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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마켓이 변한다-시전에서 소셜까지

<COVER STORY>-마켓이 변한다

 

마켓(market)은 갖가지 물건이 거래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의식주를 기본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생활무대이다. 19C말 개항기부터 간헐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시장이라는 용어는 19618월에 시장법이 제정되면서 시장은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와서 모이고”, “물품의 매매교환을 행하는 장소로 정의됐다. 사람과 상품, 공간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돌아가는 시장은 경제성이 있는 상품의 거래가 그 제일의 목적이다. 일상생활에서 늘 소통하게 되는 시장은 경제를 수단과 목적으로, 끊임없이 생성하고 발전하며 소멸되는 궤도를 그리고 있다. 우리 곁에 있는 마켓이 지금껏 어떤 변화를 거쳐 왔고,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알아본다.

|박현정 기자 phj@gfeo.or.kr

 

 


 


 

 

시전(市廛)에서 소셜(social)까지

경제개발에 따른 유통 근대화로 격변

오프라인 시장 상존 속 시간·공간 제약 없는 인터넷쇼핑 등 유행

 

마켓은 변한다. 자급자족 하던 시절에도 여분의 생산물을 서로 물물교환 했고, 점차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상품이 만들어져 시장에서의 판매가 시작됐다. 상품이 판매되고 거래가 성사되는 마켓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인다. 예전에는 상품을 고르고 값을 흥정하는 시끌벅적한 시장에 온갖 상품이 널려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TV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상품을 구입한다.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도 제품진열의 장소도 보이지 않고 직접 만져 볼 수도 없는 네트워크를 이용한 시장까지 등장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또한 기껏해야 옷감, 인삼 등 지역특산물 정도가 거래됐던 국내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도 수천 수만 가지로 다양해지고 풍부해졌다.

 

남대문·동대문시장 조선시대에 생겨

기록상 우리나라에 시장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조선은 종로와 남대문로 구간에 2,000여 칸이 넘는 행랑을 지어 시전(市廛)을 조성해, 왕실과 관청, 도성민의 수요품을 조달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상품화폐경제가 활발해지면서 시장이 급성장했고, 외곽지대까지 상권이 확대됐다. ‘노역 없이 이익만 좇는 장사치로 여겨졌던 상인들도 경제적 가치가 증대된 조선 후기에서야 나라의 근본 중의 근본으로 존중받았다.

외국인에게 시장이 개방된 것은 개항후 1882년이다. 중국과 일본 상인들이 도성에 점포를 개설하고 자본제 상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조선의 시장은 자본주의 시장체제에 노출됐다. 자연스레 전통적 시전은 근대적 상가로 변신을 꾀하게 됐다. 오늘날 주요 시장으로 남아 있는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그리고 일제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상권으로 떠올랐던 명동, 충무로 등의 상권의 골격이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됐다. 구한말 시장을 대변하던 보부상은 일제 강점과 더불어 거의 소멸됐다.

 

 

 

일제 강점기 백화점 첫 등장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국내 시장은 식민시장이 됐다. 자본주의 꽃이라 불리는 백화점이 등장해 이 시기 최첨단 마켓으로 떠올랐다. 일본의 미쓰코시가 1906년 충무로 1가에 미쓰코시백화점을 설립하면서 우리나라에 백화점이 처음 나타나게 됐다. 미쓰코시백화점은 1934년 현대식 건물을 착공하면서 자리를 이전했는데 그곳이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자리다. 한국이 세운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은 1929년 박흥식이 종로 2가 현 국세청 자리에 세운 화신백화점이다. 화신, 미쓰코시, 조지아(미도파 백화점의 전신·현 롯데백화점) 등 백화점의 등장으로 소비 생활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청계천을 경계로 조선인의 북촌 상권은 위축됐고, 일본인의 남촌 상권은 대자본을 토대로 부흥했다. 일본의 철저한 민족자본말살 정책으로 인해 조선인에 의한 마켓은 발전할 수 없었다.

 

1950년대 설탕, 조미료 만들어져

1945년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이라는 시련을 겪으면서 또 한차례 마켓은 변화를 겪는다. 공설시장은 겨우 명맥을 유지했고, 남대문·동대문 시장을 비롯한 30여개의 사설시장이 시장을 이끌었다. 우리나라의 공설시장은 1910년 부산 부평동에 건설된 부평정시장을 효시로 4154개소에 달했으나 점차 그 영역을 사설시장과 유통근대화가 된 백화점 등에 침식당했다. 일제시대의 백화점은 대부분 적산(籍産·죄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으로 분류돼 민간에 매각됐다.

