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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COVER STORY | 지하경제, 그것이 궁금하다2


2. ‘지하세계’의 온상
국가경제 교란시키는 공공의 적
규모 줄지 않고 수법도 갈수록 지능화해 적발 어려워


▲지난해 11월 서울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투쟁 결의대회’가 열렸다

누구든 세금 많이 내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다. 밝은 곳으로 드러난 돈은 국가에 세금으로 뜯기기 마련이니 어두컴컴한 지하세계에서 배를 불리고자 하는 것이 돈의 천성이다. 웬만한 자극에도 꿈쩍 않는 검은돈을 양지로 끌어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상책인데 벌써부터 의견이 분분하다. 광범위한 지하경제의 온상을 들여다본다.

가짜석유
연간 탈루세액 3조7,000억원
박근혜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을 위한 타깃 1호로 가짜석유가 거론되고 있다. 가짜석유는 그동안 주유소, 길거리 간이판매점 등을 중심으로 수십년간 유통되면서 탈세의 근원으로 지목돼 왔다. 차량용 에너지인 휘발유와 경유의 경우 세금이 제품가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가짜석유는 휘발성이 높은데다 폭발력도 강해 위험하다. 2011년 9월에는 수원과 화성의 주유소가 가짜석유를 팔다가 폭발하기도 했다.
한국석유관리원은 경찰과 함께 지난해 9월, 시가 1조597억원 상당의 국내 최대 가짜석유 판매일당을 검거했다. 이들은 2009년 10월 자금관리·원료공급·송책·불법유통책 등 역할을 분담한 유통망을 조직하고 유령법인을 설립해 용제 3억2,700만ℓ를 매입한 뒤 인적이 드믄 야산·폐공장·고속도로 갓길 등지에서 2년간 가짜 휘발유와 경유를 제조하고 유통시켰다. 가짜 휘발유는 철깡통에 나눠 ℓ당 1,400원 가량으로 정상 휘발유 값보다 약 30% 저렴한 가격에 페인트 가게나 길거리 등에서 유통시켰고, 경유는 주유소에 팔아넘겼다. 이들은 진짜석유에 벤젠, 톨루엔 등을 섞어 차익을 남긴 뒤, 차익에 대한 소득신고를 하지 않았다.
산업연구원의 ‘가짜석유시장 규모 및 탈루세액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가짜석유로 인한 탈세 규모는 지난 2004년 1조5,555억원에서 이듬해엔 2조원까지 치솟았다. 2011년 세금 탈루액은 1조 727억원으로 추산됐다. 가짜석유 유통규모만 연 5조원, 가짜석유 유통으로 적발되는 주유소 등의 업소는 연 1,000여 개를 웃도 는 실정이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국내에 유통된 휘발유와 경유 제품의 20%가 유사제품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의 각각 6%, 2%가 가짜석유로 유통돼 이로 인한 연간 탈루세액이 3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연간 유류세의 약 15% 규모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석유관리원을 통해 주유소의 유류 매입-매출현황을 1일 단위로 보고하는 석유수급 전산화를 추진하고, 한국석유관리원과 국세청 등 과세 및 감시당국의 연합활동도 적극 장려할 계획이다. 국세청은 최근 가짜석유 전담반을 신설했고, 경찰 역시 가짜석유에 대한 단속·수사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석유관리원은 가짜석유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역외탈세
830조 해외 이전… 세계 세 번째 규모
스위스 비밀 계좌를 통해 세금을 포탈한 뉴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외 탈세는 해외의 조세피난처들을 이용해 탈세하는 행위로, 세금 탈루를 넘어 국부를 해외로 빼돌리는 악질적 조세 포탈행위다. 또한 대다수의 성실한 납세자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를 교란시켜 법적으로도 중형으로 다스려진다.
지난 2월 국세청으로부터 9,000억원의 세금을 역외 탈루한 혐의로 사상 최대의 추징금 4,101억원을 부과받은 권혁 시도상선 회장이 징역 4년 및 벌금 2,34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100여척의 선박을 해외에서 운용해오던 권 회장은 국내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면서 탈세 목적으로 조세피난처에 거주하는 것처럼 위장해 2,200여억원을 탈세한 혐의로 2011년 10월 불구속 기소됐었다.
일부 기업이나 부유층은 탈세나 재산도피를 위해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이곳을 통해 실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거나, 낮은 세금을 내곤 한다. 재벌닷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제 핫머니의 조세피난처로 지목한 국가나 지역에 국내 30대 재벌그룹이 설립한 해외법인이 47개사에 이른다.
영국 의회 기구로 출범해 국제적인 비정부기구로 활동 중인 ‘조세정의네트워크’는 1970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에서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규모가 약 7,790억달러(약 830조원)로 추정했다. 이는 중국(1조1,890억달러), 러시아(7,980억달러)에 이어 세계 세번째 규모다.
최근에는 인터넷 발달로 기업들의 역외탈세 규모가 급증하고, 수법도 지능화되고 있다. 실제 세계 최고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애플의 경우 2011년 368억달러의 수익 중 7억1,300만달러를 세금으로 냈다. 이는 세율이 2%에도 미치지 않는 것이다. 애플은 해외 수익을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와 네덜란드 자회사들을 거쳐 카리브 해역으로 돌리는 수법을 썼다.
국세청이 비공식적으로 추정한 우리나라의 해외유출 자산 규모는 2,000억~3,000억달러(약 210조~317조원)다. 국세청은 스위스 국세청과 국가 간 공조를 강화하는 등 역외탈세 근절을 위해 전방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올해부터는 10억원 이상 해외계좌를 가지고 있는 개인과 법인은 해외금융계좌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도 가능해졌다.



