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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COVER STORY | 지하경제, 그것이 궁금하다 1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지하경제 양성화'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초연금 확대, 4대 중증질환 국가 부담 등 핵심 복지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증세 대신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복지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방침이다. 검은돈과의 전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것인데 과연 자수해서 광명 찾을 돈이 얼마나 될 지 미지수다. '지하경제'의 의미에서부터 바람직한 정책 방향 등 박근혜 정부의 지상 최대 과제 중 하나인 '지하경제 양성화'의 면면을 살펴본다.


■ 글 | 박현정 기자 phj@gfeo.or.kr, 사진 | 연합뉴스


 

1. 지하에서 지상으로
“지하경제 6% 끌어내 연 1조6천억 확보”
인수위, 53조 양성화해 세수 확보… 광범위한 기준, 실제 규모 파악 어려워


지난해 11월 수원역 2층 대합실 물품보관함에서 5만원권 999매(4,995만원)가 든 돈가방이 발견됐다. 경찰은 탐문수사 등을 통해 가방 주인 찾기에 나섰으나 가방 주인의 행방은 아직까지 묘연한 상태다. 돈다발을 묶은 종이 띠지가 은행에서 쓰는 게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찰은 범죄와의 연관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은돈’과의 전쟁 선포
2011년 4월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제 ‘마늘밭 110억’사건이 발생했다. 친인척에게 인터넷 불법도박 사이트를 통해 번 112억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전북 김제시에 있는 마늘밭을 사 흙속에 파묻었던 부부가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확정 받았다.
돈의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불법으로 유통된 자금이 세상에 발각될 때마다 ‘검은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뜨거워진다. 밝은 곳을 싫어하는 ‘검은돈’의 특성상 그 정체가 드러나면 기업 비자금이나 뇌물, 은닉재산, 탈세 등 각종 범죄와의 연결고리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검은돈’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공약하면서 검은돈과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향후 5년간 4대 중증질환 국가부담, 기초연금 확대 등 134조원으로 추산되는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총 53조원을 지하경제 양성화로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60%는 예산절감과 세출조정을 통해, 나머지 40%는 비과세 감면 정비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직접적인 증세 없이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5년간 15조원 세수 확보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의 6%만 양성화해도 연간 1조6,000억원의 세수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고소득 자영업자와 대기업 탈루소득에 과세를 강화하면 연간 1조 4,000억원을 추가 확보할 수 있다. 둘을 합하면 연간 3조원, 5년간 재원 확충 규모가 15조원에 이른다.
지하경제 축소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 이행을 위한 ‘지하경제 양성화’를 두고 여야 정치권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적극적인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부자 증세는 해봐야 몇 푼 되지 않는다”며 “상속세 포탈, 기업 비자금 등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는 것이 새정부의 중점과제”라고 말했다.

광범위한 지하경제 구조
반면,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받는다거나 부자들 세금 깎아준 걸 원상회복시키는 등의 일은 하지 않고 증세 없이 복지정책을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며 “지하경제를 줄이는 건 좋은데 줄인 실적에 따라 복지의 규모도 결정되는 폐단이 나오게 되는 만큼 불확실한 재정대책을 넘어 적
극적 증세정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하경제 양성화는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아직 지하경제의 의미도 불명확하다. 지하경제의 광의의 개념은 국가의 공식적인 파악체계에서 누락된 부분을 통칭하는 것이고, 협의의 개념은 간단히 말해 세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도박, 매춘, 밀수, 장물 거래, 모조품 제조 거래, 뇌물 수수, 고액 불법 과외, 불법 정치자금, 허위 소득 신고, 무자료 거래, 다운계약서 등 부동산 차익 조작, 노점상 등 자영업자의 소득 미신고, 분식 회계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이 지하경제에 해당한다. 이외에도 지하경제의 유형은 다양하게 존재한다.(표 참조)
웬만한 자극에 꿈쩍도 하지 않는 검은돈을 지상으로 끌어내는 것도 어려운 과제이지만 지하세계에 있는 검은돈이 얼마 만큼인지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거래 내용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세금을 부과할 수 없고, 때문에 지하경제의 규모 자체도 정확하게 규정할 수가 없다.
새누리당 대선 공약집에서는 세금탈루, 세금체납과 별개인 지하경제의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4%인 372조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짠 올해 예산안 342조5,000억원보다 많은 액수다. 새누리당 공약집의 지하경제 추정 규모는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오스트리아 린츠대(요하네스케플러대)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의 산출 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슈나이더 교수는 1999~2007년 GDP 대비 한국의 지하경제 비율이 평균 26.8%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와 한국의 지하경제 비율이 비슷한 수준이다.



