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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通

경기도 협동조합을 찾아서| ①일과나눔

①일과 나눔
“몸에 맞는 새 옷 입고 세상으로 나가요
주식회사에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환경·일자리 등 4개 부문 사업 활발




▲일과나눔은 주력인 ①청소 환경부문과 ②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에 기여하는 돌봄부문 ③취약계층의 주거복지를 강화하는 건축부문, ④유정란을 제공하는 농장부문 등 4개 사업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승자독식의 경제, 이윤추구’가 아닌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새로운 대안 경제, 협동조합이 뜨고 있다. 지난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경제 전 영역에서 5명 이상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 새로운 협동조합 시대를 맞아 G-Economy21은 경기개발연구원 사회경제포럼과 공동기획으로 이재광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직접 경기도내 협동조합을 방문해 생생한 현장 소식을 전하는 <新협동조합 시대-성공조합을 가다>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협동조합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이 해소되길 바란다.
- 편집자 주


‘누구도 가 본 적이 없는 길.’
주식회사인 법인격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요즘, 엄재영 일과나눔 사업본부장은 자신의 일에 이런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해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협동조합은 아무나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니다. 농업이나 수산업 등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법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없었다.많은 기업이 조직과 이념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면서도 주식회사나 사단법인 등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던 이유다.
“말이 주식회사지 실상은 협동조합이었어요.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이윤보다는 공익을 앞세웠고 직원과 이해관계자 등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의결권을 갖고 있었죠. 급여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최소 연봉자와 최고 연봉자 차이가 2.5배에 불과하니까요.”
엄 본부장은 ‘일과나눔’의 운영 시스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협동조합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법적인 문제로 주식회사의 옷을 입고 있어야만 했던 ‘일과나눔’.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이 회사는 드디어 ‘주식회사’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을 수 있게 됐다.
협동조합기본법은 누구라도 5명이 모이면 출자금에 상관없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주식회사 등 어쩔 수 없이 다른 법인격을 갖고 활동하던 많은 협동조합들이 자신의 성격에 맞는 새 옷을 입고 세상에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협동조합 전환 ‘어떻게?’
하지만 한 번 입었던 옷을 갈아입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일부는 왜 옷을 갈아입느냐며 불만을 제기하고 일부는 옷을 갈아입는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주주들의 반대는 이해할 수 있다. ‘자본’에 비례해 갖고 있던 지분을 버리고 출자금으로 전환하면 아무리 많은 출자금을 갖고 있어도 ‘1표’밖에 행사하지 못한다. 1억을 낸 사람과 100만원을 낸 사람의 의결권이 같은 조직, 그게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
엄 본부장은 “다행히 일과나눔에는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반대하는 주주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협동조합으로 가야 하는데 그 방법이 없어 주식회사로 경영해 왔기 때문이죠”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금껏 우리나라에서 주식회사가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사례가 없다는 것. 즉, 어떻게 해야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성공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엄 본부장은 “우리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워 컨설팅을 맡겼지만 그 역시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현안은 역시 주식을 출자금으로 전환하는 문제다. 잘 알려진 대로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다. 현재 일과나눔의 주주는 모두 8명, 자본금은 2억2,570만원이다. 주주들 모두가 주식을 출자금으로 전환하는데 동의했고 회계상·법률상 검토도 끝냈다.
일과나눔은 컨설팅을 맡았던 세무회계사무소 측으로부터 ‘회계상·법률상 문제 없음’이라는 의견도 통고받았다.
그러나 법과 회계 문제가 해결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가 ‘협동조합으로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임진혁 성혜회계사무소 회계사는 “의결권의 문제는 중요해요. 어제까지 단지 신입에 불과했던 직원이 협동조합이 되면서 소액의 출자금을 내고 경험 많고 출자금도 많이 낸 사람과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모순이 있죠. 아무리 협동조합의 원리를 따른다 해도 이 부분은 좀 더 신중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엄 본부장은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하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없다”며 협동조합 전환을 낙관했다.
일과나눔은 오는 3월 창립총회를 거쳐 기획재정부에 협동조합 전환을 신청하고 4월에 출범식을 가질 예정이다. 빠르면 4월 안에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전망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은 공익이 우선
오는 4월, 일과나눔은 사회적 공익을 우선시하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회적협동조합은 197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협동조합의 한 형태다.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목표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이후 세계적인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국가가 늘어나는 복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시장이 경쟁에 졌거나 아예 경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챙겨주지 못할 때, 바로 이 사회적협동조합이 그 일을 맡아서 수행한다. 사회적협동조합은 무한경쟁·고령화 시대에 큰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인정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도 아예 이 사회적협동조합을 명시하고 있다. 일반 협동조합이 제한된 상태지만 영리를 추구할 수 있고 업종이나 분야에 제한이 없는 반면 사회적협동조합은 철저하게 비영리법인으로 전체 사업의 40% 이상을 공익사업에 투입해야 한다.
또 일반 협동조합은 시·도지사에게 신고하지만 사회적협동조합은 중앙정부(기획재정부)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다.
그런데 왜 일과나눔은 일반 협동조합이 아닌 사회적협동조합을 지향하는 것일까? 공익사업에 전념하기 보다는 수익을 창출해 직원 급여를 올리고 조합원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에대해 엄 본부장은 일과나눔의 ‘태생’을 설명했다.
일과나눔은 자활센터에서 둥지를 틀었다. 2004년 10월 정승화 대표가 사업의 실패로 인한 쓰라린 마음을 안고 찾아가 일을 시작한 곳이다. 그는 사업수완을 인정받아 1년만인 2005년 독립해 역시 자활로 시작한 (주)함께일하는세상 남양주 지점을 맡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시작한 일은 건물위생관리, 쉽게 말해 청소업이다.
2009년 일과나눔이 주식회사라는 번듯한 문패를 내걸었을 때 그는 몇몇 자활사업단과 함께 일을 꾸려나가기로 했다. 2006년 유정란 생산을 목적으로 시작된 반디농장, 2007년 소외계층의 주거복지를 위해 시작된 건축사업단, 그리고 2008년 자활센터가 직영하던 돌봄사업이 그들이다.
엄 본부장은 “출범 당시 몇 가지 필요에 의해 네 개 영역을 묶기로 했습니다. 규모를 키워 경쟁력을 갖춰야 했고, 전문적인 경영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도 있었죠. 또한 공공 부문을 강화해 각 부문이 사기업화 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도 있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사업단은 현재도 그대로 남아 일과나눔의 네 개 사업부문으로 활동 중이다. 매출 규모가 가장 큰 부문은 역시 환경. 55명의 직원들이 연 11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돌봄 부문은 72명으로 직원 수는 가장 많지만 취업 중심이어서 매출 규모는 8억원에 그친다. 농장과 건축 부문은 각각 2명씩으로 매출 규모는 미미한 상태.
일과나눔처럼 자활사업을 통해 주식회사로 성장한 기업은 많다. 이들 중 적지 않은 기업이 일반 협동조합이나 사회적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일과나눔처럼 순조롭게 전환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병학 경기광역자활센터장은 “자활단체가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급여가 너무 낮고 규모도 영세한 데에도 직원 상당수가 기초생활 수급자로 나이나 건강 상 문제가 있죠. 게다가 몇몇 잘 나가는 기업은 영리적 경향이 강해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시장에도 국가에도 손 벌리지 않고 어렵지만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겠다는 자활인들의 소망이 이뤄지는 사회. 국가는 일단 협동조합기본법으로 그 터전을 마련했다면 이제 그들이 숨쉬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꾸며주는 일이 남아 있다.



