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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니하오! 차이나 | 공직자 부패척결에 '고삐'

공직자 부패척결에 ‘고삐’
“눈먼 공금 흥청망청 더 이상 방관 못해”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직자들의 공금 사용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면서 요즘 베이징 시내의 외국 유명브랜드 매장엔 예년에 비해 손님이 뜸한 편이다.

지난 5월 노동절 황금연휴를 맞아 행인들로 붐빈 베이징의 번화가인 왕푸징. 롯데인타이 백화점 사거리 근처에 있는 5성급 왕푸반도호텔 내 루이뷔통과 샤넬 매장을 찾았다.
샤넬 매장 직원에게 요즘 백이 잘 팔리느냐고 물었다. 여직원은 “실구매자 수는 지난해 이 맘 때에 좀 못 미친다”고 답했다. 건너편 루이뷔통 매장 여직원도 “손님이 지난해보다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왕푸징 중앙대로에 들어서 있는 롤렉스와 카르티에와 같은 외국 유명시계 매장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베이징 시내 중심을 남북으로 가르는 장안대로(창안제)와 왕푸징대로를 끼고 있는 대형쇼핑몰 동방플라자 내 유명브랜드 매장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동남쪽 번화가인 궈마오역 주위에 있는 외국 명품매장 역시 마찬가지 모습이었다. 에르메스, 조르지오아르마니 매장에도 손님의 발길이 뜸해 보였다.
중국에서 해마다 두 자릿수의 높은 매출 증가율을 기록해온 외국 럭셔리 브랜드들이 올해 들어 다소 주춤하고 있다는 명품업계와 컨설팅사들의 분석이 틀리지 않았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국 명품브랜드 매장 손님 줄어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강조하고 나선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지난해 11월 중순 취임하자마자 “호랑이든 파리든 부패 분자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시진핑 지도부는 5년 동안의 집권 1기에 ‘반(反)부패’를 내세워 국민의 지지기반을 넓히고 공직자들의 기강을 세우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시 총서기는 부정부패 척결의 하나로 이른바 ‘삼공(三公) 경비’(접대비·출장비·관용차량비)의 낭비를 비롯한 공직자의 사치 풍조를 엄단하라고 지시했다. 공직자들이 공금낭비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통탄할 일이라고 말했다.
리커창 총리도 “부패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무기는 권력과 돈, 공무원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공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는 풍조가 널리 확산돼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공직자들은 월급 외에도 공무 접대비, 출장비, 관용차 구입·관리비를 맘껏 쓸 수 있는 특권을 누려왔다.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잡지 인민논단 보도에 따르면, 식사·음주 접대를 위한 공금 지출액은 2010년과 2011년 2년 연속 1조위안(180조원 정도)에 달했다. 값비싼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데 낭비된 공금은 올해 국방예산(7,406억위안)을 크게 웃돌았다. 인민논단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당·정 간부 4,100명 가운데 50%는 ‘업무상 편의와 승진을 위해 접대성 공금 낭비를 한다’고 밝혔다.

접대성 공금 지출액, 국방예산 초과
국유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몇몇 국유기업은 지난해 한화로 1,5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접대비로 쓴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매체들이 증시에 상장된 국유 중앙기업들의 2012년도 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중국철도건설의 ‘업무초대비’는 8억3,700만위안, 중국교통건설은 7억7,900만위안으로 드러났다. 국유기업 중 지난해 1억위안 넘게 업무초대비를 쓴 곳은 모두 10개사였다. 이들 국유기업이 쓴 업무초대비를 합하면 무려 29억700만위안으로 한화로 바꾸면 5,000억원이 넘는다.
베이징 지역 회계사들은 “업무초대비는 식사비와 기념품 증정비 등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공기업 임직원들이 먹고 마시고 선물 사는 데 공금을 흥청망청 쓴 셈이다.
중국요리협회가 지난 1월 중 100개 음식점을 대상으로 음식물 낭비 실태를 조사한 결과, 과도하게 주문해 음식을 낭비하는 테이블의 80%는 공금을 쓰는 회식이나 비즈니스용 접대 차원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나머지는 하례회 행사나 결혼 피로연 자리였다.

