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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COVER STORY | 신가족의 사회·경제학 1




新가족의 사회·경제학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손자, 며느리가 한 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밥을 먹는 모습. 3대가 한집에 모여 사는 대가족은 과거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가족상이었다. 이랬던 가족이 변하고 있다. 1970~80년대 산업화에 따라 부부와 아이 한둘로 구성된 3~4인 핵가족이 대한 민국 가족의 중심이 되더니, 2000년대에 이르러 1~2인으로 구성된 ‘나노 가구’가 대세로 떠올랐다. 1인 싱글족부터 맞벌이 무자녀 가 족인 딩크족, 애완동물을 자녀 대신 키우는 딩펫족, 맞벌이와 육아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개념으로 뭉친 新대가족까지. 2013년 가족 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대한민국 가족의 현 주소를 들여다봤다.

■ 글 l 이미영 기자 misaga@gfeo.or.kr




가족은 변화 중
핵가족 줄고 ‘나노가족’이 는다
2035년 둘 중 하나 1~2인 가구… 혈연중심 벗어난 가족 새로운 ‘대세’


 


“결혼, 그거 꼭 해야 하나요?” 올해 나이 36세. 남들이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이진경 씨에게 결혼은 여전히 자신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그녀는 “딱히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들 다 하니깐 나이에 쫓겨서 억지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직장 다니면서 취미활동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아이와 남편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지금의 솔로생활도 만족스러워요”라고 말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과거 당연시 되었던 가족 형성의 기본 과정인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홀로 가구와 부부로만 이뤄진 1~2인 가구가 현대 가족 형태의 대세로 떠오르면서 더 이상 가족을 대표하는 속담인 ‘피는 물보다 진하다’가 통용되지 않는 시대에 접어 들었다.

1인 가구 비중 24%까지 늘어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족 구성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 두 명으로 이뤄진 4인 가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나홀로족과 딩크족으로 대표되는 ‘1~2인 가구’ 비율이 급증하면서 3~4인 가구로 이뤄진 ‘핵가족’에서 다시 한번 쪼개진 ‘나노 가족’이 대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부와 미혼자녀, 편부모와 미혼자녀 등을 가리키는 핵가족의 비중은 1980년부터 2000년까지 68%를 줄곧 유지했지만 2010년 61.6%로 감소했다. 대가족은 아예 사라져 가고 있다. 1980년대 50%였던 5인 가구는 2010년 8.1%로 크게 줄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절반의 가족 수가 5명이었다면, 지금은 100가구 중 8가구만이 다섯 식구로 가족을 이루고 있다. 부부와 미혼자녀, 부모로 구성된 3세대 가족 수 역시 17%에서 6.2%로 줄어들었다. 점점 사라지는 대가족의 자리를 빠르게 메꾼 것은 1인 가구다. 1980년대, 5%에 불과했던 1인 가구는 2010년에 들어서서 24%로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2, 3명이 혼자 살고 있는 셈. 이는 독신 남녀가 늘어나고 있는 데다 부모를 모시지 않는 자녀들이 늘면서 독거노인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인 가구는 2010년 처음으로 4인 가구를 앞질렀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에 4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31.7%를 차지해 절정에 달했다. 그 이후 감소하면서 2010년 22.5%까지 추락했다.

출산기피도 심각
“지금 월급으로는 결혼도 힘든데 아이는 꿈도 못 꾸고 있어요.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을 생각이에요.” 올해 말 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지연(31) 씨는 자신을 비자발적 ‘딩크족’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주위에 결혼을 한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해야 하거나 부부가 서로 희생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둘이 함께 벌어서 대출금 갚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아이까지 낳아서 키울 생각을 하니 막막했죠. 그래서 내린 결론이 아이를 키울 여력도 환경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산을 고집하기보다는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데 집중하자고 의견을 모았어요”라고 말했다. 최근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활동과 함께 경제 침체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 부부 ‘딩크족’도 급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바닥 수준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은 2010년 1.23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이는 합계출산율이 가장 높은 이스라엘(3.03명)보다 1.80 명, OECD 평균(1.74명)보다 0.51명 낮은 수치. 문제는 우리나라 출산율 하락 속도가 빠른 데다 회복이 더디다는 점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70년 4.53명에서 30년 사이에 평균 3.30 명이나 줄었다. 이러한 저출산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육아 부담과 높은 사교육비를 꼽았다. 현대 가족 구조가 핵가족에서 더욱 쪼개진 ‘나노 가족’이 대세를 이루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맞벌이로 인한 아이 양육 문제 해결과 부모 부양의 합리적 방법으로 모여 살기를 택한 가정, 이른바 따로 또 같이 모여 사는 新대가족도 등장했다. 과천에 사는 전미라 씨는 최근 수원으로 이사를 준비 중이다. 서울에 살던 친정 부모님이 수원에서 살고 있던 언니 부부의 집 근처로 거처를 옮기면서 과천에 있던 전 씨까지 수원으로 이사를 결정한 것. 이 가족이 근거리에 모여 살기로 ‘합의’를 한 것은 육아 문제가 일차적이다. 전 씨는 “얼마 전 둘째 아이를 낳은 언니가 회사에 복귀할 시점에 맞춰 친정 부모님이 언니의 집 근처로 거처를 옮겼어요. 저도 맞벌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정 부모님에게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 수원으로 이사를 결정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3대 이상이 한 집에서 같이 살던 과거 대가족이 함께 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면 현대의 대가족은 한 집이 아닌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독립된 생활을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新 대가족 구성원들은 가족끼리 도와가면서 서로 부담을 더니 경제적 이득과 함께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이 크다고 강조한다.

