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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세상을 바꾸는 여풍 2 | 4인4색 파워우먼을 만나다



첫 여성전문경호업체 ㈜퍼스트레이디 고은옥 대표이사

“남성 분야에서 블루오션 찾았죠”
                        
                    

 

“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써주는 곳이 없었으니까요.” 
올해로 경력 17년차인 경호원이자 국내 첫 여성전문경호업체 ㈜퍼스트레이디의 CEO인 고은옥(36) 대표이사. 그녀는 10년 전인 2003 년 11월, 26세의 어린 나이에 국내 최초 여성전문경호업체를 설립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원래 꿈은 군인이 되는 것이었어요. 하 지만 그 꿈이 좌절되면서 차선책으로 선 택한게 경호원이었죠.”
장교가 되고 싶었던 고 대표. 하지만 그녀가 꿈을 이룰 수 있는 확률은 너무 적었다. 당시만해도 3군사관학교에서는 여자를 받아주 지 않았다. 군인의 꿈이 좌절된 후 차선책으로 선택한 게 ‘경호원’이었다. 일을 하고 싶어서 무작정 경호 업체를 찾아갔지만 이번에도 받아 주는 회사가 없었다.
고 대표는 “당시 여성 경호원이 없다보니 업체에서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결국 교육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그의 첫 임무는 인기가수 경호. 공연장 출입 구에 몰려드는 청소년 팬들을 저지하느라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면서 임무를 완수했다. 이 일로 능력을 인정받아 이후에는 캄보디아 춘센 총리 경호실에 교관으로 파견되기도 했고 고르 바초프 구소련 대통령 방한 경호, 영화배우 톰 크루즈 경호, 스칼라피노 교수 경호, 히딩크 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경호 등 굵직한 임무에 투입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여성 경호원으로서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문제는 자신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회사가 없었다. 결국 고 대표는 자신이 직접 여성 경호원을 위한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고 대표는 “어린나이, 미혼, 여성이라는 이유로 창업자금을 지원받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결국 어머니와 언니가 보증을 서 1억원의 자본금을 마련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경호산업은 연간 4조원에 이르는 시장이다. 이 시장을 놓고 2,700여개의 업체가 난립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단가를 낮추는 제살깎아 먹기를 하면서 심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에게 새로운 틈새시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통령 등 고위직 인사나 부유층,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을 위한 경호서비스 제공이 그것. 이를 위해 업계 최초로 홈쇼핑에 경호를 상품으로 내걸었고 2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고 대표는 “스토킹 피해자, 가정폭력 경험자들이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집단 따돌림, 게임중독 학생에게도 언니, 오빠로서 학교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경호원이 갖춰야 할 역량도 많아졌다. 승마, 골프, 와인, 외국어 등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이제는 운동과 무술만 잘한다고 경호를 잘하는 게 아니에요. 의뢰인의 단순 신변 보호 역할 이외에 경호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지면서 경호원의 다재다능함을 요구하는 곳도 늘었죠.”
여성전문 경호업체 ‘퍼스트레이디’를 설립한지도 어언 10년, 고 대표는 현재 ‘퍼스트레이디’외에도 6개의 기업을 꾸린 ‘퍼스트 그룹’ 대표가 됐다.
고 대표는 “중국, 홍콩, 마카오 등 해외시장 확대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이와 함께 여성경호인들의 권익 증진을 위한 여성경 호인협회 발족도 준비 중 입니다”라고 밝혔다.




건설업계 ‘이단아’ 김추자 대림개발㈜ 대표이사
“접대·인맥보다 기술로 승부해야”

 


