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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通

한 남자의 부끄러움이 탄생시킨 여성명품란제리브랜드

브랜드 밸류와 톱 모델, 그리고 고급스럽고 섹시한 디자인이 합쳐져 여성 명품 란제리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는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이하 빅시)’.

란제리를 철저하게 패션으로 접근해 ‘속옷도 패션’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낸 빅토리아 시크릿은 섹시를 꿈꾸는 여성들의 로망을 이용해 ‘특별한 날의 란제리’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란제리 브랜드인 빅시가 우리나라에도 지난 2009년 5월 정식 수입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 또한 매우 뜨겁다. 빅시는 2006년에 영업이익 10억달러를 돌파했고, 판매량은 70억달러를 넘어섰다.

빅시의 첫 출발은 한 남자의 부끄러움에서 시작됐다. 스탠포드대 경영대 출신의 로이 레이먼드는 부인에게 속옷을 사주기 위해 속옷가게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남성들이 덜 창피하게 여성 속옷을 살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1977년 레이먼드는 은행에서 4만달러를 대출받아 직접 스탠포드 쇼핑센터에 속옷매장을 열었다. 속옷가게에 들어서기 부끄러워할 남성고객들을 위해 카탈로그 주문을 받고 3개의 매장에서 배달하는 시스템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매장을 연 첫해에만 5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5년간 빅시를 성장시켜 온 레이먼드는 1982년 ‘The Limited’의 창립자인 사업가 레슬리 웩스너에게 400만 달러를 받고 빅시를 매각했다. 웩스너는 빅시가 구매자인 남성과 착용자인 여성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문제점에 주목, 여성을 주 타킷으로해 감성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고급스럽고 세련된다가 섹시하기까지한 속옷을 일상에서 탈피한 특별한 날 입는다는 이미지를 심어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특히 빅시는 1990년대 들어 슈퍼모델의 광고 기용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크릿 엔젤스’란 이름으로 가능성 있는 모델을 발굴해 톱모델로 키워냈다. 빅시 출신 모델치고 톱스타이지 않은 인물이 없다. 섹시 심볼 메간 폭스를 제치고 ‘트랜스 포머3’의 여주인공을 꿰차며 단박에 톱스타 반열에 오른 로지 헌팅턴 휘틀리나 ‘모델계의 살아있는 전설’ 지젤 번천도 빅시 출신이다. 또 남성잡지 ‘GQ’의 표지모델을 장식한 최초의 흑인 타이라 뱅크스, 자타공인 최고의 모델 케이트 모스, 국내 활동으로 유명한 제시카 고메즈 또한 빅시 출신이다.

1999년 세계 최초 란제리 패션쇼를 연 이후 매년 이어지고 있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는 세간의 이슈가 되고 있다. 빅시 패션쇼는 쇼에 나온 모델이 누구냐에 따라 입장티켓 가격이 최소 7만5,000달러라는 소문이 인터넷을 떠다닐 정도다. 속옷을 입고 날개를 단 요정 같은 모델들의 워킹을 볼 수 있고, ‘Spice Girl’의 컴백무대도 펼치지며,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합동쇼도 진행된다. 2,000만명이 패션쇼를 지켜본다는 집계도 있다.

란제리로 출발한 빅시는 1995년부터는 언더웨어 사업에서 벗어나 의류, 소품, 잡화 등 여성과 관련된 패션용품을 모두 생산하기 시작했다. 상품 카테고리를 확장시킨 ‘PINK’ 라인은 매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파파라치 사진이나 거리를 걷는 젊은 여성들의 트레이닝복 엉덩이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문구가 바로 ‘PINK’다. 핑크는 젊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빅시가 선보인 캐주얼 란제리 라인으로 속옷뿐만 아니라 트레이닝복, 잠옷, 홈웨어, 침구류 등까지 생산한다.

미국내에만 1,000여개의 매장을 두고 있는 빅시는 이처럼 남성들에게는 환타지를 여성들에게는 자존심을 심어 명품 란제리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박현정 기자 phj@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