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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세상을 바꾸는 女風 1 | 대한민국 ‘우먼파워’

세상을 바꾸는 女風 1 | 대한민국 ‘우먼파워’

 


           

“여성이 당당하게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겠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간이든 공기업이든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장려하겠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이런 흐름에 맞춰 최근 대한민국 각계각층에서 ‘여풍(女風)’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대학 진학률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을 추월한 지는 오래고 각종 국가고시 합격생 중 여성이 절반을 넘는다. 또 의사, 약사 같은 전문직 분야 뿐 아니라 금녀의 영역 소리를 듣던 경찰, 검찰, 군대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2013년 첫 여성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 있는 거센 여풍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 글 l 이미영 기자


대한민국 ‘우먼파워’
軍·官·재계·전문직·공공기관 女風 주도
올해 처음 대기업 여성임원 100명 넘어… ‘세상의 절반’ 제몫 찾아가는 중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안다고 하잖아요. 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만큼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지금보다 나은 환경이 마련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올해로 직장생활 10년차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워킹맘 김지연 (36) 씨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지난 2월 25일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에 앞서 여성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목표로 ‘미래 여성인재 10만명 양성’, ‘여성행복 7대 정책’ 등 대한민국 여성의 여권 신장 및 권리 증진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은 여성 패러다임의 새로운 변화와 그동안 남성 중심으로 이뤄졌던 우리 사회에 ‘여풍’이 보다 거세게 몰아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금녀의 벽 대부분 허물어져
거센 여풍의 진원지는 각종 고시 분야이다. 올해 사법시험에서 여성 합격자 비율은 41.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종 합격자 506명 가운데 211명이 여성이다. 이는 작년의 37.3%보다 4.4%p 증가한 수치로 2010년의 41.5%보다도 높다. 전문 직종에서 여성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약사의 경우 여성이 64.1%로 남성을 압도하고 있고 의사와 치과 의사, 한의사도 여성의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국방 분야에서도 여성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지난 3월 8일 열린 ‘2013년 장교 합동임관식’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8명의 신임 장교 중 3명이 여군이었다. 이날 대통령상을 수상한 여성 신임 장교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여성 수석을 배출한 육군사관학교의 양주희 소위, 국군간호사관학교 백서영 소위, ROTC 박기은 소위 등이다. 특히 박 소위는 여성 최초 ROTC 인 숙명여자대학교 출신으로 2011년 육군학생군사학교 기초군사훈련에서 개인 최고 성적을 거둬 교육사령관상을 받고, 2012년 동계입영훈련에서도 개인성적 2위를 차지하는 등 남성 동기들을 넘어서는 뛰어난 성적으로 줄곧 주목을 받아왔다. 이날은 여성 학군사관후보생(ROTC)의 첫 임관식도 함께 진행됐다.
공군 부사관을 길러내는 항공과학고등학교에서도 학교가 문을 연 지 42년 만에 처음으로 여군 수석 졸업자가 탄생했다. 공군교육사령부는 사령부 내에 있는 항공과학고등학교 유혜지 (18) 양이 올해 졸업생 가운데 종합성적 최우수상 수상자로 뽑 혔다고 밝혔다.

