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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COVER STORY | 지하경제, 그것이 궁금하다 3

기고 l 지하경제 양성화의 방향
증세 없는 세수 확보는 코미디
박근혜 정부 스타일의 증세에 대해 국민 양해 구해야



 


▲2011년 4월 김제 마늘밭에서 불법도박 사이트를 통해 번 검은돈 110억원이 발견됐다.

“저는 개그맨인데요. 웃기는 것 빼고는 다 잘 합니다”.
개그맨 정형돈이 즐겨하는 유머다.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개그맨의 본업인데, 그것만 못한다니 말이 안된다. 그래서 웃긴다. 이처럼 언뜻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어보면 뜻이 안 통하는 표현들을 모순어법이라 칭한다.

증세 없는 세수 확대는 모순 어법
그런데 코미디도 아닌 모순 어법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서 사용되고 있다. “증세 없는 세수 확대”가 그것이다. 증세는 세금을 안올리겠다는 말이며, 세수 확대는 세금을 더 거두겠다는 말이다. 정확히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어 “증세 없는 세수 확대”는 모순 어법 그 자체다. 증세는 없다면서 세금은 더 거두겠다니…. 재치 있는 개그맨이라면 얼마든지 코미디의 소재로 삼을 만한 일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왜 그런 말을 쓰게 되었는지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후보가 모두 복지의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재원조달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 문재인 후보는 증세를 주장한 반면 박근혜 후보는 증세를 안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후보의 차이점은 세율 인상 여부였다. 세율을 인상하려면 세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문재인 후보는 세법 개정으로 세율을 높이겠다는 것이었고, 박근혜 후보는 세율인상을 하지 않고 행정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늘어나는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말이었다.

종합과세 대상 확대 높은 세율 부담
그런데 문제는 증세가 없다는 말이 국민들의 잘못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증세가 없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십중팔구 세금을 더 걷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겠는가. 선거 당시에는 어떤 뜻으로 증세라는 말이 쓰였던 간에 일반 국민에게 증세는 세금을 더 걷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그런데 증세가 없다고 했으니 세금을 더 내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충족될 수 없다. 비과세 감면의 축소, 지하 경제 양성화 등 박근혜 후보의 세수 확보 방법에는 세율 인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방법들이 망라돼 있다.
지난 12월 국회는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대상을 4,000만원이상에서 2,000만원 이상으로 확대했다. 종합과세의 대상이 되면 분리과세일 때보다 높은 세율을 부담하게 된다. 그 대상이 4,000만원 이상에서 2,000만원 이상으로 변경되었으니 이자 소득이나 주식배당 받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것이다. 아마도 금융 자산이 5억원 정도면 금융 소득이 2,000만원이 될 수 있으니 만큼 큰 부자가 아닌 노인
가구들이 추가적인 세금을 부담하게 됐다. 이것은 명백한 증세다. 이런 것을 증세가 아니라고 한다면 마치 버스 요금 인상은 안하겠지만 버스 회사의 요금 수입은 늘리겠다는 말 만큼이나 모순 어법이다.

지하경제도 세금내야 하는 거래
비과세 감면의 축소도 추가적 세수 확보의 수단으로 제안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국민의 입장에서는 증세일 수밖에 없다. 비과세 감면의 규모는 30조원인데 각각의 비과세 감면을 받는 사람이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사라질 경우 세금 부담이 엄청나게 늘게 된다. 인수위 등에서는 대기업과 부자들에 대해서만 비과세 감면을 축소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세수 증가 금액이 적을 것이고, 많은 추가 세수를 확보하려면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한 비과세 감면도 축소해야 할 것이다.
지하경제의 양성화도 증세 없는 세수 확대의 중요한 수단이다. 지하경제란 마땅히 세금을 내야 할 대상인데 그 동안 세금을 내지 않아온 모든 거래를 말한다. 조폭이나 불법 외화반출 같이 먼 나라의 이야기 같은 것도 있지만 정말 큰 지하경제는 바로 우리들 속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하게 추진된다면 다른 어떤 방법보다 증세의 효과가 크겠지만, 동시에 국민들에게 충격도 클 것이다. 지하경제의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또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기가 지하경제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스스로 인식치 못했던 지하 거래
독일 요하네스케플러 대학의 슈나이더 교수와 유트레히트 대학의 부엔 교수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의 국내 총생산(GDP)에 대한 지하경제의 비중은 24.7%로 추정되었다. 한국 내 전체 거래와 소득의 1/4이 지하경제에 속한 셈이다. 우리는 지하경제라 하면 고소득자영업자나 조폭, 호화 술집 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실상은 국민들 대부분이 거기에 참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지하경제의 가장 큰 부분은 우리 스스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거래들이다. 고소득 자영업자니 불법 외화 반출이니 하는 것들은 하나 하나의 규모는 크지만 건수가 많지 않아 그리 대단한 규모가 아니다. 또 그런 것들은 그 동안 꾸준히 세무당국의 감시를 받아왔기 때문에 추가로 더 밝혀낼 여지도 크지 않다. 양성화가 필요한 지하경제는 조세 당국도 눈을 감아 왔고, 국민 대부분이 세금 내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부문이라고 봐야 한다.
가장 흔한 것이 자녀에게 주는 결혼자금이다. 부모 자식 간이라 해도 10년간 3,000만원 이상을 증여하면 10~50%까지의 증여세를 내야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자식 결혼시키며 전세자금 대줬다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증여세 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1억원만 줬 어도 1,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 말이다..

결혼자금도 지하경제의 큰 부분
결혼 자금과 사전 상속을 위한 부모 자식 간의 재산 이전은 한국 지하경제의 매우 큰 부분을 이룬다. 필자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전세자금을 받았을 때 증여세를 내지 않았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부분들이 지하경제 양성화의 중요한 일부분이 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서 국민들의 세 부담은 급격히 늘게
될 것이다.
그것 말고도 또 큰 지하경제는 재래시장, 노래방, 음식점처럼 현금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는 곳들이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스, 멕시코, 스페인 등 지하경제의 규모가 큰 나라들은 대부분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다.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신용 카드 거래를 하지 않고, 그로 인해 국세청에 거래와 소득금액이 보고되지 않아 세금 탈루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지하경제의 양성화는 자영업 부문의 양성화를 필요로 하며 특히 재래시장처럼 신용카드 거래를 많이 하지 않는 상인들의 세금부담을 급격히 늘리게 될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들 세 부담 늘어날지도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세수 확보를 목적으로 지하경제를 양성화 한다는 것은 중산층과 서민들의 가족 간 거래에 대한 세금과 자영업자의 세 부담을 늘리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세율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충격이 큰 증세 정책이 될 것이다. 세법을 법대로 집행하는 일은 꼭 해야 할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부과하지 않았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인 만큼 국민의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세수확대를 약속함으로써 국민들에게 고통 없이도 복지재원 마련이 가능하다는 착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비과세 감면 축소이든, 지하경제의 양성화이든 국민의 세 부담을 늘린다는 면에서는 증세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런 정책들이 박근혜 정부 스타일의 증세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늘어난 납세고지서를 받아든 국민들이 실망과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