광복 이후 5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통산업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전쟁 후 소비재 제조업체들이 대거 탄생했다. 전쟁이 마켓의 변화와 발달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혹자들의 생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1954년 제일제당의 설탕이 만들어졌고, 59년에는 조미료의 간판스타인 미원이 탄생했다. 54년 럭키는 튜브형 치약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며 칫솔질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한국인의 라이프사이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유통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60~70년대 경제개발로 마켓 폭발적 성장

산업화 물결과 더불어 60~70년대로 접어들면서 인구증가와 경제개발로 마켓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6144개였던 서울의 시장이 79년에는 무려 334개로 대폭 증가했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슈퍼마켓이 등장하고 상가가 번영했다. 세계 경제대공황 이후 박리다매를 전략으로 미국에서 등장한 슈퍼마켓이 우리나라에 70년대초 처음 생겨났다.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서울 한남동에 한남슈퍼가 첫 출발이었다. 이후 경제발전에 따른 유통근대화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면서 정부 시책에 힘입어 슈퍼마켓은 여러 형태로 발달되기 시작했다.

백화점도 직영 방식을 취하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1963년 미쓰코시백화점이었던 동화백화점을 삼성이 인수해 신세계백화점으로 바꾸면서 근대화한 백화점 시대를 개막했다. 67년 신세계가 국내 첫 바겐세일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세일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됐으며, 69년에는 첫 신용카드인 신세계카드가 등장했다. 신세계백화점의 독주는 10여년간 계속됐다. 그러나 79년 국내 최대 규모의 롯데백화점이 서울 중구 소공동에 오픈하면서 백화점 업계는 본격 경쟁체제로 들어서게 됐다.

 

70년대 CM송 등장하며 동종업계 경쟁 치열

고도성장기였던 70년대에는 소비자의 주머니가 두둑해지자 새로운 상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패스트푸드 시장도 이 때 열렸다. 1976년 롯데리아가 등장하면서 자장면으로 대변되던 외식문화에 큰 변화가 일었다. 또한 아이스크림, 과자, 초콜릿, 음료 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경쟁이 치열해지자 식품업체들은 공전의 히트상품을 만들기 위해 광고방송에 힘썼고, 그 결과 유명 CM송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 오란씨하는 대표적인 오란씨 CM송은 70년대 후반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구전되고 있다. 윤석화, 혜은이, 서수남, 하청일, 전영록, 이은하 등의 가수들이 오란씨, 칠성사이다, 아카시아껌, 삼립호빵, 누가바, 비너스 등의 CM송을 불러 인기를 끌었다. 새로운 CF 형태였던 CM송은 마케팅 전략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다.

 

 

백화점 황금기 맞은 80년대 POS시스템 도입

1980년 이후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유통시장이 개방됐다. 이 때부터 시장은 다양한 형태로 더욱 발전해 나갔고, 상거래 방식에도 혁명적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아파트 등 새로운 주거환경이 등장하면서 재래시장보다 근대화된 슈퍼마켓이 소비자들에게 차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80년대 유통업은 핵심 업종으로 주목받을 만큼 성장했다. 백화점 업계는 최대 호황을 맞으면서 황금기를 맞았다. 1984년 신세계 영등포점과 동방플라자점이 개점하면서 본격적인 다점포망이 구축됐기 시작했고, 국내 대부분의 그룹이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84년 신세계백화점과 뉴코아백화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판매시점정보관리(POS·point of sales system) 시스템은 유통혁명을 일으켰다. 점포판매시스템이라고도 불리는 POS시스템은 매장의 주문처리 시스템과 관리자의 메인컴퓨터를 온라인으로 연결해 판매정보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가진다. 각종 판매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유통 서비스업계의 매장 자동화를 가능케 하는 핵심 기능인 POS시스템은 현재 거의 모든 대형 소매점에서 채택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유통시장 격변 일어

1997IMF 구제금융의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기존의 시장은 다시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편의점이 기존의 구멍가게를 밀어내고 도심 골목골목까지 스며들었고, 대형할인점이 등장해 유통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훼미리마트, 세븐일레븐 등 외국계 편의점이 등장하면서 24시간 쇼핑문화를 탄생시켰고, 98년 월마트가 상륙하면서 이마트를 중심으로 한 국내할인점과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현 이랜드 인수) 등 외국계 할인점은 생존을 위해 총성없는 전쟁을 벌였다.