“여성기업을 지원하는 제도와 정책도 중요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기업을 가려낼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도 필요합니다.”
국내 최초 개발한 고강도PE삼중벽관을 비롯해 다양한 우량기술 보유기업으로 유명한 대림개발㈜ (www.dealim.co.kr). 1991년 창업 이후 20년이 넘게 이 기업을 이끌어 온 김추자(54) 대표이사는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린 만큼 여성 기업을 위한 정책과 제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대표는 “정부조달 계약 시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 등 여성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있어서 기대가 커요. 하지만 그만큼 대표 이름만 여성으로 걸고 실질적으로는 남성이 운영하는 편법도 선 행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게 현실이죠”라고 말했다.
수학교사에서 여성CEO로, 변신에 성공한 김 대표는 건설업계에서 ‘이단아’로 통한다. 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성이라는 점과 위기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난 생명력 때문이다.
“여성CEO라서 어려웠던 점이요? 하나를 꼽자면 남자들하고 함께 사우나를 가지 못한다는 것이죠.(웃음)”
농담식으로 웃으며 얘기했지만 김 대표의 말 속에는 뼈가 있었다.
그녀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은 남성중심의 조직사회예요. 그만큼 인과 네트워크가 중요하죠. 기술 하나만으로 살아남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접대 문화라는 게 있어서 담당자와 사우나도 가면서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고 그런 인맥이 사업 수주로 이어지고 그랬어요. 여성CEO는 그런 면에서 불리한 점이 많죠. ”
기술이나 비용적인 면에서 봤을 때 우리 제품이 더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다른 업체가 사업을 따낼 때, 김 대표는 여성CEO로서 기업을 운영하는 데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그녀는 더욱 ‘품질’에 집착하게 됐다. 인맥이나 접대 문화 등 마케팅적인 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품질로 채우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 접대 문화가 사라지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앞으로 20~30년 후 후배여성CEO들이 기업을 창업하고 운영할 때쯤이면 기술 하나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김 대표는 “돌아보면 위기 때마다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했어요. 중소기업이 아이템을 개발한다는 것은 엄청난 자금이 투자되는 만큼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그렇게 힘들게 개발한 아이템을 후발업체들이 너무 쉽게 모방 해 사용하는 것을 보면 기업CEO로서 힘이 빠질 때가 많아요.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이런 힘든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최근 건설경기 악화로 건설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 대표는 또 다른 아이템을 준비 중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사업 초기 아이템이었던 일회용 용기를 친환경 제품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것과 이를 접목한 식품사업이 그것.
“최근 맞벌이 부부와 워킹맘이 늘어나면서 도시락 등 식품시장이 확대되고 있어요. 건설시장에 친환경 바람을 불러 일으켰 던 것처럼 일회용 용기분야에서도 환경 친화적인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볼까 합니다.”




숙명여대 ROTC 52기 김보람 대대장
“대한민국 이끄는 1%에 과감히 도전”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3월의 어느날, 숙명여자대학교 캠퍼스를 찾았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짧은 단발머리와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절도 있는 걸음 걸이로 교정을 누비는 ROTC 후보생들은 단연 눈에 띄었다.
지난 2010년 국방부는 4년제 7개 여자대학교 가운데 심사를 거쳐 숙명여대를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학군사관 후보생 (ROTC) 시범대학으로 선정했다. 이곳에서 숙명여대 4학년이자 ROTC 52기 대대장인 김보람(23) 후보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선배들이 너무 잘해 온 만큼 대대장이 됐다는 기쁨보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더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숙명여대 ROTC는 지난해 동·하계 훈련 성적을 합산한 종합 성적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 여성 학군사관 후보생에 대한 주위의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켰다. 각개전투와 수류탄, 구급법, 개인화기, 장애물 등 5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며 전국 110개 학군단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지난 3월 8일 진행된 장교합동임관식에서 숙명여대 ROTC 51 기 박기은 대대장이 전체 ROTC 중 1위로 졸업,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숙명여대 ROTC는 또 다시 언론의 집중 조명 을 받았다. 그만큼 올 해 일년간 숙명여대 ROTC를 이끌어 갈 52기 대대장 으로 임명된 김 후보생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김 후보생은 “대대장으로 임명된 만큼 숙명여대 ROTC를 대 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훈련이나 생활에 임하고 있어요. 그동 안 선배들이 쌓아놓은 명성을 숙명여대의 전통으로 이어가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매일 매일의 고된 훈련도 군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다는 김 후보생. 하지만 그녀의 꿈이 처음부터 군인이 목표였던 것은 아니었다고.
김 후보생은 “어렸을 때 막연하게 군인과 경찰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점점 크면서 그 꿈을 잊고 살았죠. 그러다가 원하던 대학인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에 입학하게 됐는데 내가 상상하던 대학이 아니었어요. 수능에서 취업으로, 목표만 바뀐 고등학교의 연장선으로 느껴지면서 대학생활에 점점 흥미를 잃게 됐죠”라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ROTC 모집 홍보포스터. ‘대한민국 을 이끄는 1%에 도전하라’는 포스터 속 문구에 김 후보생은 여 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가족은 물론 친척 중에서도 군인은 없다고 말하는 김 후보생. 하지만 역사교사에서 군인으로, 180。바뀐 그녀의 인생 진로에 가족들, 특히 어머니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ROTC를 희망한다면 우선 평소 훈련을 통해 꾸준히 기초체력을 키우는 게 중요해요. 체력을 바탕으로 약 1~2개월 간 집중적으로 필기와 면접고사를 준비하고 평소 국가 안보 상황과 국제 정세의 추이 등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게 필요합니다.”
올해 목표로 임관종합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과 숙명여대 ROTC 선후배 간 끈끈한 문화 조성에 앞장 서는 것이라고 밝힌 김 후보생.
대한민국을 지키는 훌륭한 군인으로 성장할 그녀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7년 연속 판매왕 권길주 현대자동차 과장
“최고보다 최선으로 고객 신뢰 얻어”

