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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COVER STORY | 1. 비전통자원시대 개막


▲한국석유공사가 지분을 투자한 미국 텍사스 이글포트(Eagle Ford) 셰일가스 광구. (사진 : 한국석유공사)


새로운 석유가 온다


20세기 이후 석유는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동력원이다. 석유의 위력은 지난 세기 2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익히 경험한 바 있다. 세계 경제는 석유 없이 존재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석유자원 고갈에 대한 위기감도 늘 상존해 왔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석유자원들이 이러한 불안감을 잠재우며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친환경신재생에너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그동안 채굴기술과 경제성 등의 이유로 잠자고 있던 새로운 석유자원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전통에너지자원으로 불리는 새로운 석유자원은 기존의 에너지시장 질서와 석유고갈 위기까지 불식시키며, 세계경제 판도를 바꿔놓을 기세다.

■ 글 l 이신덕 기자 oponce@gfeo.or.kr




비전통자원시대 개막
신채굴법·고유가로 채산성 갖춰
자원고갈 우려 불식… 셰일가스 앞세운 美, 2017년 제1 산유국 될 듯



“피크오일(Peak Oil)이 머지않았다.”
신재생에너지조사기관인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 이낸스(BNEF)> CEO인 마이클 리브라이흐(Michael Liebreich)가 지난 4월, 2013 BNEF 연례총회에서 주장한 말이다. 피크오일은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한 후 감소할 것이란 의미다. 1956년 미국의 지구과학자 마리온 킹 허버트 (Marion King Hubbert)가 처음 사용했다. 당시 허버트는 미국의 석유생산이 1970년대 초에 정점을 찍고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피크오일에 대한 주장은 이후에도 시기를 바꿔가며 계속 나왔고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주장도 엇갈린다. 독일의 에너 지워치그룹(EWG)은 이미 2006년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세계에너지협의회(WEC)는 2060 년은 돼봐야 피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지 않는 석유자원
“피크오일은 틀렸다.”
지난해 7월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의 고정칼럼리스트이자 환경운동가인 조지 몬비오(George Monbiot)가 그의 칼럼에서 주장한 말이다. 물론, 리브라이흐나 몬비오의 이 피크오일에 대한 주장들은 환경문제라는, 보다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석유자원에 대한 고갈이나 생산 정점 시기에 대 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근 이런 피크오일 논란을 당분간 잠재울만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원유, 천연가스 등의 가채매장량이 크게 늘어난 것. 바로 비전통에너지자원으로 불리는 새로운 석유자원들의 개발 여파 때문이다.
비전통에너지자원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기존 석유나 가스의 생산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생산되는 에너지 자원을 뜻한다. 기존의 채굴방법으로 생산되는 석유나 가스는 전통에너지자원으로 불린다.
비전통에너지자원은 비전통가스와 비전통석유로 나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비전통가스를 크게 셰일가스(Shle Gas), 탄층메탄가스(Coalbed Methane, CBM), 타이트가스(Tight Gas) 등 세 가지 형태로, 비전통석유는 오일셰일(Oil Shale), 오일샌드(Oil Sand) 기반의 초중질유와 비튜멘(bitumen, 원유, 아스팔트, 피치, 석탄 등)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류지철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전통자원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리적으로 전통자원에 비해 넓은 지역에 매장되어 있으며, 잔존 기술적 회수가능 자원량(TRR, Technical Recoverable Resources)도 전통자원과 비슷한 규모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석유자원 가채년수 200년으로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셰일가스는 전통적인 천연가스가 원래 생성되었던 근원암인 셰일층에서 생산하는 것이기에 전통 천연가스와 동일한 에너지원이며, 오일샌드, 샌드오일, 타이트가스 등도 모두 전통석유 및 천연가스와 동일하다”며 “전통석유의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고 있으니 석유생산피크 시점이 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틀린 주장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몬비오는 “피크 오일론이 지질학적 현상이 아니라 저유가를 고유가로 끌어올려 추출이 어려운 원유를 퍼내는 기술 개발 투자를 받으려는 석유업계의 의도된 생산 제한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석유자원에 대한 정확한 매장량은 특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산유국들이 석유와 관련된 정보나 자료에 대해 기밀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석유자원의 매장량은 탐사기술 등의 발달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관별로 자료들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이유다.
영국의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이 지난 6월말 발표한 <세계 에너지통계 재조사>에 따르면 세계 석유 확인 매장량은 2010년 1조3,832억배럴에서 2011년 1조6,526억 배럴, 2012년 1조6,689억배럴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BP가 추정한 가채년수(확인 매장량을 전년도 생산량으로 나눈 것)는 2012년 기준 53년이다.
반면, IEA가 발표한 <2012년 세계 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전체 석유자원의 가채년수(확인 매장량을 전년도 생산량으로 나눈 것)는 189년. 이중 전통석유는 86년, 비전통석유는 103년이다. 가채매장량은 전통석유 2조7,000억배럴, 비전통석유 3조2,000억배럴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전체 가스자원의 가채년수는 241년으로 전통가스는 141년, 비전통가스는 103년 정도 될 것으로 추정했다. 세계 천연가스 가채매장량은 790조㎥. 이중 비전통가스 가채매장량은 328조㎥이며, 전통가스 가채매장량은 462조㎥다. 어쨌거나 피크오일에 대한 근심은 비전통자원의 개발로 인해 그 시기가 대략 200년 정도 뒤로 밀려나게 됐다.


