 밴드, 대전방지 풍관 등이다.
“실패에 대한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무턱대고 시작해 실패를 한다면 문제입니다. 시작할 때 가능성과 타당성, 시장성 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합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해요. 이런 과정을 거쳤다면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좋은 것을 만들려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윤 회장은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실패작이 별로 없었다”며 웃었다.
그는 “남이 하지 않는 것을 손쉽게 하기 위한 것이 신제품 개발”이라며 실패가 있고 손해가 있더라도 신제품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계획이다.
2009년부터 ㈜대한후렉시블은 윤성한(39) 대표이사가 사장을 맡고 있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글로벌 IT기업인 시스코에서 근무한 재원이다. 현재 ㈜대한후렉시블은 중국에 지금의 공장 200배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또 베트남과 브라질에도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허훈 티피오스 대표
“포기보다 실패를 자산으로 재기 성공”


 

“지난 20년간 흘렸던 땀과 열정, 그 경험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무조건 다시 일어선다는 마음으로 과거의 ‘실패’를 되새기며 철저 히 준비했습니다.”
매출액 200억원대 업체 대표에서 무일푼의 실패자, 그리고 다시 기업인으로 재기에 성공한 티피오스의 허훈(55) 대표. 그의 지난 20년은 한 마디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1986년, 당시 나이 28살이었던 허 대표는 단돈 500만원에 ‘SWP신우전자’를 창업했다. 첫 직장이었던 시계회사에서의 경험을 통해 수입에 의존했던 소형 스피커인 ‘버저’를 국산화해 전문적으로 생산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은 옳았다. 이후 삐삐와 휴대폰의 등장으로 ‘버저’ 를 필요로 하는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그의 사업도 함께 성장했다. 위기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허 대표는 집을 팔아 자재비를 되는 등 회사에 대한 열정으로 이를 극복했다.
2002년 모토로라와의 거래를 시작으로 SWP신우전자는 현대와 삼성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이고 당시 세계 1위 핸드폰 기업이었던 노키아와의 거래도 성공시켰다. 이는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중소기업 대상 수상, 2,000만달러 수출이라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중국 위해와 영성에 공장도 세웠다. 그렇게 회사는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허 대표는 “성공만을 위해 그렇게 달려왔어요. 문제는 성공한 후의 계획은 세우지 못했던 것이지요. 사업을 시작해 영업을 잘하는 것 못지않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의 계획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위기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넘쳐나는 자금에 사업 다각화를 시도한 게 오히려 경영에 부담이 됐다. 시장성이 떨어졌던 블루투스와 음성인식 장치, 설렁탕 공장 신설 등 본업과 관련이 없고, 미래에 대한 확고한 전략도 없이 한 무모한 투자가 회사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허 대표는 결국 20여년간 피땀 흘리며 키운 매출 200억원대 회사를 매각하고 2009년 파산했다.
“저의 몸과 하나였던 회사가 마치 신기루처럼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마치 허공에 떠서 사는 사람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어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지요. 파산 후 집이 경매로 넘어 가면서 죄인처럼 보낸 시간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파산 후 사업에 실패했다는 자책과 괴로움에 깊은 좌절감을 맛봐야 했던 허 대표. 하지만 좌절도 잠시, 그는 이를 딛고 다시 도전을 선택했다. 그동안의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아이템을 찾던 허 대표는 이어폰 시장을 주목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도전할만한 분야이고,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스피커 기술력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 자금은 지인의 도움과 중소기업진흥공단 재창업 자금을 통해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허 대표는 파산한 후 약 3년 만인 지난해 4월 ‘SWP 신우테크’로 재창업했다. 올 3월에는 회사명을 티피오스로 바꾸고, 이어폰 모델 6종류를 개발해 온라인마켓에서 판매 중이다.
허 대표는 “사업을 10년 이상한 기업인에게는 경영 현장에서 터득한 경험이라는 큰 자산이 있어요. 이 경험들이 실패했다고 사장된다면 이는 분명한 국가적인 손실입니다. 문제는 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시작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는 것이죠. 실패가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의 재기를 돕는 정부의 지원 확대가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기고 l 똑똑한 실패의 조건
실패 통한 창조적 성과 회사의 중요 가치
숨기면 더 큰 실패로 연결… 실패 정복 위한 조직차원의 실질적 노력 필요


 