 


“아직도 자동차를 살 때 무조건 남자직원을 찾는 분들이 계세요. 자동차에 대해서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알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죠.”
현대자동차 수원지점의 권길주(46) 과장은 올해로 경력 10년 차의 베테랑 카마스터이다. 그녀의 명함 속에는 ‘8년 연속 전국 Top-Class 판매왕 도전’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현 대차는 1년 간 120대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려 상위 4%에 속하는 직원에게 탑클래스 판매왕 칭호를 부여하고 있다. 권 과장은 지난 2005년부터 7년 연속 전국 판매왕에 선정됐다.
흔히 판매왕이라고 하면 화려한 말로 설득에 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를 생각하기 싶다.
하지만 권 과장은 자신이 가장 약한 부분 중 하나로 ‘남을 설득하는 능력’을 꼽았다.
그녀는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안동 권씨 집안의 딸로 태어나 24세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렇게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집안일을 하면서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을 살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점점 아이들이 장성해서 자기 앞가림을 하게 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는 고향 아지매(아줌마)로 부터 현대자동차에서 영업사원을 뽑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바깥 일이 해보고 싶어서 도전하게 됐죠. ”
하지만 권 과장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남편의 반대에 부딪혔다. “당신 성격으로는 차를 팔기는커녕 상처만 받고 금방 그만 두게 될 것”이라는 게 남편의 반대 이유였다.
권 과장은 “일은 너무 하고 싶은데 반대하는 남편조차 설득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저예요. 결국 이 일을 소개해 준 아지매가 남편을 대신 설득해줘서 도전할 수 있게 됐죠”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어렵게 입사시험을 본 후 현대자동차 수원지점에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입사 첫 달과 둘째 달에 그녀는 차 한 대도 못 판 유일한 영업사원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권 과장은 “안동이 고향인데 수원에서 시작하니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어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일주일에 3~4번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마다 명함을 아파트 문 앞에 끼워 넣고 다녔어요”라고 말했다.
주말에는 조기 축구회를 돌며 명함을 돌리고, 차를 한 대라도 산 분들이 수리를 위해 찾아오면 직접 예약을 해주고, 공장에서 기다렸다. 그녀는 강요가 아닌 한결같은 자세로 고객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와 함께 차와 관련해 꾸준히 공부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는 만사 제쳐놓고 무조건 참여했다.
“저의 최고의 스승은 고객들이에요.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세제 혜택이라든가 우대조건들은 영업사원보다 고객들이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고객들에게 배운 지식을 활용해 다른 고객에게 하나라도 더 혜택을 주기 위해 노력하죠.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노력들이 고객들에게 신뢰로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권 과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객이 거부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최선을 다해 고객에게 신뢰를 보여주면 여성 카마스터 권길주가 아닌 판매왕 카마스터 권길주를 찾는 날이 분명히 올 거 예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l 기고 l

한국 여성, 유리천장 사라졌나?
OECD 평균 여성경제활동참가율보다 10%p 낮아, 남성중심 조직문화 변해야

 




‘여성대통령’ 시대 = ‘여성’의 시대? 바야흐로 ‘여성대통령’의 시대이다.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는 역대 최다 여성후보가 출마했다. 물론 정당법이 개정(2002년, 2004년)되 어 국회 및 시·도의회 선거에서 비례대표의 50%를 여성에게 할 당하는 ‘공천할당제’가 도입된 후 정치영역에 많은 변화가 있었 던 것은 사실이다. 이로 인해 16대 국회에서 전체의 5.9%에 불 과하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점차 증가해 19대 국회에서는 15.7%를 차지했다. 전체 의원 300명 중에서 47명의 여성의원 이 당선된 것이다.

3대 고시 여성비율 절반
이러한 정치의 영역보다 여성의 진출이 더욱 활발한 영역은 ‘시험’을 통해 자격이 결정되는 분야이다. 2012년에도 사법고 시는 41.7%, 행정고시는 43.8%, 외무고시는 53.1%가 여성이 합격했다. 과거에 비해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 활발하게 진출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시험’을 통해 진입하는 영역에서의 여성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필기시험이라는 방법은 ‘성별’에 의 한 차별이 개입하기 어려운 가장 공정한 방법이다. 이런 탓에 각종 시험에 여성들이 몰리게 되고, 특히 몇몇 여성들은 신문 지면을 장식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2013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여성들이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굉장히 ‘많이’, 상당히 ‘높이’ 올라갔다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한다. 마치 오랫동안 여성 들을 가로막고 있던 ‘유리천장(glass ceiling)’과 ‘유리벽(glass wall)’이 사라진 듯하다. 유리천장은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 막는 회사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유리벽은 여성들이 핵심적인 직무에 접근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 한다. 과연 유리천장과 유리벽은 사라졌는가? 여성들 내부의 양극화의 문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아직도 갈 길이 멀 다는 생각이다.