 

mini Interview - 정승화 일과나눔 대표
“협동조합은 정성과 성의가 최대 자산이죠”


 

정승화 일과나눔 대표에게 졸업장이란 초등학교 졸업장이 유일하다. 1968년 초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생활 경력만 해도 40년이 넘는다. 월급쟁이와 사장을 오가며 생활하던 그가 가장 큰 위기를 겪은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때다. 이때 회사가 망한 뒤 가족 해체와 우울증 등을 겪어야 했다. 이후 그는 2004년 자활센터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재기를 꿈꿀 수 있었다.

Q l 자활센터에 들어간 계기는?
A l 1998년 회사가 망하자 집사람이 가출을 했어요. 몇 년 후 딸아이가 엄마를 데려왔는데 위암에 걸렸다는 거예요. 그때가 2004년이었는데 누군가가 자활센터를 찾아가면 1종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전적으로 아내 병원비 때문에 자활센터에 들어갔어요.

Q l 독립할 당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A l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어요. 당시 월 급여가 60만원 정도였는데 생활이 안됐죠.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6명이 2005년 독립을 했는데 청소 노하우도 별로 없었던 상태였어요. 하지만 열심히 일했고 2009년에는 1억원을 흑자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2010년 일과나눔으로 독립할 당시 직원 수도 18명으로 늘었어요.

Q l 청소부문에는 민간기업도 많습니다. 경쟁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경영을 했나요?
A l 능력으로만 보면 당연히 민간기업이 우세해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확실한 강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민간기업이 10명 일한다면 우리는 13명이 일합니다. 또 민간기업은 계약한 것만 해주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계약된 것이 아니라 해도 서비스 차원에서 일을 해 줍니다.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정성과 성의가 최대 자산인 셈이죠.

Q l 출범 당시 다른 사업 부문과 함께 나온 것이 부담이 됐을 것 같습니다.
A l 청소업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죠. 하지만 당시 4개 부문이 동시에 독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 혼자 잘 살겠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나 몰라라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당시 다른 사업 부문도 크지는 않지만 흑자를 보고 있었고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규모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함께 회사를 꾸리기로 한 것이죠”.

Q l 이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합니다. 향후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A l 사람은 모두 다릅니다. 누군가는 경쟁에서 이기고 누군가는 지지요. 그렇지만 힘없고 못 배웠다고 해서 이 사회에서 배척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 마음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죠. 협동조합은 특히 그렇습니다.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하나로 만드는 일, 그게 성공의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재광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imu@gr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