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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COVER STORY | 說說 끓는 창조경제1

 



어느날 갑자기 대한민국에 뚝 떨어진 말이 있다. ‘창조경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이 말의 해석을 두고 끝없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학자, 경제인, 기업인, 각 기관단체까지 나서 박근혜 정부가 주창한 창조경제의 본뜻 찾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답을 내놓고 있지는 못하다. 창조경제와 관련한 세간의 논의와 개념, 그리고 세계 각국의 창조경제 모델 등에 대해 살펴본다.

■ 글 l 이신덕 기자


왜 창조경제인가?
성장 한계 극복 위한 새로운 전략
나라별 처한 환경·강점 따라 해석 달라… 창조역량·인프라 키워야 성공 가능

 

 

으레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정의 핵심 목표가 있게 마련이다. 노무현 정부가 ‘혁신’을,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강조했듯, 새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의 핵심철학은 ‘창조경제’ 다. 문제는 이전 정부의 국정철학이 비교적 명료했던 것에 비해, 창조경제는 그 의미가 모호하고,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창조경제가 지금까지 회자되던 창조경제와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창조경제를 놓고 정·관·계는 물론 학계까지 나서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창조경제 전성시대
사정이 이렇다보니 창조경제란 말은 모든 정책의 접두사가 됐다. 새 정부 들어서고 각 부처에서 업무보고를 할 때마다 창조경제는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 다녔다. 외교부는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신흥경제권 관련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보고했고, 통일부는 ‘해외시장을 확대해 창조경제에 기여하겠다’고 보고했다. 또 국방부는 ‘창조경제 핵심 동력 육성을 위해 무인·로봇·센서·유도기술 등을 활용한 신무기 체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인재 육성’을,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식품 산업의 창조경제 접목’을, 문화관광체육부는 ‘문화로 창조경제를 이끌겠다’고 보고하는 등 정부부처 업무보고장은 창조경제로 넘쳐났다.
창조경제 뿐 아니라 창조관광, 창조인재, 창조직업, 창조국가 등등 창조와 업무 영역을 결합한 신조어들까지 대거 등장해, 연초부터 온 나라가 창조로 들썩였다.
창조경제와 관련한 주문과 해석도 다양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창조경제는 경제운영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는 하나의 변화”라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는 하나의 산업 자체를 육성했다면 지금은 산업 간 융합, 민간과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융합이 강조된 측면이 강하다”며 “창조 경제는 공정경쟁으로 정부주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창조경제가 상상력과 창의력을 산업화하는 것이라면 창조금융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이라며 “금융위가 이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국정운영 과학기술 중심으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대해 여러 담론들이 있지만, 가장 정확하게 꿰고 있는 사람은 박근혜 정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다.
김 원장은 지난 3월 26일 한국경제연구원 포럼에서 “창조경제는 창조력, 응용력, 실천력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중소·벤처기업의 창업이 활성화되고, 중소·대기업 간 상생구조가 정착되어 일자리 창출형 성장이 선순환 되는 경제”라고 정의했다. 그는 “여기서 창조력이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이며, 응용력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존 아이디어에 기술을 융·복합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둘만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므로 이 기술을 생산해내는 실천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4월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창조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의 2014년 정부연구개발 투자방향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상목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은 논란을 겪고 있는 창조경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개념정리부터 설명했다. 이 차관은 “대통령께서 창조경제 개념에 대해 쉽게 정리해주셨다”며 “창조경제는 학문적 이론으로 논의되는 것은 적절치 않고,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 인문적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모아 성장동력을 창출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해왔는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이전과 굉장히 다른 것은 옛날에는 경제부가 주도했다면, 이제는 미래부가 담당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며 “과학기술 중심으로 국정운영 기조가 바뀐 것”이라고 밝혔다.

융합 터전 위에 새 시장 만드는 것
창조경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해 9월 28일 대구에서다. 당시 대구를 방문했던 박근혜 후보자에게 기자들이 ‘대구·경북 발전 방안’에 대해 묻자, 그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일자리를 많이 만드느냐에 있다”며 “지금은 창조경제가 필요한 시기”라고 답했다.
본격적으로 창조경제가 공약 전면에 나선 것은 20일 뒤인 10월 18일이었다. 이날 박근혜 후보 캠프는 “창조경제는 미래 경제를 이끌어 갈 새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이라며 성장과 일자리 정책의 핵심공약으로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지난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박 대통령은 가장 먼저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라며 “기존의 시장을 단순히 확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융합의 터전 위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창조경제의 중심에는 제가 핵심적인 가치를 두고 있는 과학기술과 IT산업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정핵심 과제로 등장한 창조경제는 그 의미와 방향, 그리고 방법론에서 숱한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또 기존의 창조경제론과 겹치면서 많은 혼란과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기관·나라별 ‘창조경제’해법 달라
창조경제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1년 영국의 경제학자 존 호킨스가 쓴 <창조경제(The Creative Economy)>에서다. 그는 이 책에서 창조경제를 창조 생산품의 거래로 설명했다. 그가 말한 창조 생산품은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과 같은 소비자들의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창조 상품과 창조 서비스다. 그리고 2007년 발행한 증보판에서 창조산업을 연구개발, 출판, 소프트웨어, 방송, 산업디자인, 영화, 음악, 완구류, 광고, 공연예술, 건축, 공예, 비디오 게임, 패션, 미술 등으로 규정했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지난 2008년과 2010년 발표한 <창조경제 보고서(The Creative Economy Report)>는 창조경제를 ‘사회적 통합, 문화 다양성, 인간개발을 촉진시키면서 소득과 고용창출 및 수출을 증가시키는 경제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창조산업을 들었다.
UNCTAD가 말하는 창조산업은 창조성, 문화, 경제, 기술의 접점으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과 동시에 사회 통합, 문화의 다양성, 인간 개발을 촉진시키며 지적 자산을 창조하고 순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산업이다.
세계지적재산권협회(WIPO)는 개인의 창조성, 기술, 재능에 기반을 둔 산업들과 지식재산형성과 이용으로 경제적 가치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산업들로 창조산업을 정의하고 있다.
일본의 노무라종합연구소(NRI)는 가격이 아니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창조성에 의해 시장으로부터 선택되는 제품과 서비스로 창조산업을 정의하면서 패션, 식품, 콘텐츠, 지역산품, 주거, 관광, 광고, 예술, 디자인 등 9개 분야를 들었다.