일반적으로 실패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창조를 강조하는 기업들은 오히려 직원의 실패를 장려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산업 디자인 기업인 아이데오는 ‘직원의 실패할 수 있는 권리가 자신들의 창조적 성과의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3M이 1948년 이후 경영원칙으로 삼고 있는 ‘맥나이트 원칙’은 ‘직원의 실수를 용인하고 새로 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직원의 자율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실패, 두려움을 낮춰라
그러나 모든 실패가 기업이나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며, 창의성을 불러일으키는 ‘똑똑한 실패(intelligent failure)’만이 성공을 위한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실패는 ‘결과물이 목표에 달성하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데, 이 실패를 통해 새롭게 얻게 되는 지식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하버드대 학교의 에드먼슨(Edmondson) 교수는 실패의 원인에 따라 실패를 다양하게 정의하고, 칭찬받을 실패만이 창의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칭찬받을 실패란 많은 학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가 복잡해 나타나는 실패로, 실패 자체가 해당 분야의 지식기반을 확대하는데 기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적 기업들은 직원들의 ‘똑똑한 실패’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다음의 네 가지 전략을 활용한다.
첫째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낮추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실패 위험이 높은 과제는 시도조차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실패로 인한 비난, 업무 자신감 하락, 자긍심 훼손 등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적 기업들은 직원이 최선을 다해 실패했을 경우 자신감 하락을 방지하고, 위험 회피적 행동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수한 실패에 대해서 시상한다. BMW는 ‘이 달의 창의적 실수상’을 선발하며, 3M은 실패 연구원을 위해 ‘실패파티’를 개최하기도 한다.

실수나 실패를 숨기지 마라
둘째, ‘실패 내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일단 실패가 발생하면 은폐하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직원들은 긍정적인 징후에 대해서는 확대하고 부정적인 징후는 축소하여 경영진에게 보고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직원들은 부정적인 데이터나 증거는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거나 우연한 현상으로 간주하고 무시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수나 실패를 숨기면 유사한 실패가 반복해서 나타나며, 더 큰 실패로 연결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창조적 기업들은 실패를 드러낼 수 있도록 장려한다. 작은 실패라도 우연한 실수로 보지 않고 살펴보면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듀폰은 1930년 우연히 나일론을 개발했지만 당시에는 작은 실수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갖지 않아서 10년 후에 공식적으로 개발하게 되었다.
투자비용이 클수록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기 곤란하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멈출 수 없게 되는 몰입 상승(escalation of commitment) 현상이 발생해 큰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모토로라는 위성전화기(이리듐) 개발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리듐으로 새로운 글로벌 개인 커뮤니케이션 시장을 창출했다’라고 발표하기까지 하였다.
결국 직원이 실패했다고 판단했을 때 실수에 대해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네소타 아동병원은 실패나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익명으로 실수에 대해 작성하는 ‘비난 없는 보고서 (Blameless Report)’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로 초기 에는 실패율이 증가했지만, 실패로부터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꾸준히 실천한 덕분에 점차 실패율이 감소하였다.

실패 경험을 공유하라
셋째, ‘초기에 많이, 빨리 실패하도록 독려’한다. 창조 기업은 과제 초기에 실패를 많이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다. 이들은 실패가 많을수록 창의적인 산출물이 나올 확률도 증가 한다고 믿고 있다. 아이데오는 ‘일단 아이디어의 양을 늘려라’와 ‘양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의 질에 대한 판단 나중에 하라’라는 브레인스토밍 원칙을 가지고 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부 기업은 저렴하게 많이 실패할 수 있는 방법으로 ‘프로토타입핑’을 권장한다. 프로토타입핑이란 다각도로 연구하고 정밀하게 설계한 후 모형을 만들기 보다는,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마분지와 풀 등의 간단한 재료를 활용해 먼저 모형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추가하는 방법이다.
또한 창조기업들은 빨리 실패하는 것을 강조한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실패를 빨리, 미리, 제때 경험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을 낮추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넷째, ‘실패 경험을 자산으로 축적’한다. 창조 기업은 ‘누가 실패했는가’는 묻지 않는 대신, ‘왜 실패했는가’에는 매우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실수나 부정으로 간주하기 보다는 집단이나 조직 차원으로 끌어올려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 실패에 대해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동료 간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장을 만들고 직원들이 실패를 공유하도록 돕는다.
토이스토리 등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기업 픽사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직원이 동료들에게 도움 을 요청하는 ‘리뷰 회의’를 소집하도록 하고 있으며, 3M은 매주 금요일 오후 동료와 의견을 교환하는 ‘Show and Tell Time’을 운영하고 있다.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도중에 우연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고어앤어소시에이트는 일주일간의 근무시간 중 반나절은 직원이 마음껏 실패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장난 시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경쟁사 대비 수명이 3배가 긴 기타줄을 개발한 것도 이 시간에 의료기기 생산팀이 우연히 개발했다고 한다.



실패 방법론 효과적 전파해야
많은 기업들이 실패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미흡한 수준이다. 실패를 창조적 성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똑똑한 실패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직원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효과적으로 실패하는 방법론을 전파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아이데오는 빨리, 많이 실패할 수 있는 12가지 방법(관찰, 감정이입, 프로토타입, 스토리텔링, 추상적 사고 등)을 직원들에게 교육시킨다.
또한 실패를 촉진하고 실패를 통한 창조적 성과가 회사의 중요한 가치임을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인 평가지표를 임직원에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3M은 전체 매출의 30%는 반드시 최근 4년 이내에 개발된 신제품이어야 한다는 관리지표를 사용해 회사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똑똑한 실패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직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