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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通

경영수업만 18년, 2세대 CEO가 밝힌 미래 비전

“회사 대표가 되기까지 18년 간 경영수업을 받았는데 그 기간은 연습도 아니었습니다. 취임 후 처음 100일은 마치 100년을 산 기분이었어요. 1년이 조금 지난 지금에서야 아버님께서 이런 기분이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선친인 노재규 대표의 뒤를 이어 지난해 9월 1일 CEO로 취임한 동남석유공업㈜(www.dongnampetro.com)의 노충석(46) 대표는 당시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해 2월 췌장암 선고를 받은 선친은 올해 6월 향년 74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안산시 반월공단에 위치한 동남석유공업은 1973년 2월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전기절연유 생산업체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전기절연유를 비롯 산업용윤활유, 유압작동유, 금속가공유, 고무배합류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업계 1위로 우뚝 서 있다.

‘시스템화’에 주력하다
노 대표는 대표로 취임하기 전 18년 동안 총무, 영업, 생산, 연구개발, 공장장, 상무 등 모든 부서와 직책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대표에 취임할 무렵에는 회사의 장점과 약점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는 상태였다. 탁월한 기술력이 장점이라면 경영관리시스템은 취약하다는 것. 노 대표가 지난해 9월 대표 취임 후 열린 첫 전체회의에서 ‘시스템화’라는 비전을 제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주먹구구식 경영방식에 메스를 댄 것이다.
노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칩이 내장된 사원증을 만드는 일이었다. 효율적인 근태관리를 위해서였다. 유류를 다루는 사업장의 특성상 회사 전체가 금연구역이어서 담배를 피우려면 정문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두 번 정문 출입이 허용된다. 직원들의 금연 노력에도 일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 하나는 연구개발 부서와 영업 부서 직원들의 개인용 책상을 없애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11월과 12월 2개월간의 예행연습을 거친 후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개인용 책상이 없어지는 대신 6각형 모양의 공용 테이블이 설치된다.
“창의성이 필요하고 시간의 제약을 받는 연구개발 부서와 영업 부서 직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21세기형 관리시스템입니다. 데스크톱을 없애고 이들에게 넷북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어디에 있든 인터넷에 연결하는 즉시 회사 그룹웨어와 동기화됨으로써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영업 부서 직원이 현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과정을 회사 내 연구개발 부서에서도 동시에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어깨동무 리더십
“아버님의 경영방식이 끌고 가는 리더십이었다면 저의 경영방식은 어깨동무 리더십입니다. 다 같이 잘 사는 것이 목표예요. 40년 가까이 된 회사를 1~2년 만에 다 바꿀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시스템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노 대표의 어깨동무 리더십은 사규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났다. 사규를 현시대에 맞게 고치겠다고 직원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나서 직원들에게 요청했다. 사규 내용 중에서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렇게 저렇게 고쳐달라고 요구하라고. 노 대표는 그렇게 전달받은 의견을 법률적인 부분을 감안해서 모두 반영했다.
“‘나=회사’라는 일체화 느낌이 중요합니다. 회사 대표가 자리를 비워도 직원들이 각자 맡은 일에 대해서는 ‘내가 사장이다’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책임감과 자부심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노 대표는 하루에 회사를 두세 바퀴 돈다. 한번 돌때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남짓. 건평 7,500평을 천천히 걸으며 살펴보고, 생각하고, 현장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1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아버님은 행동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기술의 중요성과 시장 환경변화의 길목 지키기, 생존과 발전의 법칙을 행동으로 가르치셨지요. 아버님 살아계실 때가 집안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생활한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차가운 밖에서 하늘을 벗 삼아 사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어디로, 어디까지 갈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 노 대표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생각이다. 회사의 미래를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이미 대강의 그림을 그려놓은 상태다. 그가 그려나갈 캔버스에는 ‘친환경’ 구상이 밑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친환경 제품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한 선친은 지난해 식물성절연유(고점도임) 개발을 완료했다. 국내 처음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였다. 노 대표는 올해 ‘저점도 식물성 절연유’ 개발을 시작했다. 이미 성공의 80%수준에 육박했다는 것이 노 대표의 설명이다.
노 대표는 지난 10월부터 중소기업청 지원 아래 업종추가를 통한 업종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원유를 정제해서 나온 광유를 원료로 하고 있는 기존 제품군을 식물유를 이용한 친환경제품으로 바꿔 나간다는 전략이다. 5년 후에는 지금 생산하고 있는 제품의 대부분이 친환경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 노 대표의 확신이다.
‘공장형 농장’은 노 대표의 장기 프로젝트다. 식물유를 원자재로 쓴다는 개념의 확장이다. 원자재 확보 차원에서 어차피 식물(콩,야자수,유채꽃)을 재배해야 한다면, 수경재배를 통한 대규모의 공장형 농장을 또 하나의 사업군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미 자료 수집에 본격적으로 나선 상태다.
노 대표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시스템 구축은 내년 6월경에 완료될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이 시스템에 따라 성과급이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유능한 인재 영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천국 같은 회사’를 꿈꾸며
선친 생전에 노 대표의 별명은 ‘노 회장’이었다. 늦은 출근시간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느슨한 태도는 대표로 취임한 이후 180도 변했다. 늦어도 7시 40분까지 회사에 출근한다. 한 번도 참석해보지 않았던 조찬강연회에도 지금은 월 4~5회 참석한다.
“아버님도 열심히 나오시더니 아드님도 열심히 나오시네요.”, “당신이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조찬 모임에 나갈 준비를 하다니….” 앞의 것은 조찬행사 주최자의 말이고, 뒤의 것은 15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의 말이다. 노 대표는 “조찬 모임에서는 배울 것이 많고, 경영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가 된 이후에는 책을 읽는 습관도 생겼다. 취임 후 1년동안 11권의 책을 읽었다. 지금은 4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노 대표가 정말 만들고자 하는 회사는 ‘천국 같은 회사’다. 월요병이 없는 회사, 회사에 가고 싶어서 안달 나는 회사다. 그는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추진하고 있다. 완벽한 소통, 생각하며 일하는 문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제안제도가 그것이다.
제안제도의 경우 1건당 무조건 1만원, 고려해볼만한 2단계에 선택되면 10만원, 최종적으로 공정에 적용돼서 수익(비용절감)이 발생하면 수익금액(비용절감액)의 20%를 성공보수로 지급한다. 이미 한 건이 생산 공정에 적용돼 4개월째 개선 정도가 체크되고 있다.
‘그래도 가야한다.’ 노 대표의 좌우명이다. 노 대표는 스스로를 ‘공평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영어와 일어가 유창하며, 현재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살다간 흔적’을 남기기를 원한다. 장학재단 설립도 그런 계획의 일환이다. 동남석유공업은 지금 트랜스포머처럼 21세기형 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김중근 기자 kjg21@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