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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다이어트 하면 할수록 좌절만', 비만 해법은 없나?

“지금껏 살면서 단 한순간도 보통이었던 적이 없었어요.”

김영애(32세․키 159cm, 몸무게 90kg)씨는 자신을 엄마 뱃속에서부터 뚱뚱했던 아이였다고 말했다. 날 때부터 우량아였던 그녀는 초등학교 때 이미 몸무게가 50kg을 넘었다.

김 씨는 “어렸을 때는 통통해서 귀엽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가더라고요. 나중에 크면 다 키로 간다던 부모님도 제발 살 좀 빼라고 닦달하셨어요”라고 회상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김 씨의 생활은 처절한 다이어트의 연속이었다. 한방 다이어트부터 원푸드 다이어트, 무작정 굶는 다이어트까지, 살이 빠진다고 하면 무조건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효과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기쁨은 찰나, 다이어트를 그만두는 동시에 어김없이 ‘요요 현상’이 찾아왔다. 체중은 다이어트 전 원래의 체중, 그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제는 예전처럼 굶어도 살이 잘 빠지지 않아요. 오히려 조금만 먹어도 금방 살이 붙죠. 지금까지 다이어트에 쓴 돈만해도 집 한 채 값은 족히 될 거예요. 다이어트를 하면 할수록 좌절만 커질 뿐이죠.”

 

국내에는 4만~5만명으로 추산되는 초고도비만자가 있다. 이들 대다수는 고혈압, 당뇨병, 수면무호흡증, 심한 코골이, 고지혈증, 허리 통증, 심한 두통 등 성인병과 함께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 정신적 문제, 경제적 궁핍 등 복합적인 문제에 노출돼 있다.

반복된 다이어트 실패, 건강 악화로

<비만 히스테릭> 저자 이대택 국민대 교수는 “다이어트로 인해 요요현상을 반복하면 질병에 걸릴 위험과 사망률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과거 인간이 사냥하던 시절에 우리 몸은 다음 끼니가 언제일지 불분명해서 늘 배고픔에 대비한 열량을 별도로 저장해왔다. 그런데 그 유전자가 아직 남아서 다이어트 등으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체중을 불리려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결국 다이어트가 끝나자마자 요요현상으로 빠르게 체중이 늘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교수는 “체중을 줄이고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과정을 반복하면 면역 기능이 손상되어 심혈관질환·뇌졸중·당뇨 같은 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실업·자존감 하락 등 사회적 문제도 커

비만의 문제는 비단 건강만이 아니다. 외모로 인한 자존감 하락은 물론 실업, 따돌림 등 사회적 문제도 심각하다.

TV 프로그램 <화성인바이러스>에 출연했던 초고도비만인 신예린 씨의 하루 일과는 잠자는 것과 먹는 것이다.

신 씨는 “직장도 친구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다”며 “하루 종일 잠을 자다가 배가 고프면 일어나는 게 일과”라고 말했다.

중국 유학 후 대학을 조기 졸업하는 등 중국어 인재인 신 씨는 첫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으로 130kg이 넘는 초고도비만자가 됐다.

신 씨는 “첫 직장을 그만둔 후 다시 일을 구하기 위해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면접에서 떨어진다”며 “면접장에서 외모 때문에 뽑을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비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초고도비만자는 학교·직장·배우자 등에서 단계적으로 차별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소득도 낮다.

강재헌 서울대 교수는 “초고도비만자들은 마른 사람에 비해 지능이나 능력이 떨어지지 않는데도, 늘 차별과 편견에 시달린다”라고 말했다.

비만, 질병으로 인식 보험 적용해야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시대의 비만은 단순한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각종 질병의 원인인 만큼 다이어트를 ‘치료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과학적인 다이어트로 살을 빼거나, 필요에 따라 위를 묶거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들 비용들이 만만치 않아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만 전문가들은 비만치료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영국·미국·스웨덴 등은 비만치료를 위한 수술이나 약물 투여에 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이홍찬 이홍찬외과 원장은 “한국은 비만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만환자들이 의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그러다보니 대부분 비만 환자들이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침이나 지방흡입, 주사나 약물 치료 등 임시방편적인 치료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고도비만환자 치료비를 보험 급여에 적용하면 한 해 약 1,000억원(2만명 기준)의 예산이 들어간다. 문제는 국민의 인식이다. 초고도비만을 나태하거나 자기 관리를 잘못해서 생기는 미용의 문제로 여기면 왜 세금으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교수는 “초고도비만은 개인의 나태 탓도 있지만, 30~50%는 유전·환경이 좌우하는 엄연한 질병”이라고 말했다.

이홍찬 원장도 “비만수술을 건강보험에 적용해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며 “결국 그것이 건강보험 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