대세가 된 비혈연가족
현대 가족은 더 이상 결혼으로 묶인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미혼 또는 비혼 1인 가구, 동거 가구, 소셜 미디어 발달에 따른 온라인 커뮤니티 가족,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비혈연가족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25.1%는 비혈연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혼자 살거나 친구 등과 가구를 이룬, 이른바 비혈연가구가 4분의 1을 차지한 것은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2010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1,733만9,000가구) 중 혈연가구는 1,299만5,000가구로 74.9%다. 1980년 93.7%에 달하던 혈연가구 수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83.3%로 줄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75% 밑으로 하락했다.
문제는 1인 가구 증가 등 비혈연가족 중심으로 가족 형태가 다양해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과 제도는 여전히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임대아파트를 알아보던 직장인 박종영(34) 씨는 청약자격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희망을 접어야 했다. 단독세대주는 신청자격이 없다고 명시돼 있었기 때문.
박씨는 “가뜩이나 결혼 못한 것도 서러운데 미혼이라고 공공주택 청약도 못하니 씁쓸해요”라고 말했다.



가족변화 반영한 정책 절실
결혼 등 이성간 법률혼을 매개로 하는 전통적 가족에서 벗어난 1인가구, 동거가구 등 비혈연가족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주택, 사회보험, 세제 등 기존 정책 수혜의 사각지대에 서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가구유형 변화에 대한 대응방안’ 보고서를 통해 청약가점제, 소득공제 제도, 사회보험 수급자격 등 3~4인 가구를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의 정책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청약가점제는 부양가족 수 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해 1인 가구는 후순위로 밀리거나 아예 신청자격을 갖지 못한다. 35세 미만의 단독세대주는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 대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동거 가구처럼 혈연관계가 없음에도 생계와 생활을 함께하는 ‘비혈연 공동체’ 역시 비슷한 제도적 소외를 겪는다.
국민임대주택에서 세대주가 혈연관계 아닌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제한하는 게 한 예다. 입주자격이 있는 세대원은 세대주의 직계존비속에 한정된다.
LH공사 임대운영관리부 담당자는 “직계존비속이 아닌 동거인은 거주 근거가 없어서 퇴거를 요청할 수 있다”며 “전대(轉貸)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가족관계가 다양화하더라도 법률혼 등 법적 테두리 안에서나 보호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 등 친족관계상의 부양·피부양 체계를 기초로 한 사회보장 정책도 피부양자가 많은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 사이에 보험혜택의 차이가 크다.
소득공제 제도 역시 배우자공제와 부양가족공제, 자녀양육비공제, 교육비 공제 등 3~4인 가구에 대한 공제혜택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는 모든 제도와 정책이 핵가족 중심으로 돼 있어서 가구유형 간 형평성 측면에서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같이 살면서 가족으로서의 친밀감과 연대감이 있음에도 배제되는 것은 문제인만큼 가족의 개념이 협력과 협동을 통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INSIDE 1 | 영화로 본 가족 변천사

영화로 본 가족 변천사
가족해체부터 비혈연가족까지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대중문화 속에 반영된 가족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가족’이라는 소재로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 온 한국 가족영화 계보를 살펴봤다. <바람난 가족>에서 <우아한 가족>, <가족의 탄생>, 최근에 개봉한 <고령화 가족>까지, 영화 속 가족의 변천사를 따라가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