재계 여성 임원 대거 발탁
고시 분야를 넘어 재계 및 관가에서도 여성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재계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임원 숫자가 올해 처음으로 100명을 넘어 섰다. 지난 2004년 13명에 불과했던 여성임원은 2010년 51명, 2011년 76명에 이어 올해 114 명까지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100대 기업 중 여성 임원을 최다 배출한 기업으로 뽑힌 KT는 작년, 재작년 상무 승진자 중 여성은 각각 1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승진 인사에서는 여성 5명을 포함하는 등 여성 승진자의 비율이 30%로 과거에 비해 대폭 늘어났다. 삼성그룹은 최근 임원인사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여성 임원 승진을 단행했다. 승진 대상자 총 485명 가운데 여성이 12명을 차지했고 이 중 10명이 신임 승진자다. 삼성 여성 임원 승진자는 지난 2011 년 7명, 2012년 9명이었다. ‘금녀의 벽’이라 불리던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여성 임원을 기용했다. 현대차그룹은 지 난 2009년 첫 여성 임원 2명을 배출한 이후 2011년 5명, 올해 6명으로 숫자를 늘려가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창사 이래 첫 여성 CEO를 임명했다. 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대표이사가 그 주인공. 첫 여성 CEO인 이 대표는 2003년 차장직으로 코오롱에 입사한 이래 10년 만에 CEO로 임명되면서 초고속 승진의 주역이 됐다.
재계에 불고 있는 여풍 현상에 대해 경제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이다. 성효용 한국여성경제학회장은 “재계 여성연구기관 카탈리스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여성 임원이 많은 기업일수록 더 좋은 실적을 거두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여성 임원 비중이 높은 상위 25% 기업의 경우 임원 비율 하위 25% 기업에 비해 자기자본순이익률, 총주주수익률이 통계적으로 높았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는 국가직의 경우 1989년, 지방정부는 1991년까지 여성 고위 공무원은 전체의 10%밖에 뽑지 않는 할당제가 있었다. 여성을 많이 뽑지 못하도록 강제한 할당제는 고위공무원 자리에 여성 진출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유리천장이었다. 2011년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비중이 과장급 미만은 40%가 넘는데, 과장은 20%, 임원은 5~7%로 급감한다. 여성들의 경력이 단절됐거나, 유리 천장이 있어서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여성 고위직 등용에 있어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던 공무원, 공공기관에도 최근 여풍이 거세다.
한국농어촌공사는 104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1급 부서장을 선발했다. 주인공은 박우임 전 인재개발원 교육기획팀장. 공사에 따르면 부서장 130명 중에서 여성은 박씨가 유일하며, 향후 농어촌공사 최초의 여성 임원 발탁도 유력한 상황이다.
최근 재계가 역대 최대, 사상 최초 타이틀을 내세우며 여성 임원들을 대거 등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공약 중 하나인 ‘여성 인재 10만 양성 프로젝트’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박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여성 관리자 비율이 높은 기업에 정부 조달계약 시 혜택을 주고, 공공기관에 여성 관리자 목표제를 도입해 평가지표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풍부한 감성·섬세함이 무기
재계의 여풍 현상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가 300여개 대·중견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여성 인재 활용에 관한 기업인식’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3.8%가 여성 임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대답했다.
기업규모별로는 대기업(58.1%)이 중견기업(39.1%)보다 늘어날 것이란 대답이 많았다. 이는 최근 대기업이 여성근로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이들의 능력을 높여 장점을 활용하는 사회 흐름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건강, 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 산업이 점차 중요성을 더해가고, 젊은 여성층이 주요 소비 집단으로 부각되면서 여성의 풍부한 감성과 섬세함이 임원 진출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여성의 업무능력이 남성과 비슷하거나 우수하다고 대답한 기업은 무려 92.5%에 달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수한 역량(복수응답)으로는 친화력(37.5%), 성실성·책임감(35.9%), 창의성(26%) 등을 꼽았다.
하지만 여성인재 확보에 대한 기업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업 내 여성임원의 수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상황이다. 실제 조사기업 가운데 여성대표와 임원의 평균인원은 2.2명(대기업 1.8명, 중견기업 2.3명)으로 매우 낮았다. 이들의 사회 진출은 늘고 있으나 남성보다 핵심 업무를 경험할 기회가 부족하고, 출산·양육 부담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임원 진출의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 여성임원이 될 만한 중간 관리자 인력풀도 부족해 기업의 체계적인 양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출산·육아 부담 여전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2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2.9%로 20대 남성(62.6%)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그동안 2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남성에 못 미쳤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시기인 20대에 여성의 경제활동이 남성보다 더 활발한 것은 전반적으로 여성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출산·육아 부담이 커지는 30대에서는 여성 경제활동이 30대 남성의 60% 수준으로 추락했다.
실제로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는 출산·육아 문제다.
작년에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6.0%로 30대 남성(93.3%)보다 37.3%p 낮았다. 30대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2002년 95.1%에서 작년 93.3%로 소폭 하락한 동안 여성은 54.6%에서 56.0%로 상승했는데도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경력단절이 40대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전체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 2011년 기준으로 여성의 월급여액은 154만8,000원으로 남성(244만4,000원)의 63.3%에 그쳤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대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고 경제활동 참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이 유연한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나오고 있다.
최소한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90일의 출산휴가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고 남성 육아휴직도 활용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영세기업은 출산휴가를 쓰기도 쉽지 않고 남성 육아휴직은 2%대에 묶인 상태”라며 “근로시간 유연근무제도 필요하지만 공공부문, 기업에서 기존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