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마당을 나온 암탉>, 개봉 20일만에 80만 관객을 불러들인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의 공통점은 경 기도가 제작비를 투자한 애니메이션이란 점이다. 일본과 미국으로 대변되는 애니메이션 시장에 우리 애니메이션의 약진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 다. 경기도의 애니메이션 산업 현황과 발전 방안 등에 대해 살펴본다.
■ 글 l 이신덕 기자 l oponce@gfeo.or.kr
언젠가 축구 한일전이 벌어졌을 때, 우리 응원단이 응원가로 <마징가Z> 주제가를 불러 일본 응원단의 비웃음을 샀던 적이 있다. 어린 시절 TV를 통해 친숙하게 접했던 <마징가 Z>가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벌이진 해프닝이다. 게다가 주제가마저 곡 그대로 번안해 불렀으니 오해를 살만도 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 TV로 접했던 만화영화(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것으로 알고 받아들였고, 거기에 익숙해졌다. 애니메이션이란 장르가 주는 문화적 위상의 단면이다.
<뽀로로> 극장에 떴다
최근 유아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뽀로로>가 극장판으로 나와, 개봉 20일만에 80여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름하여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이다. <뽀로로>는 워낙 유명한 애니메이션이다. 이미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뽀로로>는 브랜드 가치 8,500억원, 경제 효과 5조7,0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상품이다. <뽀로로>는 성공한 애니메이션이 가져다주는 부가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대변하는 상징과도 같다.
지난 2011년에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의 가능성에 불을 붙인 작품이 탄생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이 작품은 무려 22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전까지 국산 애니메이션의 대명사는 <로보트 태권V>였다. 1970년대 히트했던 <로보트 태권V>를 디지털로 복원해 상영했을 당시 관객은 72만명이었다.
흔히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성공한 작품이 나오면,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높아졌고, 산업 기반이 튼튼해졌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지난 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의 매출액은 5,400억원이다. 2011년 5,300억원에서 100억원 늘어났다. 2012년 수출액은 1억600만달러로 2011년 1억1,600만달러에서 오히려 1,000만달러가 줄었다. 수출금액에는 함정이 있다. 여기서 해외 하청 제작 금액을 빼면 순수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초라한 수준이다.
문제는 또 있다. <뽀로로>의 예에서 보듯, 우리나라가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유아용이다. 유아용의 경우 장난감 시장 등을 통해 수익원을 다양화할 수 있어 쏠림현상이 심하다. 반면 아동용 이상으로 분류되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작품 외에는 마땅한 대체 수익원이 없어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애니 전설 만든 <신화창조프로젝트>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이 2015년까지 연평균 3.2%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0년 170억달러였던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은 오는 2015년이면 198억8,800만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자체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불러 모을 수 있는 최대 관객은 400만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220만 관객을 모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선전은 뜻하는 바가 많다. 지원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경기도의 투자를 받은 작품이다. 현재 국내와 중국에서 상영 중인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와 경기콘텐츠진흥원은 지난 2007년 <신화창조프로젝트> 라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제작 투자 사업을 시작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성공작이다. 이 사업은 성공 가능성이 있는 애니메이션을 선정, 투자해 제작비를 회수하고 다시 다음 작품에 투자하는 방식의 선순환 구조다.
2007년 투자된 <마당을 나온 암탉>이 2011년 성공을 거둠으로써 재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이 그 다음 투자 대상이 됐다. 당시 두 작품이 투자를 받았는데, 다른 하나는 내년에 개봉 예정인 <008 빼꼼>이다.
보다 특화된 지원 아쉬워
경기도에는 애니메이션 지원과 관련한 또 다른 기관이 있다. 바로 부천에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1998년 부천시가 설립한 부천만화정보센터를 지난 2008년 경기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지원해 새롭게 발족시킨 기관이다.
