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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설봉산성] 삼국시대 호국혼 담긴 치열한 격전지


이천의 진산(鎭山) 설봉산은 도자비엔날레가 열리는 설봉공원으로 더 잘 알려진 산이다. 입구에는 설봉호가 자리 잡고 뒤로 도자축제와 관련한 각종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천시립미술관이 등산객을 반긴다. 설봉산은 여러 면에서 시민들의 포근한 안식처가 되고 있다.

해발 394m의 아담한 산세에,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잘 개발되어 있어 산을 오르기도 편하다. 설봉산은 세계도자비엔날레로 유명세를 탄 산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설봉산성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서도 산성으로 가는 길 안내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길을 물어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다.

삼국시대 고구려가 쌓은 성

설봉산성은 설봉산 정상에도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이천시립미술관 맞은편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장 오른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20여분을 오르면 돌로 쌓은 성벽과 마주하게 된다. 설봉산성이다. 성벽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시설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성벽에 올라서니 이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파란하늘과 어우러진 이천 시내는 넓은 평야와 더불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설봉산성은 고구려가 축성한 포곡식산성이다. 성 안에 있는 봉화대. 적의 침입 등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칼바위. 봉화대 바로 앞에 있다.

설봉산성은 계곡을 감싸 안고 있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축성연대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고구려가 백제를 쳐서 한강 이남을 점령한 이후 처음으로 이곳에 남천현(南川縣)을 설치한 고구려 장수왕 63년(475년)에서 신라․백제가 다시 이곳을 수복하던 신라 진흥왕 12년(551년) 사이에 고구려가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직단. 삼국시대 전국의 명산에서 국가적으로 제를 지냈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서 시행되었다고 한다.

장대지. 군사를 지휘했던 건물이 있는 곳으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이천부읍지(利川府邑誌) 등 조선시대에 간행된 고문헌에 따르면 설봉산성은 설봉산고성(雪峰山古城) 또는 왜성(倭城)으로 불렸으며, 성곽의 둘레가 5,112척 또는 1,500보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이미 폐성이 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잠시 주둔했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설봉산성이 부성 2개를 거느렸다는 점이다. 본성보다 높은 정상 인근에 설치된 2개의 부성은 설봉산성이 갖는 지형적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삼형제바위 등 주변 볼거리 풍성

성을 따라 안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편편한 돌판 몇 개를 겹쳐 세워놓은 듯한 바위가 보인다. 칼바위다. 그리고 그 옆으로 조그마한 봉수대가 보인다. 또 그 뒤로 제사를 지냈다는 사직단 터가 있다. 이곳에는 주춧돌만 남았지만 군사를 지휘했던 장대지도 발견됐다.

찬찬히 성 주위를 돌아보면 군기를 꽂았던 바위와 돌싸움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돌무더기 등도 찾을 수 있다.

설봉산성을 따라 등산로를 계속 걸으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산 길을 영월암 방향으로 잡으면 설봉산의 또 다른 볼거리인 삼형제바위와 보물 제822호인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그리고 수령 640년을 자랑하는 은행나무 등을 만나는 행운도 누리게 된다.

무심코 오르는 등산로에서 만나는 작은 바위 하나, 무너진 성곽 너머에는 선조들의 숨결과 삶이 담겨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곳곳에서 선조들의 기상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이신덕 기자․사진|김영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