TV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도 이 무렵 등장했다. 1994년 한국통신의 인터넷 계정 서비스가 개시되면서 인터넷이 일반인에게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후 아이네트와 천리안 등의 기업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일반인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96년 롯데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백화점쇼핑몰 헬로우 서울을 개설했고, 2000년대 들어 인터넷쇼핑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또한 TV홈쇼핑도 90년대 후반 케이블TV 보급 정책에 따라 생겨났다. 95LG홈쇼핑과 삼구쇼핑이 TV홈쇼핑으로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매년 2배 안팎의 고속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홈쇼핑시장은 19971,500억원대에 불과했으나 5년만인 20023조원을 돌파했고, 현재는 5조원이 넘는다. 1999년 이후 정부가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면서 홈쇼핑 매출의 고속성장을 도왔다.

 

 

 

최근 온·오프라인 결합이 대세

2000년대부터 인터넷 전자상거래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상품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구매도 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해외 상품을 구매대행해 주는 업체가 성행하고 있고, 해외 배송대행업체를 통해 직접구매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 쇼핑이 일반화되면서 전통적 유통업체의 성장잠재력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슈퍼마켓과 백화점, 재래시장 등은 수익이 악화된 반면 대형할인점과 편의점, 인터넷쇼핑몰, TV홈쇼핑 등의 신업태는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도 활발하다. 전자상거래가 급팽창하면서 인터넷쇼핑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자 물류 및 쇼핑망을 갖춰야만 승산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상품을 네트워크로 한데 묶어놓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소비자가 물품을 구입하면 체인망을 갖춘 오프라인 유통업체에서 다음날 물건을 배달하는 식이다.

최근 들어 아이폰 등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모바일 쇼핑도 증가하고 있다. 마케팅과 온라인커머스가 기술 중심으로 발전해 감에 따른 현상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전자상거래인 소셜커머스가 2010년 중순 등장했다. 쿠팡과 티켓몬스터 등 대형업체는 월 거래액이 500억원을 넘어서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지만 최근 반값 할인쿠폰 공동구매 웹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출혈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Clip-판매영업 방식의 변천

우리나라 전통적인 판매영업은 보부상과 객주가 주도했다. 보부상은 5일장 등을 돌며 물건을 팔고, 객주는 여인숙이나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상품을 팔았다. 조선 후기 개성상인은 객주와 물량을 좌지우지해 전국 상권을 잡았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이 대형시장의 상권을 장악했으나 포목상으로 동대문시장 상권을 주도한 박승직과 화신백화점을 일으킨 박흥식은 상업부문에 천재적인 수완을 발휘했다. 그 후 1950년대까지는 사회적 혼란기로 음성적 판매가 이루어졌고, 재래시장도 활기를 띠지 못했다.

1960년대 들어 판매방식은 기존의 재래시장과 백화점에서 대리점 판매와 방문판매 등으로 분화된다. 방문판매는 60년 중반 화장품업계를 중심으로 확산됐고, 58LG의 전신인 금성사가 설립되면서 전자제품의 본격적인 판매영업이 이루어졌다.

1969년 신세계백화점은 현대적인 직영매장을 운영해 소매업 판매부문에 한 획을 긋는다. 70년대와 80년대 설립된 롯데와 뉴코아, 현대 등 모든 백화점은 신세계백화점의 직영이후 똑같은 수수료 매장 운영 방식을 취했다.

80년대에는 편의점과 신방문판매, 통신판매, 다단계판매 등 신업태가 생겼다. 90년대에는 신세계 E마트 등 할인점과 쇼핑몰 등으로 매장이 대형화하고, 홈쇼핑, 통신판매, 전자상거래 등 정보통신을 기반으로 한 판매영업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Tip-에누리와 덤

에누리는 값을 더 부르는 판매자의 입장과 값을 깎는 소비자의 입장이 동시에 고려된 용어다. 일제시대에 에누리 관행은 비문화적 악습으로 간주돼 폐지의 대상이 됐고, 이는 곧 가격표시제, 정찰제 실시로 연결됐다. 에누리 관행은 오늘날 할인판매로 그 맥락이 이어져 바겐세일, 염가대매출, 초특가세일, 폭탄세일 등의 이름을 빌려 끊임없이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인터넷쇼핑몰에서도 주문이 적은 특정 시간대에는 값을 깎아주거나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할인 마케팅도 에누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은 물건을 살 때 거저 더 얹어주는 것이다. ‘제는 오늘날 사은품, 포인트 점수 등의 명목으로 변형됐다. 여러 개의 상품을 구입했을 때 한 개를 더 얹어 준다거나, 특정 상품을 샀을 때 끼워주거나 선착순으로 주기도 하고, 때로는 복권을 제공하기도 한다. 요즘 백화점, 대형마트, 인터넷쇼핑몰 등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포인트 점수(적립금 제도)도 물건을 사면 덤으로 점수를 부여해주고, 거기에서 적립된 점수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