이곳에서는 <투모로우 애니스타>라는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사업은 만화 콘텐츠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을 지원한다. 지난해 이 사업에 선정된 작품은 두 개다. ㈜스튜디오 카브에서 제작 중인 카툰 판타지 <생활의 참견>과 ㈜스튜디오 애니멀에서 제작 중인 <놓지마 정신줄>이 그 작품들. <생활의 참견>은 HD 2D+3D특집 애니메이션으로, <놓지마 정신줄>은 모바일 스페셜로 제작될 예정이다.
이런 지원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콘텐츠 전반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확대되면서 초기 집중됐던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사업이 크게 줄었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도 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애니메이션 분야에 특화된 지원은 부족하다. 업계 입장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에 대한 직접 지원은 아니더라도 캐릭터나 마케팅 등과 같은 연관 산업들과 묶어서 지원하는 제도는 존재한다. 경기콘텐츠진흥원의 해외전시 참가 지원, 마케팅 홍보 지원, 유통 지원, OSMU 제작 지원 등이 그것들이다.
경기도, 국내 애니 산업 20% 점유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펴낸 <2011 경기도 콘텐츠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경기도내 애니메이션 관련 기업은 40개사였다. 가장 많은 기업이 소재한 곳은 부천으로 절반이 넘는 22개사가 위치해 있고, 다음으로 성남에 5개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기업의 2010년 매출액은 약 593억원, 수출액은 약 690만달러였다. 또 경기도내 애니메이션 산업 종사자는 678명이었다. 경기도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약 20%를 차지한다. 70%를 차지하는 곳은 서울이다. 이는 경기도와 부천시가 부천을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일찍부터 투자해온 결과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성공한 대표작은 있는데 그에 상응하는 후속 지원은 아쉬운 상황이다. 한마디로 미래가 불분명 하다는 이야기다.
생태계 형성할 밀집 공간 필요
경기도에서 부천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의 중심지다. 이런 상황에서 애니메이션 기업들이 밀집해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은 크다. 현재 대부분의 부천지역 애니메이션 기업들은 경기콘텐츠진흥원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 지원기관은 입주기업을 키워 내보내고 새로운 기업을 입주시켜 지원하는 것이 주 임무다. 하지만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이 여전히 출발점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양쪽 모두 이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관계자는 “지원기관에 입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지원이다. 하지만 기간이 끝나 이곳을 나가면 부천 지역에서 사무실을 임대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결국 이들이 선택할 곳은 이웃해 있는 서울이다. 경기도에서 기껏 키워 서울로 보내는 셈이다. 이 관계자는 “2015년 1월이면 현재 입주해 있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이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애니메이션 업계가 봉착한 또 다른 문제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유통구조에 있다. 애니메이션 시장은 크게 방송, 영화, 홈비디오, 디지털 배급 등으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시장은 방송이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30분짜리 TV용 애니메이션 기획·제작비는 평균 1억원 정도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에 팔리는 가격은 1/10인 1,000만원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케이블TV 등에 모두 팔아도 제작비의 25%도 못 건진다고 하소연한다.
국내 유통시장 정상화 시급
전문가들은 전 세계에서 애니메이션 산업이 정부 보조 없이 선순환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외에 국가들에선 어떤 식으로든 정부 보조가 들어간다는 것. 업계는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들의 가치관 형성과 문화 파급효과가 크고 국격과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방영권료 정상화 등 유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적지 않은 성장을 해왔다. 특히 순수 국내 제작물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는 추세다. <날아라 슈퍼보드>, <영심이>, <머털도사>, <아기공룡 둘리> 등 1990년대부터 조금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우리 애니메이션들은 만화 원작의 인기를 그대로 업고 성공 가능성을 다져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창작 애니메이션들이 3~4분짜리 짧은 클립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인기를 모으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빼꼼>, <라바>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애니메이션은 결국 콘텐츠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산업과 연계된 콘텐츠다. 캐릭터, 만화, 모바일, 온라인, 방송, 영화, 게임 등등 그 파급효과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제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경기도의 역할 찾기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2011년 <소중한 날의 꿈>(감독 안재훈), <돼지의 왕>(감독 연상호), 경기콘텐츠 진흥원의 지원작인 <마당을 나온 암탉>(감독 오성 윤), 세편의 영화가 연달아 개봉되며 한국애니메 이션은 뭔가 새로운 활기를 보여주었다. 세 작품 모두 각기 다른 장르의 특징을 보여주고 서로 다 른 관객층의 호응을 얻어내며 다양한 가능성들을 입증해 보였다. 애니메이션계 종사자이자 감독으 로서 반가웠던 것은 애니메이션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준 점이 무엇보다 소중한 성과였다고 본다.
