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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通

경기도 협동조합을 찾아서 | ③부천야구협동조합

부천야구협동조합
돈 적게 쓰며 행복한 야구하는 게 ‘꿈’
3월 조합으로 출범… 야구장 건립·위탁사업 등 포부 커

 

 



우리 팀 감독을 내가 뽑을 수는 없을까, 다음 경기 투수는 팬이 결정하면 어떨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을 스폰서에서 아예 빼면 안 될까. 일반 야구단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협동조합이라면 가능하다. 조합원이면 누구나 주인이 되고 출자금 규모에 상관없이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 야구 매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일이 실제 벌어질지 모른다. 그것도 경기도에서. 경기도에 전국 최초로 야구협동조합이 출범했다.


“오늘 선수들이 펄펄 날랐습니다. 상대팀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지요. 점수 차가 무려 5점이나 났습니다.” 지난 4월 4일 관우팀과 아침 일전을 마친 조조팀 투수이자 7번 타자로 뛴 이득규 부천야구협동 이사는 다소 흥분된 어조로 승전보를 전했다.
“선발투수로 3이닝을 뛰어 승패는 없지만 그래도 팀이 이겼으니 오늘 일진은 최고”라고 말한 그는 “바로 이 맛에 야구를 한다”며 즐거워했다.
지난 2006년 한국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4강을 차지하자 흥분을 못 이겨 시민야구를 시작한 이 이사는 사회인 야구 구력 8년 차의 베테랑이다. 그 동안 뛴 경기 수만 얼추 1,000경기에 이른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야구협동조합의 길이다. 지난 3월 15일 야구 분야에서는 국내 첫 협동조합으로 등재됐고 현재 123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탄탄한 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다. 국내 야구 뿐 아니라 스포츠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이유다.
“협동조합을 만들어 뭔가 거창한 일을 하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적은 경비로 편안하고 재미난 야구를 즐기자는 취지였지요. 하지만 기왕에 만든 것이니만큼 적극적인 마음으로 조합을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생소하고 어설프지만 마음은 설레는 것이 맨 처음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섰을 때의 느낌과 비슷합니다.”

‘야구사랑’ 조합원 123명이 밑거름
그가 야구 관련 조직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야구에 뛰어든 것은 2006년도 일이다. 그는 날짜까지 기억한다. 5월 18일이라고 했다. 이날은 부천에 아침야구모임이 처음으로 결성된 날이다.
“당시만 해도 평일 아침 출근 전에 야구경기를 갖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도 주말에만 경기를 가졌었지요. 그런데 몇 주 간 계속 주말에만 비가 왔던 것입니다. 한 달 넘게 경기를 못했더니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도 야구를 할 사람을 찾았지요.”
평일 출근 전이라면 애인이 만나자고 해도 귀찮아 할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그래서 이 이사는 “야구를 애인보다 사랑하지 않으면 만들기 어려운 모임”이라며 “과연 그런 사람이 몇이나 모일까 반신반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애인보다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8명으로 시작된 이 모임은 2~3년 지나며 자리를 잡았고 현재는 150명의 회원을 자랑한다. 이 이사는 인터뷰 중 수 차례 야구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로 “자유롭고 저렴한 야구를 즐기기 위해”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을 만들지 않는다면 이 야구인들은 ‘비싸고 불편하게’ 야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이 이사는 “그렇다”고 단언한다. 이들에게 협동조합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왜일까?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리그로 치러지는 야구 경기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프로야구가 있고, 대학 또는 고교 등 학교 야구, 그리고 사회인야구다. 프로 리그는 또 셋으로 나뉜다. 스타들이 총 출전하는 메이저(1부) 리그와 메이저 리그를 준비하는 선수들을 위한 마이너(2부) 리그, 그리고 프로구단에 입단하지 못한 선수들이 뛰는 독립구단이 그것이다.
학교 리그는 잘 알려져 있듯 전국 또는 지역별로 해당 학년에 한해 치러지는 경기를 말한다. 사회인야구경기는 이들과 다르다. 선수 출신은 참여가 어렵고 아무래도 직장을 갖고 있다 보니 토요일이나 일요일 등 주말에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를테면 ‘토요리그’와 ‘일요리그’로 구분되는 것이다.

“야구장 설립하고파”
각 리그에 참여하는 팀은 당연히 참가비를 내야 한다. 팀당 연간 참가비는 평균 250만~350여만원에 이른다. 연간 평균 치러지는 팀당 경기 수는 13~15경기에 그치고 있고 이를 위한 사회인야구의 1년 회비는 최소 30만원이 된다. 이 이사는 “야구 애호가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경비”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은 엄청나다. 전국적으로 1만개 팀에 선수만 10만명을 넘는다. 경기도에만 수천 개 팀, 수만 사회인 야구선수들이 있다. 부천 소재 사회인 야구팀은 70~80개 정도. 1,000명 가까운 선수들이 활동 중이다. 이들의 소망은 하나다. ‘돈 적게 드는 즐거운 야구’다. 실제로 이들은 그 같은 야구를 해 왔다. 지난해를 예로 들어 보자. 이들은 팀당 연회비 5만~10만원을 내고 매주 월·화·목 3일 아침마다 경기를 해 왔다. 부천 아침 리그에 참여하는 팀은 모두 6개. 한 경기 참여할 때마다 드는 경비는 1인당 2,000원에 불과하다.
“돈 적게 드는 야구를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야구장 임대비가 점점 더 비싸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사를 비롯해 몇몇 사회인 야구단원이 의기투합해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한 이유다.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고 2012년 12월 시행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지난해 10월부터 준비를 시작, 지난해 12월 창립총회를 갖고 경기도에 신고를 마친 것이다.
창립조합원수는 90명에 조합비는 1인당 1만원씩으로 총 157만원을 모았다. ‘부천시민의 자유롭고 부담 없는 사회인야구 활동을 보장하고 회원 간 친목도모와 상부상조로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고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활동을 함께 한다’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그렇다면 ‘돈 적게 드는 즐거운 야구’와 협동조합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오래 전부터 우리가 사설 야구장을 운영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개인야구장을 직접 만들거나 공공 야구장을 위탁받아 운영하자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단순히 야구를 좋아하는 개인들이 모인 취미단체로는 하기가 어려웠지요. 그렇다고 누군가가 자금을 대 법인을 꾸릴 수도 없었고요. 협동조합은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협동조합 경영진들은 공공 야구장의 위탁 경영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이라는 ‘법인’이 만들어졌으니 위탁경영자로서의 자격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구장을 직접 만드는 것도 검토 중이다. 야구장을 만든다는 것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땅 3,000~3,500평에 야구장 건립비 5,000만~1억원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이 이사는 “경기도가 10구단을 유치, 바야흐로 야구의 도시가 됐다”며 “부천야구협동조합이 앞으로 부천을 넘어 경기도 전체의 시민야구를 이끄는 야구협동조합으로 성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광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l imu@gr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