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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通

역사가 된 기업 이야기 | ④KFC(미국)

④미국 KFC
세계인 입맛 잡은 프랜차이즈 대명사
1952년 66세 커넬 샌더스가 창업… 11가지 소스 비밀 박물관 금고에 보관

 

 



프랜차이즈의 대명사 KFC는 두 가지 점에서 놀라운 기업이다. 하나는 창업자금이 턱없이 적었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창업주가 KFC를 시작할 당시 상당한 고령이었다는 점이다. KFC의 창업주인 커넬 할랜드 샌더스(Colonel Harland Sanders). KFC 매장 앞에 서서 따뜻한 미소로 고객들을 맞이하는 할아버지 인형의 모델이 바로 그다. KFC의 창업주이자 마스코트인 커넬은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1952년, 커넬이 KFC를 시작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무려 66세. 잇따른 사업 실패로 105달러의 사회보장연금을 받으며 생활을 연명해야만 했던 그가 마지막으로 뛰어든 사업이 바로 프랜차이즈의 대명사인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이었다.

압력솥 이용한 닭요리 개발
1890년 9월 9일에 태어난 커넬은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일을 해야만 했고, 어린 커넬은 3살짜리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을 스스로 돌봐야만 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하게 되었고 7살부터 웬만한 요리는 혼자서 할 수 있었다. 그는 10살이 되던 해, 농장 근처에서 월 2달러를 받으며 처음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철도소방원부터 보험 외판원, 유람선 승무원, 타이어 판매원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거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22세에는 첫 사업인 램프 제조판매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가게는 문을 닫았고 그동안 모은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 첫 사업의 실패 후 그는 열심히 일해 조그마한 가게를 경영하기에 이르렀으나 39세 때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또 다시 전 재산을 날려버렸다. 그가 40세가 되던 해, 그는 켄터키주 코빈(Corbin, Kentucky)의 조그마한 주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주유소를 지나가던 한 손님이 내뱉은 “이 마을에는 도대체 먹을 것이 없어!”라는 불평을 듣게 됐다.
“주변에 음식점이 없으니 주유소를 찾는 손님들에게 간단한 음식을 팔면 어떨까.” 평소 요리를 좋아했던 그는 주유소 창고에서 닭튀김 요리를 조금씩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프라이팬으로 닭요리를 하던 것과는 달리, 그는 압력솥을 이용한 속성 닭튀김 요리법과 ‘11가지 허브 비밀 양념’을 개발했다. 돈이 없었기에 본격적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할 수는 없었다. 주유소에 들른 여행객들에게 손수 만든 음식을 분식점 규모로 제공했다. 커넬의 닭요리는 배고픈 여행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조금씩 그의 닭요리가 입소문이 나면서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일하던 주유소 건너편에 142명이 앉을 수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 후 커넬의 식당은 더욱 유명해졌다. 그의 닭요리가 켄터키의 대표적인 요리로 소문이 나면서 커넬은 켄터키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공으로 켄터키주의 명예 대령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1939년, 커넬의 식당은 맛있는 음식점 등을 소개하는 잡지 던칸 하인즈의 ‘Adventures in Good Eating’에도 실리게 되었다.



경제불황으로 65세에 파산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고로 아들이 죽고, 일에 몰두했던 그는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다. 비극은 계속됐다. 같은 해 원인 모를 화재로 식당이 불에 탔다.
다시 식당을 차려 재기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1950년대 초 식당 주변에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 잇따라 미국에 들이닥친 경제 불황으로 결국 식당은 경매로 넘어가고 커넬은 또 다시 파산했다. 그의 나의 65세. 이미 환갑을 훌쩍 넘은 커넬은 국가에서 받는 사회보장기금 단돈 105달러를 가지고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그렇게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커넬은 자신의 닭요리 레시피를 가지고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더 이상 생활보조금에 의존해 여생을 보낼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자동차를 몰고 압력밥솥과 튀김양념을 직접 가지고 다니며 전국을 돌기 시작했다.
“내가 개발한 11가지 양념의 닭튀김 비법을 파는 거야. 조리법을 알려주는 대신 로열티를 받는 거지. 분명 관심이 있는 식당 주인이 있을 거야!”
전국을 다니며 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자신이 요리한 치킨을 공짜로 맛보여주고, 마음에 들면 체인점 계약을 맺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로열티를 주고 체인점을 한다는 것은 그때 당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돈을 주고 그의 조리법을 사겠다는 식당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1009번의 거절 끝에 마침내 68세, 1010번째 찾아간 식당에서 그는 첫 계약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식당 주인인 피터 하먼은 커넬의 요리 맛에 반해 닭 한 마리당 약 4센트(약 40원)의 로열티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KFC 1호점이 탄생한 것이다. 커넬은 기본 메뉴를 닭튀김과 샐러드, 음료로 단순화시켜 지역별로 체인점을 늘려갔다.