<사진 : 한국석유공사>

셰일가스·타이트오일 가장 활발
비전통자원 중 현재 가장 개발이 활발하고 안정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것은 셰일가스와 타이트오일(셰일오일)이다. 셰일가스와 타이트오일은 모두 셰일층에서 유사한 방법으로 채굴된다. 새로운 채굴법은 셰일가스와 타이트오일의 생산단가를 크게 낮췄다. 이들 자원의 채굴에는 1990년대 말 개발된 수압파쇄법과 수평시추법이 사용된다.
미국은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타이트오일 생산량은 2010년 82만b/d에서 2012년 200만b/d로 143%나 늘었다. 2020년이면 생산량이 281만b/d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타이트오일의 생산증가로 1970년 이후 감소해오던 미국의 석유생산량은 2009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0년 548만b/d였던 미국의 석유생산량은 2012년 650만b/d로 증가했다. 또 석유수입도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12년에는 최대수입국 지위를 중국에 넘겨주었다.
IEA는 미국이 2015년이면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천연가스생산국이 되고, 2017년이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서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또 2020년에는 천연가스 순수출국이 되고, 2030년쯤에는 석유 순수출국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비전통에너지 개발의 파급효과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셰일가스 등 비전통에너지 개발이 진행되면서 고용, 부가가치 창출 등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이 파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비전통에너지 개발로 인한 고용창출 규모는 2012년 175만명에서 2020년 3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2013년 6월 경제활동인구 1억5,583만5,000명 기준으로 고용률이 1.1%p에서 2.2%p로 증가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GDP는 2012년 2,377억달러에서 2020년 4,166억달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필두로 세계가 들썩
미국에서 불기 시작한 비전통에너지 개발 붐은 이제 세계로 옮겨가고 있다. 북미의 또다른 산유국 캐나다가 주력하고 있는 비전통에너지는 오일샌드다. 오일샌드는 원유를 함유한 모래나 사암으로 아스팔트와 같은 중질유를 10% 이상 함유하고 있다. 오일샌드는 2t을 정제하면 1t의 원유생산이 가능하다. 캐나다의 오일샌드 생산량은 1990년 40만b/d에서 2010년 200만b/d로 크게 증가했다. 캐나다는 오일샌드의 생산 증가로 인해 2011년~2030년 사이 석유생산량이 연간 2.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셰일가스는 전 세계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현재는 시추기술과 인프라를 잘 갖춘 미국이 전 세계 셰일가스 생산량의 95%를 생산한다.
세계 최대의 셰일가스 매장지로 알려진 중국은 2011년 중반에 첫 탐사계획을 수립했지만 기술 등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신 중국은 CBM과 타이트가스 생산에 공을 들이고 있는 중이다. 중국은 2011년 타이트가스 1.6bcf/d(Billion Cubic Feet/Day, 10억입방피트/일), CBM 0.1bcf/d를 생산했다.
호주 역시 천연가스 생산 중 CBM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2010년 호주의 CBM 비중은 전체 쳔연가스 생산의 약 20% 정도다. 베네주엘라는 초중질유(Extra Heavy Oil)를 생산하고 있다. 베네주엘라의 초중질유 생산량은 2011년 60만b/d, 2020년 140만b/d, 2030년 180만b/d로 증가할 전망이다.
세계 각국의 비전통에너지 개발이 확대됨에 따라 세계 석유 및 가스 생산에서 비전통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IEA에 따르면 세계 석유 생산량에서 비전통석유가 차지는 하는 비중은 2011년 4.65%에서 2035년 13.2%로 확대되고, 비전통가스는 세계 천연가스 생산량 중 2010년 14%에서 2035년 26%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환경파괴 등 문제도 적지 않아
비전통에너지자원의 미래가 반드시 보랏빛인 것만은 아니다. 셰일가스의 생산량 증가는 천연가스의 현물가격 하락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미국의 셰일가스 사업은 채산성이 크게 악화됐다. 비전통에너지 개발은 몬비오의 지적처럼 기본적으로 고유가일 경우 경제성이 보장된다.
환경오염도 문제다. 셰일가스 및 타이트오일 추출에 사용되는 수압파쇄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 오일샌드 시추 때는 점도가 낮아진 원유성분이 주변 호수로 유입되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하수의 발암물질을 증가시키는 등의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비전통에너지자원의 개발은 또 다른 에너지 분야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은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촉발시켰다. 피크오일의 위기감은 신재생에너지 개발의 동력이 됐고, 세계 각국은 정부차원에서 적극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비싸진 석유가격은 비전통에너지자원 개발이라는, 신재생에너지로서는 결코 반갑지 않은 상대를 만들어 놓았다. 비전통에너지자원의 부상은 마치 한동안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던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대한 석유자원의 역습처럼 보인다.
비전통에너지 개발은 지금의 산업구조와 풍요를 큰 비용의 추가 없이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대한 국내 산업의 대비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풍요에 빠져 환경과 미래를 잃어버리는 실수는 범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