사행산업
중독성 강한 인터넷 도박 매출 연 32조
2005~2006년 대한민국 전역에 도박 광풍을 일으킨 ‘바다이야기’. 일본의 파칭코 게임인 우미모노가타리 시리즈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아케이드 게임 ‘바다이야기’는 2005년 등장해 1년여간 게임기가 4만5,000여대나 팔려나갔다. 그 중독성과 사행성 때문에 게임기를 만들고 유통한 관계자는 사행행위 규제 위반의 혐의로 구속했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인터넷 도박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업주들은 일반주택에서 컴퓨터를 설치해놓고 사설경마장을 운영하거나, 인터넷 사이트 광고를 통해 가맹점과 손님을 모으고 있다. 인터넷 도박은 친근한 컴퓨터를 통해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얽힐 수 있어 직장인, 주부, 학생 등 평범한 사람들이 중독되기 쉽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행위)에 따르면 2012년 6월기준 도박중독 유병률은 7.2%다. 국내 성인 중 260만명이 도박에 중독돼 있다. 이 같은 국내 유병률은 핀란드(3.7%), 싱가폴(2.6%), 영국(2.5%), 프랑스(1.3%), 호주(2.4%) 등과 비교할 때 크게 높다.
인터넷 도박, 사설경마, 경륜·경정·카지노, 사행성게임장 등 불법 사행산업 매출액은 추정하기 어렵다. 지난 2008년 사행 위에서 발표한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에 따르면 불법 사행산업 매출액 추정치는 재정경제부 64조원, 국가정보원 88조원, 한국레저산업연구소 21조6,000억~28조8,000억원, 아주대산학협력단 53조원 등으로 제각각이다. 이중 아주대산학협력단은 불법 사행산업 53조원 중 인터넷 도박이 32조원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터넷 도박은 중국, 베트남 등 해외에 서버를 설치하고 도메인 주소나 사무실을 수시로 바꾸는 수법으로 경찰을 따돌리고 있어 단속이 어렵다.
이상엽 한서대 행정학과 교수는 “효과적인 단속과 정책을 통해 불법 사행영업의 20%정도(국가정보원 추산치 88억원의 20%)만 축소돼도 2011년 기준 합법 사행산업 규모 18조원과 맞먹는 수준”이라며 “합법 사행산업 감독은 소관부처에 맡기고 사행위는 불법 사행행위 단속 전담기구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부당거래
고소득 자영업자 세금 탈루율 37%