아이디어·상상력이 핵심 투입요소
현대경제연구소는 지난 3월 발표한 <창조경제의 의미와 새 정부의 실현 전략> 보고서에서 ‘협의 측면에서 창조경제는 창조 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성장을 중시하는 것’이고 ‘광의 측면에서 창조경제는 비수렴(비혁신) 함정론, 내연적 성장론, 경제발전단계론에서 제기하는 경제 전반의 성장 능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성장 체제 또는 패러다임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창조경제에 대한 논의는 주로 문화 콘텐츠 등과 같은 지식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런 전략을 구사한 나라들은 꽤 큰 성과를 얻었다. UNCTAD는 창조산업이 청년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창조경제와 창조산업의 분류에 대해 나라마다, 기관마다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원론적인 개념과 틀은 정의가 가능하지만, 적용에 있어서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책기획실장은 지난 4월 8일 경기개발연구원에서의 강연에서 “창조경제의 핵심인 창조산업은 핵심 투입요소가 아이디어 및 상상력으로 ‘창조’의 정의 등에 따라 상이한 것이 특징”이라며 “국가별 산업, 경제,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른 누적 자산과 강한 분야, 국제기구 별 고유임무에 따라 범위가 상이한 것이 특징이어서 국가별 절대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다른 나라의 창조경제와 중심전략이 다르다. 앞서 살펴 본대로 대부분의 국가가 문화예술과 콘텐츠 등을 중심으로 한 창조경제라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취임사에서 밝힌 바대로 과학기술과 ICT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좀 더 포괄적이고 접근 방식도 다르다. 지금의 논란 원인의 일부가 여기에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단기 효과 보다 장기전략 필요
창조경제로의 전환은 시대적 요청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지금 성장의 한계란 문제에 봉착해있다. 여기에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와 맞물려 기존의 산업과 경제구조로는 더 이상의 성장을 추구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창조산업 육성을 통한 창조경제론의 등장배경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장은 “대부분 국가들은 노동집약적 산업에 대한 대량 노동 투입을 통한 요소투입형 성장(단순가공 경제 체제)을 통해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해, 중화학공업에 의한 대량 자본을 투자하는 투자주도형(모방형 경제체제) 성장에 의해 중진국 수준까지 도달한다”며 “이후 선진국 경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체 기술혁신력을 바탕으로 한 제품과 서비스의 고부가가치 창출형(혁신창조형 경제체제) 성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창조경제는 정책으로 밀고, 주창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창조경제의 근본은 사람이다. 창조력을 지닌 사람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어야 창조경제를 꽃피울 수 있다. 즉 단기가 아닌 장기 전략이 필요하고, 즉시 효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지난 4월 2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창조경제는 장기 비전이기 때문에 망원경을 길게 빼서 가까이서 보면 좀 알 수 있는데 멀리서 보면 좀 애매한 요소가 있다”며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경제적 가치를 실현해야만 창조경제 전체의 흐름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적어도 2~3년은 걸리기 때문에 길게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창조역량 OECD 하위권
최근 우리나라의 창조경제 역량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조사들이 발표됐다. 하나는 지난 3월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한국의 창조경제역량지수 개발과 평가> 보고서. 여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창조경제역량지수(2011년 기준)는 ICT 자본과 혁신자본이 OECD 31개국 평균에 비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으나, 타 자본이 중하위권 수준에 머물러 종합 20위로 평가됐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ICT 자본이 8.6, 혁신자본이 5.4로 OECD 31개국 평균 6.9, 4.9 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인적자본 6.5, 문화자본 3.7, 사회적 자본 6.7로, OECD 평균 7.3, 4.7, 7.5에 미치지 못해 전체 순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서 창조역량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스위스(7.5), 스웨덴(7.2), 노르웨이(7.1), 덴마크(7.0), 핀란드(7.0) 등 순으로 나타났으며, 미국은 6.9로 7위, 영국은 6.6으로 13위, 일본은 6.5로 15위였다. 가장 순위가 낮은 나라는 멕시코로 4.7이었다. 또 다른 조사는 4월 15일 동아일보가 발표한 동아·베인 창조경제지수(DBCE지수)다. 이 조사는 OECD 34개국과 중국을 포함한 35개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아이디어 창출 31위, 아이디어 사업화 19위, 사업 확장 14위, 성공 선순환 28위 등으로 종합 25위를 차지했다. 국가별 순위를 보면 미국 1위, 캐나다 2위, 영국 3위, 스웨덴 4위 등이었다. 중국은 우리나라 보다 높은 22위였다. 적어도 창조경제를 외치는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의 창조성은 그리 창조적이지 않다는 결론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