정확한 추산 사실상 불가능
반면, 국책연구소인 조세연구원은 2008년을 기준으로 GDP의 17%(160조~170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2004년 기준 GDP대비 18.6%인 154조원, 현대경제연구원은 2006년 기준 GDP대비 22%인 200조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강석훈 의원은 성신여대 교수 시절 2007년 기준 지하경제 규모를 GDP의 20%인 181조원으로 추정했고, 2013년 187조원, 2020년에는 171조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OECD 회원국들의 지하경제 규모가 10~12%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학자마다 견해는 엇갈리지만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선진국의 2배 수준인 셈.
정부의 공식적인 지하경제 규모 통계는 아직 없다. 전문가들은 학자들이 학문적 관심에서 지하경제의 규모를 추산한 자료를 정책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정밀한 추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안종석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하경제가 크면 정부가 정확한 경제정책을 수립, 집행할 수 없다”며 “지하경제 규모를 정확하게 추정하고, 유발요인을 분석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대응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하경제활동의 유형별 분류


FIU 정보 국세청 접근권 확대 추진
아직까지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구체적인 정책은 없는 상황이지만 박근혜 정부가 만지작거리는 카드는 가짜 석유 근절로 5,000억원을 확보하는 것과 금융정보분석원(FIU)법을 개정해 4조5,000억원의 세수를 거둬들이는 것이다.
FIU는 2001년 자금 세탁 및 불법 거래 방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모든 금융기관은 1,000만원 이상 거래 때 불법 재산이나 자금 세탁, 테러 자금 등으로 의심되면 FIU에 혐의거래보고(STR)를 해야 한다.이와 같은 FIU의 정보를 국세청이 지금보다 더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금융거래보고법(FIU법)이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대표발의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고액현금거래보고(CTR), 혐의거래보고(STR) 등에 대한 국세청의 접근권 확대를 골자로 하는 FIU법이 개정되면 국세청은 세무조사·조세범칙 혐의 확인뿐 아니라 세금부과·징수 업무에도 FIU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2011년 FIU에 1,000만원 이상 혐의거래는 모두 33만건에 달했지만 국세청에 제공된 자료는 7,500건으로 전체의 2.3%에 불과했다.
현재 미국, 영국, 호주 국세청은 FIU의 정보를 직접 접근할 수 있고, 독일, 스페인 등 6개국은 국세청에 금융 정보를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다. 프랑스, 캐나다 등 11개국 역시 자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세청이 요청한 정보만 FIU에서 제공할 수 있으며 탈세 혐의 분석을 위해 접근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 시절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국세청, “연간 4조5,000억 추징”자신
국세청은 FIU에 보고된 STR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다면 추징세액을 연간 최소 4조5,000억원까지 높일 수 있다고 자신한다. 국세청은 2010년 ‘숨은 세원 양성화 전담팀’을 설치, 자금세탁, 해외 도박, 환치기 등 과세 사각지대에 대한 세원정보수집활동을 대폭 강화해 2조7,707억원 추징했고, 2011년에는 역외탈세 차단에 나서 156건을 기획세무조사해 9,637억원을 추징한 전적이 있다.
국세청은 향후 300조∼4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지하경제 자금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과세하겠다는 구상이다. 가짜석유를 비롯해 예식장·골프연습장·사채업·대형 음식점 등 탈세 가능성이 큰 대형업종과 변호사·의사·회계사·변리사·감정평가사 등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소득관리도 강화할 방침이다.
그러나 국세청의 FIU 접근권 확대에 대해 과세정보 악용과 현행법상 금융비밀 보호주의 훼손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지하경제 주체들은 애초부터 현금거래가 많은데다, FIU 정보 접근을 확대하면 금융거래가 포착되는 것을 꺼려 지하경제로 숨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며 “납세자의 온갖 정보를 갖고 있는 국세청이 금융정보까지 보유한다면 정치적 목적의 세무조사와 사생활 침해 등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불법도박은 대표적 지하경제에 속한다. 사진은 영화 ‘타짜’의 한 장면.

엄격한 법 잣대, 복지와 상충돼
지하경제 양성화의 목표와 취지엔 모두가 공감하지만 불법 사금융이나 도박, 마약 등 불법적인 경로로 형성된 검은돈보다 저소득 자영업자들이 주된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고소득 전문직의 탈세는 모르지만 길거리 떡볶이 노점상, 영세 자영업자들에게까지 현금거래에 대한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복지와 상충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된다. 간이과세 부가가치율 인상에 대해 민주당이 반발하는 것도 애꿎은 데서 세수를 쥐어짜는 꼴이기 때문이다. 정작 지하경제의 큰 규모는 국외에서 상속을 한다든지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거래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세 인프라를 넓히기 위해서는 납세자들의 자발적인 의식이 중요하다”며 “조세행정이 과도하게 촘촘해지면 납세자들의 자발성이 위축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조세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심 정책을 남발하기에 앞서 지하경제를 어떻게 지상으로 끌어낼 것인지, 그 경우 세수는 얼마나 늘어나는지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