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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Issue & Trend | 엔저에 신음하는 한국경제

엔저에 신음하는 한국경제
수출업체 직격탄… 농식품·관광업도 타격
가격 경쟁력·수익성에 악재… 엔·달러 100엔시 수출 2~3% 하락


 

 


 

 

▲엔저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국내 백화점들이 일본 수입상품의 가격을 내리고 적극적인 소비자 공략에 나서고 있다.

‘엔의 전쟁’이 시작됐다.
엔화가 2009년 4월 이후 4년여 만에 지난 5월 8일 달러 당 100엔을 돌파했다. 5월 13일엔 장중 한 때 102.15 엔까지 치솟았다. 달러대비 엔화 가치가 102엔 선을 돌파한 것은 지난 2008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원·엔 환율은 5월 24일 현재 100엔당 1,127.4원을 기록, 지난 7개월 전 1,400 원대에서 20%이상 가량 급락한 상태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자민당 총재에 선출된 작년 9월 당시 엔·달러 환율이 77엔 선이었던 점을 감안 하면, 불과 반년여 만에 30% 넘게 가치가 절하된 것이다.
엔저의 추세는 한국경제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가뜩이나 내수경기가 위축되고 있는 마당에, 그나마 굳건하게 유지돼 왔던 수출마저 엔저 타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엔저는 글로벌 수출현장에서 일본 기업들과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는 한국기업들에게는 커다란 악재다. 똑같은 원가가 들어간 한국산 제품이 6개월 전에 비해 일본산 보다 20%이상 비싸진 셈이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제품을 팔더라도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에 얼마나 영향 주나
민간경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이 100엔에 이르면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이 2~3%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엔화 환율이 달러 당 100엔, 원화는 달러 당 1,000원이 됐을 때 총 수출이 2.0%p 줄어들며 경상수지가 125억달러 급감한다고 봤다. 이는 지난해 경상흑자 431억달러의 4분의 1을 넘는 규모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 역시 1.8%p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정부가 지난 3월 내놓은 올해 성장률 2.3% 목표는 물론, 그나마 유지해왔던 2%대 성장도 장담하기 힘들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2.0% 증가분을 분석하면 내수 기여도는 0.8%에 불과했고 수출은 1.3%였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재정건전성 악화에도 불구하고 17조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해 내수경기 살리기에 나섰다. 부동산 활성화 대책도 내놓고, 기업들의 투자 확대 정책도 발표했다. 또 5월 9일에는 한국 은행 기준금리도 인하했다.
그러나 이같은 전망은 이른바 ‘아베노 믹스’의 엔저정책이 어느 정도 완화되는 상황을 전제한 것이다. 100엔대를 넘어선 엔저국면이 앞으로 더 강화된다면 한국경제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수출은 감소하고, 성장률은 떨어져 내수와 수출이 모두 침체되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자동차·철강·기계 타격 심각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4월 수출입 동향을 살펴보면 엔저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4월 대일본 수출은 -11.1%로 2월 -17.1%, 3월 -18.2%에 이어 3개월 연속 두자릿수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일본과 치열하게 경합하는 3대 품목인 자동차, 철강, 일반기계의 수출 성적표가 좋지 않다. 자동차와 철강의 전체 수출은 각각 2.4%, 13.6% 감소했고, 일반기계는 2.4% 증가로 현상유지 수준이었다. 철강의 경우 전 세계 시황 악화의 여파도 있지만 대일 수출은 무려 -18.2%로 낙폭이 컸다.
주요 대기업들의 1분기 실적도 좋지 않게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회복 조짐으로 어느 정도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계속 되는 내수부진과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현대차는 1분기 매출이 작년 동기보다 6.0% 늘어난 21조3,671억원이지만 영업이익은 10.7%나 줄어 1조8,685억원에 그쳤다. 판매량이 117만1,804대로 9.2% 늘었는데도 이익은 오히려 감소한 것.
포스코의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보다 4.7% 감소한 7,170억원. 매출액은 14조5,820억원으로 -10.6%, 순이익은 2,920억원으로 전년 동기비 무려 절반 이상(-54.1%) 줄었다.

부품 中企들도 “수주 감소 우려”
중소기업의 피해도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일본에 비해 기술경쟁력이 떨어지는 대다수 부품·소재 산업의 경우 엔화 약세로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부품소재 산업이 아직은 엔화 약세에 따른 영향이 크게 반영되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국내 부품·소재 수출은 636억달러를 기록해 전년대비 5.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계와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엔화 약세에 따른 수주 부진과 채산성 하락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는 2분기 이후는 부품·소재 분야의 수출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중소기업중앙회 경기본부 관계자는 “엔화 약세가 몇 달째 지속함에 따라 자동차 부품과 일반기계 부품, 금형, 공구 등의 업종에서 일본 경쟁업체와의 수주경쟁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 업체와의 가격 격차가 빠르게 줄어드는 데다 채산성도 떨어지고 있어 수출을 통한 이익이 크게 줄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광·숙박·쇼핑업계도 피해
원고엔저(엔화 하락)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국내 여타 산업도 막대한 영향을 입고 있다.
특히 일본인이 주고객이던 백화점, 특급호텔 등에서는 당장 매출에 타격을 받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작년 9월을 기점으로 월 30만명 수준이던 일본인 관광객은 올 2월 들어 20만명대로 줄었으며 3월에는 이보다 20% 더 감소했다. 올들어 부산항을 이용한 일본인 관광객도 월평균 3만명에서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특급호텔의 일본인 투숙객도 줄긴 마찬가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관계자는 “올들어 일본 투숙객이 30% 가량 줄어 매출 감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로얄호텔도 지난해 9월부터 일본인 투숙객이 5%씩 줄어 3월까지 약 26% 가량 감소했다는 것.
롯데백화점 등에 따르면 일본 관광객의 매출도 전년도에 비해 10%안팎 떨어졌으며,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쓰는 JCB카드는 전년 대비 20~30% 줄어들었다.
그동안 한류 효과를 한껏 누려온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영향을 받고 있다. 4월 초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그룹 JYJ 공연은 전석이 매진되며 성황리에 끝났다. 그러나 한국 기획사의 입장료 수입은 엔화 하락으로 작년에 비해 30% 가까이 줄었다.
일본에 농수축산물을 수출하는 국내 농가와 업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농·수·축산 업자들도 시름 깊어
일본은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액 중 일본은 26.1%를 차지해 중국(15.1%)과 미국(8.8%)을 합친 비중보다도 크다. 농촌경제연구소는 “원·엔 환율이 100엔당 1,365원이던 지난해 11월부터 1,100원대로 떨어진 지난 3월까지 주요 농·축산물의 일본 수출량을 분석한 결과 수출량이 8~50%가량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일본으로 수출한 삼계탕 물량은 전년(1,361t)대비 48.7% 감소한 698t으로 집계됐다. 인삼류는 326t에서 261t으로 19.9%, 화훼류는 2,907t에서 2,456t으로 15.5%, 김치류는 9,655t에서 8,794t으로 8.9% 줄었다.
남해안과 제주의 키조개·김·전복·광어 등 수산 양식장들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일본 수출길이 막히면서 공급처를 찾지 못해 신음하고 있다.
엔저 태풍이 해외 수출전선에 먹구름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제주부터 서울까지 국내에서도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오석원 기자 l won@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