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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중국 정부, 대대적인 '소비촉진운동' 펼치는 이유는?

“돈을 더 써 주세요!”

중국 정부가 최근 각 가정에 하고 있는 주문이다. 소비를 더 해달라는 요구다.

중국 정부는 4월부터 한 달 동안 대규모 소비촉진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상무부는 최근 ‘2012년 소비촉진 활동 통지’를 발표하고 청명절인 4월 4일부터 노동절인 5월 1일까지 소비활성화 운동을 벌인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성·시 정부들과 대형 소매업체, 요식업체들이 참가한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소비촉진 활동을 벌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소비촉진 활동은 신용카드 사용 확대, 요식업소 이용, 인터넷 쇼핑, 녹색 소비, 민생과 관련된 명품 브랜드 육성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베이징에서는 3월부터 상점과 대형 쇼핑몰, 전자제품 매장마다 신학기나 봄맞이 할인 행사들이 시작됐다.

<중국의 유명 유통할인점 쑤닝의 3월 이벤트를 알리는 광고>

대외 의존도 낮추고 자생력 키우기 일환

이번 소비촉진 운동은 소비를 경제성장의 중요한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소비둔화와 경기하강을 막기 위한 측면도 크다.

중국은 유럽 채무위기와 미국의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수출비중을 줄이고 내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경제발전 모델을 바꾸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즉 경제에서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자생 능력을 높이겠다는 것. 오는 10월, 10년 만의 권력 교체를 앞두고 있는 공산당 정부는 내수확대와 소비수요가 경제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디딤돌이라며 내수 확대를 올해 경제전략의 기점으로 삼겠다고 천명했다.

베이징대학 광화관리학원 한 연구원은 “중국에서는 대외 불확실성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며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수출과 투자 주도의 성장 모델로는 한계가 있고 내수 확대와 소비증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내수 확대를 목적으로 4조위안의 경기활성화 자금과 7조위안의 은행 신규대출 등 무려 11조위안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이에 힘입어 내수확대 정책은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먼저 내수가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기여하는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GDP에서 내수 기여도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의 20% 안팎에서 지난해 51.6%로 늘었다. 중국의 소비가 경제성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내수가 늘어나고 있는 조짐은 수입의 증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대외무역에서 수입금액이 올해 1조7,434억달러로 전년 대비 24% 급증하며 세계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정자산투자의 GDP 성장률 기여도는 지난해 54%를 기록했다. 투자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내수와 수출을 제치고 가장 높았다.

GDP대비 내수 기여도 51.6% 달해

이처럼 내수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처음으로 민간기업과 손잡고 소비촉진 캠페인을 벌이는 데는 가정의 소비가 원하는 만큼 증가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즉 소비가 부진하다는 진단이다. 소비규모는 절대금액으로는 늘어나고 있지만 소비증가 속도는 경제성장 속도에 못 미치고 있어 실질적인 소비율은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흑룡해’인 올해 춘제(설) 연휴 기간 소비는 고가품을 중심으로 예상치에 크게 못 미쳤다. 2009년 이후 가장 적은 폭인 16% 증가율(총 4,700억위안)을 기록했다. 중국 관광객의 구매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내 백화점들의 올 초 매출 증가율이 전년 보다 줄어든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올 한해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 중국인들의 소비가 둔화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지속적인 주택가격 하락과 주식시장의 약세가 주요 원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집값은 올해 1월 중국 100개 도시 가운데 60개 도시에서 떨어졌다. 상하이 주가지수는 지난해 17% 하락했다.

베이징에서 중견 건설업체에 다니는 쟝가오리(37) 씨는 “지난해 중국 주식시장이 약세를 지속해 주식투자로 돈을 벌지 못했다”며 “그 때문에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바꾸려는 계획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국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상무부는 국민들의 소비확대를 위해 농촌에서 가전제품을 살 때 보조금(구매가의 13%)을 지원해 주는 ‘가전하향(家電下鄕)’과 중고제품을 새 제품으로 바꿀 때 지원하는 제도인 ‘이구환신(以舊換新)’을 대체할 후속조치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4년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가전하향 정책은 이미 끝난 지역도 있고 내년 1월에 중국 전역에서 만료된다.

유명 전자제품 유통점인 쑤닝전기의 베이징 매장 직원들은 “일반 소비자들이 정부의 소비촉진책을 기다리느라 제품 구매를 늦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이 몰려있는 베이징 시단지역 모습>

중고 처분 새 제품 살 때도 보조금 주기로

상무부는 특히 최근 발표한‘12차 5개년(2011~2015년) 계획 기간 소비확대를 위한 의견’에서 내수확대를 2015년까지 소매판매 총액을 연 평균 15% 늘려 32조위안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정부는 대형점포 육성, 전문시장 개발, 물류망 확대 등을 추진키로 했다. 또 다양한 소비추세를 감안해 중저가 백화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별 쇼핑센터 건설과 회원제 판매점 설립을 장려할 계획이다. 인터넷 이용자 확대에 대비해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인터넷전화 쇼핑, 자동판매, 무인점포 설립을 촉진키로 했다. 나아가 불법 복제품에 대한 추방 캠페인도 펼쳐 소매제품의 품질과 안전을 제고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서비스분야 소비확대를 위해서는 대도시에 ‘15분 생활 서비스권’을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눈에 띈다. 대도시에 음식, 미용, 목욕, 세탁, 가전제품 수리와 같은 생활서비스가 밀집된 지역을 조성해 주민들이 걸어서 15분 내에 각종 편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양로·가사 보조·의료 서비스를 발전시키고, 여행·건강·문화 분야의 소비확대도 적극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부 한 연구원은 “이 같은 생활 서비스 분야를 발전시키면 소비와 고용의 확대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가 내수부양과 소비확대를 위해 주목하고 있는 분야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관광산업이다. 당국은 국민들의 소득과 소비수준이 높아져 올해 관광산업 수입이 2조5,700억위안으로 지난해보다 14% 성장하면서 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자국인의 국내관광을 부추기는 동시에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관광 인프라 개선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백만장자 110만명…美, 日이어 세계 3위