불법 사금융은 이자를 무제한으로 뜯어내는 등 불법적인 돈이 거래되는 것이다. 경찰이 지하경제 범죄로 꼽는 불법 사금융 유형은 불법대부업과 불법채권추심, 대출사기 등이다. 불법 사금융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2010년 2,375건이었던 불법대부업 검거는 2011년 3,921건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5,987건으로 증가했다. 불법채권추심은 2010년 144건, 2011년 154건에서 지난해에는 769
건으로 전년 대비 5배가량 늘었다.
경찰은 올해 역시 가계대출 잔액 증가세와 주택가격 하락세 등의 경제 악조건 속에서 채무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민계층은 대출사기나 불법채권 추심 등의 서민생활 침해형 금융범죄에 노출될 것으
로 보고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접대비 카드깡, 술값 세금 탈루 등 유흥업소의 부당거래도 지하 경제의 온상이다. 법인카드나 개인카드의 경우 유흥주점에서 술을 먹고 횟집이나 고깃집 등으로 등록된 가맹점 단말기로 카드 결제를 하는 접대비 카드깡은 카드깡 전문업자가 수수료 15%를 떼 간다. 이 과정에서 탈세가 이루어진다. 또한 특정 유흥업소에서는 술값에 개별소비세, 부가 가치세 등이 더해져 세금으로 28~30%를 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외상값을 현금으로 받아 직원 명의 계좌에 넣고, 봉사료를 허위로 계상하는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60억원 탈루한 룸살롱 업주가 적발되기도 했다. 스크린골프장, 노래연습장 등에서 세금계산서 없이 몰래 유통되는 무자료 주류도 탈세의 대상이다.
또,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행위도 대표적 지하경제다. 변호사들의 수임료에 대한 과세는 현실화되지 않고 있고, 의사들은 제약업체 임직원들로부터 불법 리베이트를 관행처럼 받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전국의 병원 및 의원의사 266명에게 2년여 동안 45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업체 임직원이 적발됐다. 또한 성형외과, 치과 등 일부 병원 의사들은 현금 할인, 진료 과목 쪼개기, 약 자체 제조 등의 행위로 세금을 탈루하고 있다.
2011년 세무조사대상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의 소득 탈루율은 각각 36.9%와 9.5%로 나타났다. 세무조사비율은 개인사업자가 0.1%, 법인사업자가 1%로 낮은 상황이다. 고소득 자영업자와 법인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주노동자의 노동, 영세 자영업자의 현금거래 등은 지하경제의 영역에 속하지만 과세 당국이 단속하면 영세 자영업자는 폐업한다”며 “지하경제 양성화는 고소득층을 상대로 증세를 실시하고, 차명 계좌 등의 지하경제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nside

지하경제의 천국(?) 그리스
만연한 뇌물과 탈세가 재정위기 부추겨

 

‘파켈라키(fakelaki)’.
‘작은 봉투’라는 그리스어로 촌지를 뜻한다.
부패한 그리스를 대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파켈라키다.
그리스에서는 운전면허를 따려고 해도 운전 강사와 시험 감독관에게 줄 돈 봉투 두 개를 들고 가야 한다. 아이가 무릎을 다쳐 병원에 갈 때도 의사에게 줄 돈 봉투가 필요하다.
계약을 체결하거나 일 처리를 빨리하기 위해 돈 봉투를 주는 것이 그리스에서는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0월에는 뇌물과 탈세를 신고하는 ‘에도사파켈라키(나는 뇌물을 주었습니다)’라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개설됐다. 사이트 개설 3개월 만에 익명으로 돈 봉투를 고발하는 1,200여건이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 등장하는 뇌물 액수를 모두 합하면 431만3,000유로(약 61억원)에 달한다.
또한 파켈라키를 으레 주고받던 정치인과 공무원, 변호사와
의사 등 사회 지도층 2,000여명은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사전에 감지, 스위스 은행으로 재산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나 그리스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하경제 전문가인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오스트리아 린츠대 교수는 “그리스 국내 총생산의 약 65%인 약 1,200억유로의 그리스 자산이 그리스 국외에 있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테네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09년 그리스 재정적자 360억유로 중 2/3가 탈세로 인한 것이다. 세계투명성기구(TI)의 2012년 ‘부패 인식 지수’ 조사에서 그리스는 세계 176개국 중 94위로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로 평가됐다.
탈세가 만연하다 보니 그리스 지하경제 규모는 심각한 수준이다. 슈나이더 교수에 따르면 그리스의 지하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의 27.5%를 차지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하경제와 탈세를 양성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심각한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뒤늦게 지하경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1년간 중산층은 강도 높은 긴축으로 재정위기에 대한 고통분담을 한 반면, 부유층은 조직적으로 탈세를 저지르는 등 서민들을 분노케 한데 따른 것이다.
그리스 정부는 우선, 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는 이른바 ‘라가르드 리스트’에 대해 치솟은 국민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 3년간 해외에 송금한 54만명의 마스터 리스트에서 1만5,000명을 골라내 재무상태와 함께 송금액이 소득신고액을 초과하는 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1만5,000명이 송금한 금액은 50억달러로 추정.
또한 그리스 정부는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 상거래시 영수증 의무화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식당, 병원, 로펌, 택시 등 모든 사업장에서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는 이용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등 새로운 규제안을 마련했다.
그리스 정부는 최근 대기업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탈세 조사는 물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까지 탈세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그동안 그림자에 가려졌던 모든 경제활동을 파악해 세수를 확보, 국가재정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박형수 한국조세연구원 연구기획본부장은 “높은 수준의 복지를 계속 유지하려면 높은 세금 부담이 필수”라며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데 실패하면서 복지 지출을 뒷받침할 세수 확보에도 실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