그런데 그후 두 해가 지나가고 있는데 그 성과들 이 한국 애니메이션 발전의 연속선상에 있었음을 입증할 만한 결과물들은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올해 몇 개의 대작들이 개봉예정 돼 있지만,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들이 전개 되고 있어 조마조마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왜 이 리 불안할까?
먼저, 유아용 중심의 콘텐츠들은 내용에서나, 영화시장에서나 모을 수 있는 관객층의 임계점이 있음을 알 터인데, 혹시 안일하 게 분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흔히 얘기하는 잠재적 관 객층이라던가, 부모와 손잡고 같이 볼 가족영화라던가, 혹시 나 머지 부분은 외국에서 채운다던가하는 전략이 추상적이진 않았 는지 냉정하게 돌아 볼 일이다.
둘째, 대작들의 제작비 문제이다. 대부분의 대작들은 제작비 회 수와 수익구조의 많은 부분을 해외개봉수익으로 잡고 있는데, 혹 시 정확히 잡히지 않는 허수들이 있는 건 아닌지 철저하게 따져 볼 일이다. 대작들이 연달아 실패하면 한국 애니메이 션의 투자환경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문 화생산자그룹의 한사람으로서 책임 있는 기획과 제작 이 필요하다.
셋째, 큰돈의 흐름들이 지나치게 산업중심, 그리고 글로벌프로젝트 명목에 치중되고 있다. 과연 그런 영 화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가족들에게 사랑을 받 을 수 있는지, 그렇지도 못한 것이 해외에선 사랑 받 을 수 있다는 것인지, 그리하여 한국 애니메이션 의 장기적 발전에 진정 도움이 되는 지에 대해서 는 잠시 접어 두었다가, 올해 개봉예정인 두 편의 대작개봉 이후에 확실히 다시 얘기해보기로 하자.
넷째, 문화생산자, 창작자, 대중예술가의 입장 에서 애니메이션의 문화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를 되새김 해 봐야한다. 애니메이션은 사회 근간인 유아, 어린이, 가족문화를 이루는 매우 유력한 매체이다. 따라서 일정한 도덕적 프레임을 갖고 만들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의 철학과 세계관이 내포되고 작품으로 외연화 되어 고스란히 전달된 다. 그러므로 어른영화와는 다른 성찰이 필요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좀 복잡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들을 아우르며 빠르게 시행해볼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애니메이션문화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특히 인체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소형급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절박하고 절실하다. 먹이사슬에서 중형급 물고기들이 없 다면 그 먹이사슬은 깨지고 결국 공멸하게 될 것이다. 들판에 초 식동물이 없다면 육식동물은 사라지고 생태계는 파괴될 것이다.
다양한 소재와 장르, 다양한 제작규모, 다양한 타깃의 영화들이 만들어지도록 북돋아 주어야 한다. 생태계 적자생존의 장을 만들 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자생존을 위장한 끊임없는 선순환구 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쪽이 기울면 다른 한쪽을 북돋아 균형을 맞추어 지속적으로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면 우리도 알 수 없는 이상적인 어떤 좋 은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한 지점에 불과하고 한 지점에 놓여있다.
난 사후세계를 알 것 같다. 말 그대로 내가 죽은 이 후의 세계이다. 내 자식과 내 손에 잡히는 손자까지 만의 세계가 아니라 내가 죽은 이후에도 건강하게 영 속되어야 할 손자의 손자, 그 손자의 손자가 누려야 할 세계가 나의 사후세계라 여긴다. 문화산업은 더욱 더 그렇게 길게 보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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