고위직 여성 비율 여전히 낮아
다시 한 번 정치영역을 살펴보자. 국제의원연맹(IPU)에서 각 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 및 순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87위 에 불과하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약 40%가 넘는 스웨덴 (44.7%) 및 노르웨이(39.6%), 네덜란드(38.7%) 등과 비교가 되 지 않는다. 다음으로 행정영역을 살펴보자. 법률, 대통령령에 설치 근거를 둔 정부위원회의 여성비율은 2012년 현재 25.7% 에 불과하다. 고위공무원의 여성비율도 매우 낮다. 2011년 현 재 행정부의 전체 5급 이상 국가공무원(일반직 기준)은 1만 9,967명이다. 이 중 여성은 2,416명으로 전체의 12.1%에 불과 하다. 지방자치단체의 5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비율은 7.4%로 더욱 낮다. 국가정책 결정과정에서 여성의 관점과 요구를 반영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비율이라고 생각된다.
민간영역에서 여성의 지위는 더욱 열악하다. 대기업에서 여성이 임원까지 오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작년 삼성그룹의 임원 승진자 485명 중에서 여성은 12명으로 전체의 2.5%에 불과했으 나 이는 전년도의 9명보다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라고 보 도되었다. 임원은 차치하고 여성관리자 비율도 현저하게 낮다. 적 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의 대상이 되는 민간기업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여성관리자 비율은 1,000 인 이상 사업장은 17.6%, 500인 이상 1,000인 미만 사업장은 16.8%에 불과하다.
이들 사업장의 여성근로자 비율이 각각 37.1%, 34.2%에 이 르는 것에 견주어보면 관리직의 여성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2006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는 동종 산업 유사규모 기업들을 비교 평가해서 여성을 현저히 적게 고용하거나 여성관리직 비율이 낮은 기업에 대해 여성고용촉진을 위한 개선방안을 찾고, 이를 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동 제도는 정부투자기관, 정부산하기관,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2011년 현재 공공기관 245개소, 민간기업 1,302개 소에 적용되고 있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답보상태
한국 여성의 사회참여가 과거에 비해 활발한 듯 보이지만 우 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1985년 41.9%에서 1990년 47.0%로 80년대 후반에 급격하게 상승했으나, 1990년 이후 에는 40% 후반에서 답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경제활 동참가율의 성별 격차도 개선되지 않고 있고, OECD 평균 여 성경제활동참가율에 비해서도 10%p 이상 낮게 나타난다. 임 신·출산 전후의 경력단절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또한 2012 년 8월 현재 우리나라 여성근로자 중 비정규직은 315만 4,000명으로 전체의 41.5%를 차지한다. 여성근로자 10명 중 4명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다. 이는 남성근로자의 비정규직 비율(27.2%)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높은 것이다. 이 러한 한국 여성들의 노동시장에서의 열악한 지위는 남녀 임 금격차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크다는 발표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한국 여성들의 정치적, 경제적 대표성이 크게 향 상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임계치라고 할 수 있는 30%이상을 차지하는 경우 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 대통령’이 통치하는 국가이지만 초대 장관(후보자) 18명 중 여성은 2명에 불과하다. 또한 3개 고시 등 필기시험이 중심이 되는 공공분야에서 여성이 차 지하는 비율은 급속하게 증가했으나, 면접 등 시험 외적인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민간분야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은 요원하다.



여성대표성,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야
이런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대표성과 관련한 ‘착 시현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10년 전의 ‘과거’가 아니다. 소수의 ‘잘 나가는’ 여성들이 여성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의 대표성은 사회 각 분야에 고루 여성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달성된다.
여성가족부에서 최근 발표한 ‘2012년 한국의 성평등 보고서’ 에 따르면 2011년 성평등 수준이 가장 높은 부분은 보건부문이 었고, 다음은 교육·직업훈련부문, 문화·정보부문, 경제활동부 문, 복지부문, 가족부문, 안전부문, 의사결정부문 순으로 나타 난다. 국가성평등지수의 값을 살펴보면 2005년에 비해서는 약 간 상승하였으나, 부문별 성평등지수의 편차가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의 대표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제활 동부문과 의사결정부문의 평등수준은 여전히 낮다.
한국 사회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인구구조의 변화, 교육을 통 한 계층이동을 기대하는 한국적 교육열 등으로 여성에 대한 교육투자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또한 성평등한 사회를 만 들기 위한 다양한 법제도적 개선도 이뤄졌다. 그 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남성 중심적인 조직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고용 개선조치의 강화, 여성 임원 할당제 등 제도적 개 선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있 는 남성 중심적인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이 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상의 변화, 인식의 변화 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