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通

니하오! 차이나 | 외국기업 때리기

외국기업 때리기
‘자국기업 보호’ 경제적 민족주의 기승

 

 


▲스마트폰의 대표주자인 미국의 애플이 지난 3월 중국의 언론매체로부터 호된 비난 보도에 시달리며 최고경영자인 팀 쿡이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사진은 베이징에 있는 애플 매장.

중국 관영 CCTV는 지난 3월 15일 ‘국제 소비자 권익의 날’ 특집 방송에서 ‘올해의 나쁜 기업’을 선정해 공개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기업이 들어갔다. 다름 아닌 미국의 애플. CCTV는 애플이 애프터서비스에서 다른 외국에 비해 중국 소비자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이유를 댔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도 3월 25일자 전면 특집을 통해 애플의 애프터서비스 수준은 중국의 법규에 미치지 못하므로 위법 행위라고 성토했다.
전국의 관영·상업 매체와 인터넷 매체들 역시 CCTV·인민일보의 애플 비난 기사들을 빠르게 퍼 나르고 전재했다. 중국 매체들은 애플 제품의 중국내 조립 협력업체 공장근로자의 작업환경 등까지 거론하며 비난에 열을 올렸다. 이로써 애플 사태는 단숨에 중국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각 매체들 작심(?)하고 애플에 공세
애플 때리기의 바통은 국영언론에서 정부로 이어졌다. 역할 분담인 셈이다. 이는 중국이 국가차원에서 애플 공격에 착수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중국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공상총국)은 3월말 전국 분국에 내려보낸 통지에서 애플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판매계약을 통해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엄중히 단속하라는 내용이었다. 중국소비자협회도 3월 31일 애플에게 사과와 함께 중국내 제품 보증기간을 다른 나라와 동일하게 적용하라고 요구했다.
이 정도면 중국의 ‘애플 때리기’라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 “문화대혁명 때 인민재판을 연상시킨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중국 쪽의 집중포화에도 2주 동안 꿈쩍 않던 애플은 결국 보름 만에 손을 들었다. 애플은 4월 1일 자사 중국 홈페이지에 팀 쿡 최고경영자 명의로 사과문을 게재했다. 애플은 “소통 부족으로 중국 소비자의 불만을 가볍게 여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상총국 시장규범관리사는 4월 7일 애플 판매계약서 개선회의에서 애플의 제품 서비스 차별 문제에 대해 감독과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애플이 중국 법률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하는 책임을 끝까지 추궁하겠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와 언론의 합작품
이번 애플 때리기는 중국 공산당 정부와 언론의 합작품이다. 중국 언론매체는 공산당과 정부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이다. 관영이든 상업 매체든 다르지 않다. 지휘는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맡는다. 중앙선전부가 언론매체에 어떤 기사를 넣고 빼야 하는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지시한다. 이른바 ‘보도지침’인 셈이다.
특히 무엇보다 중국의 애플 때리기는 3월 중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공식 선출되는 시기와 맞춰 이뤄졌다. 다시 말해 여기에는 제5세대 새 중국 지도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갑자기 애플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이유나 동기는 뭘까. 중국의 네티즌들조차 관영언론의 애플 비난보도의 숨은 동기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미국의 중국 IT업체 규제에 맞선 보복의 성격이 짙다. 미국 의회는 최근 통과시킨 올해 예산법안에 연방정부 기관에서 중국 정부가 소유·운영·지원하는 기업이 생산·제조·조립한 IT제품의 구매를 제한하는 조항을 넣었다. 중국의 사이버공격을 우려해서다.
미국 하원의 일부 의원들은 3월 28일 미국무역대표부 대표대행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을 일급 지적재산권 위반 국가로 지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에서 중국 상품에 대한 수입이 제한되거나 관세가 추가 부과되는 등의 불이익이 주어진다. 미국 하원은 앞서 지난해 10월 중국의 양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와 중싱(ZTE)가 자사 통신장비를 이용해 미국의 정보를 빼낼 수 있다며 이들과 거래를 중단하라고 미국기업들에 촉구하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미국의 ‘중국 공격’에 대한 반격
이런 정황을 놓고 볼 때, 중국은 애플 때리기를 통해 미국이 중국기업들에 한만큼 미국 기업에 되갚아 줄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다.
아울러 애플 제품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높은 판매실적을 보이고 있는 점도 중국 당국이 애플을 표적으로 삼은 이유로 들 수 있다. 대학생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애플 제품이 유행이자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중국은 애플에게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중국 당국은 바로 이 점을 노렸다. 애플은 중국에서 잃을 것도 많기 때문에 공격효과가 가장 크면서도 상징적인 표적이란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가 자국 스마트폰 업체와 국영 이동통신서비스 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애플을 압박하려는 속셈도 엿보인다. 국영 이동통신운영회사들은 애플의 아이폰을 판매하는 주요 채널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IT 분야에서는 ‘만리장성’을 쌓아 외국업체들의 진입을 제약하는 동시에 자국업체 키우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애플을 제외하고는 화웨이·중싱·레노보를 비롯한 중국 토종 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통신장비 분야에서도 화웨이·중싱의 시장지배력이 높다. 인터넷 검색 분야의 경우, 3년 전 당시 중국시장 1위였던 구글은 해킹과 검열 문제로 중국 정부에 맞서다 철퇴를 맞은 뒤 시장점유율이 급락했다. 그 사이 당시 2위였던 중국 업체 바이두는 구글을 따라잡은 데 이어 현재 시장점유율 70%를 넘어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자국기업 잘못엔 소극적 대응 비난도
중국 당국의 애플을 대표로 한 외국기업 때리기를 놓고 등장한 사자성어가 있다. 바로 ‘적반하장’. 자기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모습이다.
예컨대 중국 공산당 정부는 자국기업의 지적재산권을 침해를 지적한 외국기업들의 조사·처벌·배상 요구에 대해선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다. 그야말로 ‘소 귀에 경읽기’ 식이었다. 심지어 중국을 깎아 내리려는 공세라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기업을 ‘중국시장에서 쫓겨 나고 싶으냐’는 무언의 압력으로 눌러왔다.
중국에 나온 한국 기업가들은 “중국은 ‘샨쟈이’(불법 모조 제품·행위)’가 자국 특유의 현상이니 그냥 넘어가 달라고 요구한다”며 “거대한 시장을 무기로 한 중국 당국의 윽박지르기와 달래기에 감히 맞서는 외국기업은 거의 없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실제 그간 중국 당국은 자국 대기업의 외국 지재권 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소규모 제조상이나 소기업 중에 골라 처벌하는 시늉을 냈다. 요즘도 중국 전역에서 ‘짝퉁 아이폰’을 비롯해 외국 유명 제품·기술·상표를 불법 복제하거나 모방한 제품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 현실이 이를 대변한다. 이 때문에 큰 매출 손실을 입은 한국과 외국기업들이 수두룩하다