소비촉진 활동에 힘입어 신용카드 발급과 사용도 늘어날 전망이다. 신용카드 발행량은 2003년 300만장에서 2011년 말 2억6,800만장으로 늘어났다. 중국인 5명 중 1명꼴로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셈이다. 금융위기 이후 내수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우량 개인고객들의 신용카드 발급이 늘고 있다. 전체 소비에서 은행카드 사용 소비율이 40%로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10대에서 30대까지 젊은이들은 소비의 주력군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가전제품이나 디지털제품의 구매, 자동차 구매, 외식, 여행 등에 적극적이다.

베이징에 있는 다국적 시장조사업체 입소스의 한 직원은 “장년층이 여전히 저축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반해, 요즘 신세대는 소비를 먼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부유층의 씀씀이도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중국내 백만장자 수는 지난 한해 31%나 늘어나 110만명을 넘었다.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정부가 적극적인 소비진작 정책을 펴고 나섰지만, 국민들이 지갑을 열고 소비를 크게 늘릴 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불완전한 사회보장체계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 동안 중국인들이 소비지출보다는 저축을 늘리는 성향을 보여 왔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회보장체계의 미비였다.

정부 산하기관에 다니는 30대 후반의 한 직장인은 “의료라든지 교육분야에서 사회보장체계가 많이 미흡하기 때문에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 저축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에 불확실성이 있을 때는 현금을 갖고 있으면 안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30대 중반의 직장인 톈차오 씨는 “우리 부부의 월 수입은 1만위안 가량인데, 우리뿐 아니라 부모님의 의료 관련 비용을 감안하면 다른 곳에 많은 돈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시민들의 최대 소비시장 중 하나인 국적 유통할인점 까르푸 매장>

부동산 등 고물가가 소비촉진 걸림돌로

집값도 중국인들이 생활에서 가장 많은 관심이 있는 문제다. 최근 칭화대학이 중국인의 10대 민생문제를 조사한 결과, 부동산 가격이 1위, 물가가 2위를 차지했다. 주택 가격은 수년 동안 서민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등했다.

베이징에서 IT업체에 다니는 20대 후반의 쟝샤오보는 같은 또래에 비해 많은 월 9,000 위안의 급여를 받지만 아파트 장만을 위해 절약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집을 마련해야 하는 데 집값이 너무 올라 걱정이다”며 “월세, 통신비, 밥값, 용돈을 빼고 나머지 돈은 모두 저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값에 대한 서민과 젊은이들의 불만이 비등해지자, 정부는 지난해 말 5년 안에 서민형 보급 주택인 ‘보장방’을 3,000만채 짓겠다고 발표했다. 중앙정부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 전국 보장방 착공 건수는 지난해 10월말을 기준으로 1,000만채를 넘어섰다.

또한 당국이 부동산에 대해 억제정책을 고수하면서도 일반 주택의 건설을 촉진하고 있는 것은 건설시장이 인력고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이기도 하다. 정부는 올해부터 5년 동안 해마다 도시지역에서 1,300만개의 일자리 부족 현상이 생겨 실업문제가 악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졸자는 올해 680만명으로 예상돼 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당국은 올해부터 2015년까지 도시지역에서 4,500만개, 농촌지역에서 4,000만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도시 실업률은 5% 이하로 억제한다는 목표다.

정부는 특히 소비확대를 위해선 가계의 수입을 늘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을 비롯한 임금인상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미 주요 도시에서는 최근 최저임금 인상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다만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중소기업의 자금 부담이 커짐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폭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기업들, 중국 내수시장 공략에 초점을

결국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중국은 ‘경착륙’을 피하는 동시에 경제발전 모델 전환을 위한 일환으로 내수육성에 박차를 가할 게 분명하다.

현재로선 내수확대의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는 게 중국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소득 증가, 가계대출 증가, 정부의 풍부한 재정 여력, 중서부 내륙 개발을 포함한 광대한 잠재적 발전 공간 등도 내수확대 가능성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 빠른 도시화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도시인구가 처음 농촌인구를 넘어서며 중국 전체의 소비 여력이 커졌다.

이를 놓고 볼 때, 많은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종전의 임가공 생산이 아닌 내수시장 공략을 목표로 하는 있는 것은 당연한 행보다.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의 매력이 사라지고 원가부담이 높아지고 있지만 내수시장이 지닌 커다란 잠재력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내 소비가 증가한다면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는 한국기업의 매출도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기대는 과하지 않다. 중국이 내수·소비 확대를 경제발전의 디딤돌로 삼음에 따라 한국이 중국 내수시장을 뚫어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 졌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내수시장 육성과 소비확대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는 게 필요한 때다.

<글사진 ㅣ 온기홍(중국통신원) onkihong@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