사치·호화소비 추세 수그러져
중국 지도부가 부정부패와 사치·낭비 척결을 외치면서 고급 음식점·호텔·명품매장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중국에서 통상 사업 거래는 만찬 자리에서 이뤄져 고급 음식점 등은 호황을 누려 왔는데 최근 들어 매출액이 뚝 떨어졌다.
베이징에서는 중앙 정부나 기관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유명 음식점들 가운데 매출 급감으로 문을 닫는 곳까지 나오고 있다고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고급음식점 체인인 샹어칭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분기 적자가 약 7,000만위안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샹어칭 직원들은 “새 지도부가 관료 사회와 군부에 초호화 축하연을 금지하도록 한 점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국 상무부의 선단양 대변인은 지난 2월 “지난해 12월 당원의 근검절약 생활화 등을 담은 ‘중앙 8항 규정’이 나온 이후 베이징, 상하이 등의 고급 음식점 매출은 20~35%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고급 선물과 호화 접대 시 인기를 누려온 마오타이, 우량예 같은 고급술 판매도 올해 들어 눈에 띄게 감소했다. 베이징 왕푸징백화점 내 주류 매장 직원은 “마오타이가 판매 부진으로 가격이 수 백 위안 내렸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이전에는 정부 기관과 국유기업에서 고가의 바이주를 썼는데 최근에는 소비가 줄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 조사기관인 후룬연구소가 최근 대륙 내 부자 5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마오타이의 선물 선호도 순위는 지난해 5위에서 올해 13위로 떨어졌다.

단속 피해 음성적 사치 여전
그러나 당·정 지도부의 규제와 감시를 비웃듯 일부 공직자들은 이를 피하는 새로운 방법을 짜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신분비밀이 보장되는 곳에서 계속 사치를 누리고 기업인과 불법적으로 유착하고 있는 것. 일부 관리들은 기업가의 집이나 별장을 방문하는 식으로 단속과 외부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국영 CCTV는 4월에 방영된 고발 프로그램에서 공직자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비밀 고급음식점이 사찰과 사합원 등에서 은밀히 영업 중이라고 폭로했다. 이곳들은 회원만을 상대로 영업하는 프라이빗 클럽 형태로 운영된다. 이곳의 1인당 식사비는 598위안부터 최고 6,000위안까지 한다.
일간 베이징완바오도 자금성 뒤를 비롯 베이징 시내 중심가 골목에는 고급 프라이빗 클럽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곳의 회원카드는 20만위안부터 시작하며, 한 끼 식사비는 1인당 최소 1,000위안 이상. 베이징 동청구에 있는 한 프라이빗 클럽은 하루 저녁에 한 팀만 예약을 받는데, 비용은 1인당 5,000위안 이상을 받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선물과 접대에 대한 공직자들의 인식은 아직도 국민들과 동떨어져 있다.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전국 관료의 20%는 일정한 수준의 선물이나 대접을 받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부패문화 근절엔 회의적 시각
게다가 고위 공직자의 재산공개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으면서 부패척결 노력이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무원의 반발 때문에 월급과 수당만 공개하거나, 일반인들이 알 수 없게 기관 내부 전산망에만 공개하고 공개기간도 크게 줄이는 편법을 쓰고 있다.
이에 대해 언론매체와 학계 전문가들은 재산공개에 대한 관료들의 반발이 적지 않은 데다 검증절차도 허술해 재산공개가 ‘속 빈 강정’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
베이징대학의 한 학자는 “새 지도부가 역대 지도부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진지하게 부패척결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사회 전반의 뿌리 깊은 부패문화를 근절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이런 시각에는 기득권 반발로 성과를 제대로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현 5세대 지도부를 비롯해 고위 간부와 친척들이 수십 년 동안 당·정·군의 요직은 물론 대형 국유기업에서 이익 분점 관계를 구축해 놓고 있다. 30여년간 경제발전을 거치면서 기업, 관리, 지방정부는 상호 이익사슬을 형성해 왔다.
중국에서 새 정권 출범 초기인데도 최고지도자의 특별 지시가 철저히 이행되지 못하는 현실은 앞으로 부패척결을 비롯한 개혁의 실행이 쉽지 않을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