경제 민족주의 더욱 거세질듯
과거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중국도 외국기업에 적용하는 엄격한 잣대를 자국기업에게도 똑같이 들이대야 한다. 외국기업보다는 자국기업을 감싸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일한 잘못과 상황을 놓고서 외국기업에 더욱 강도 높은 처벌을 내리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 더군다나 특정 의도를 갖고서 외국기업에게 ‘맛 좀 봐라’는 식으로 온갖 수단을 동원해 공격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이는 중국 웨이보어에서 정부 조치를 비판하고 애플에 대한 지지의 목소리가 여전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네티즌들은 애플에 대한 지지에는 겸손치 못한 대응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관영언론의 후안무치에 대한 냉소가 깔려 있다고 말한다. 네티즌들은 “관영언론들이 국영기업들의 횡포와 비리, 법규 위반에 대해서도 애플 비난보도만큼이라도 보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중국정부가 애플을 굴복시켰지만 선전·여론전에서도 이긴 게 아닌 것이다.
‘중국의 꿈’을 정치적 구호로 내건 시진핑 신임 국가주석의 등장과 동시에 벌어진 이번 외국기업 때리기는 중국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나라의 기업에 대해서는 몇 배 더 보복하겠다는 경고성 메시지도 담고 있다. 나아가 시진핑 체제에서 중국의 경제적 민족주의가 한층 더 거세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