체인점 사업으로 재기 성공
잠은 차에서 자고, 세면은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에서 해결하는 등 직접 발로 뛰는 영업을 통해 KFC의 프랜차이즈점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커넬은 신규 개점하는 프랜차이즈점에 프라이드 치킨의 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11가지 비밀 양념의 완성품만을 공급하며, 자신의 비법을 비밀로 유지한 채 계속 보완해 나갔다.
그의 닭요리는 더욱 유명해져서 그가 74세가 되던 해인 1964년에는,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해 600개 이상의 엄청난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만 200만달러에 이르렀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1964년 자신보다 더욱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전문 경영인 존 브라운에게 KFC 회사를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그리고 자신은 경영에서 손을 떼는 조건으로 매년 4만달러의 연봉과 고문직을 보장 받았다.
전문 경영기술을 가진 새로운 주인 아래에서 KFC는 성장에 가속도를 붙였다. 1966년, KFC는 주식을 공개하게 되었고, 1969년에는 NYSE(뉴욕주식거래장)에 상장됐다.
1971년, 회사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매장이 3,500개 이상으로 전 세계에 퍼져있을 때, 휴브레인(Hueblein)사에서 KFC를 인수했다. 그 이후에는 휴브레인사가 RJR Nabisco사에 의해 인수되었고, 1986년에는 펩시(Pepsi)사가 인수했다. 당시 KFC는 약 8억4,000만달러(9,660억원)의 자산 가치를 가졌다.
이후 1997년 1월, 펩시사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몇 개의 레스토랑을 개인 회사로 분배시키고, Tricon이란 세계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 시스템을 소유한 회사가 KFC를 인수했다. Tricon사는 이후 얌브랜즈(Yum Brands)로 회사명을 바꾸게 되었다. 현재 KFC의 모기업은 얌브랜즈이다.
KFC는 세계 약 80여 개국에 1만 3,300점이 넘는 매장을 구축하고 있는 유례없는 최대 규모의 외식산업체로 성장했다.

11가지 비밀 레시피 전략
“훌륭한 생각, 멋진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포기하는 대신, 무언가 해내려고 애썼다.”
1976년, 커넬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존경받는 사업가로 선정됐다. 그는 1980년 전 세계에 약 1만4,000여 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약 8억4,000만달러(9,660억)를 보유한 자산가가 되어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 노인의 로열티 계약에서 시작한 KFC가 현재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의 대명사로 성장하기까지는 KFC 맛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커넬의 11가지 비밀양념 치킨조리법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비법은 오늘날까지도 유지돼 전 세계 KFC 매장에서 맛볼 수 있다.
이 레시피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커넬과 KFC 1호점의 주인 피터 하먼을 포함해 총 6명에 불과하다고. 허브를 비롯한 스파이스 등 11가지 소스의 비밀은 현재 켄터키의 박물관 금고에 보관되어 있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이 레시피는 KFC의 영업 비밀로 실제 프랜차이즈 사장들도 모른다. 코카콜라처럼 커넬은 KFC의 11가지 소스 레시피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로열티 등 지적 수입을 활용한 최초의 프랜차이즈 창시자인 커넬은 흰색 양복을 고수하며 자신을 브랜드화한 것과 방송매체를 적극 활용한 점 등 요리 실력과 더불어 마케팅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이외에도 KFC는 미국 방식의 프라이드 치킨을 세계에 퍼뜨린 ‘일등공신’으로 통한다. 패스트푸드 기업이면서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되는 ‘철저한 미국기업’인 KFC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 바로 발 빠른 시장 진출과 각국의 입맛에 맞춘 현지화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KFC는 프랜차이즈 기업에서는 흔하지 않은 철저한 메뉴 현지화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핫크리스피 치킨’을 선보인 것도 그런 차원이다. 매콤한 맛과 바삭바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식성에 맞춘 메뉴를 새롭게 개발한 것이다.
이러한 현지화 전략으로 KFC는 외자기업에 대한 제약과 반감이 심한 중국시장에서도 프랜차이즈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다. KFC의 모기업인 얌브랜드는 1987년 중국에 진출, 현재 650개 도시에서 3,700여개 매장(KFC 3,200개,피자헛 500개)을 운영하고 있다.
얌의 중국 패스트푸드 시장 점유율은 40%로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날드(16%)는 물론 중국 본토업체들보다도 월등히 앞섰다.
얌은 지역업체들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경영진의 90% 이상을 중국인으로 채웠으며, 100여명의 중국인 연구개발 인력을 통해 중국식 메뉴 개발에 힘을 쏟았다.
중국 KFC는 치킨, 햄버거 외에 토마토계란탕 등 죽요리, 샤오빙, 춘권 등 현지인의 입맛에 맞춘 중국식 메뉴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KFC는 이런 전략으로 100여개 나라에 1만6,200개 점포를 열었다. KFC의 전략은 해외 진출에 나서는 외식 브랜드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현지화 전략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이미영 기자 l misaga@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