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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Issue and Trend | 복권의 경제학

복권의 경제학
대박 꿈꾸지만 카지노보다 환급률 낮아
'고통없는 세금' 한 해 3조 매출…1인 평균 매년 6만원 정도 구입

 

 


“돼지꿈 꿨으니깐 복권 사야지.”
길몽을 꾸거나 길에서 돈을 줍 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 복권 방이다. 최근 경제 불황과 갈수록 심화되 는 양극화까지 겹치며 ‘합법적 사행산업’ 인 복권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와 전셋값 등 팍팍한 현실 속에서 서민들은 일주일에 한번, 복권을 통해 ‘인생 역전’ 대박의 꿈 을 꾸고 있다.

복권은 일종의 간접세
복권의 사전적 정의는 ‘제비를 뽑아서 맞 으면 일정한 상금을 타게 되는 표’다.
복권위원회는 이를 ‘일정한 사행심을 전 제로 국민에게 건전한 오락기능을 제공하 고, 복권판매에 따른 재원은 공익적 사업 에 활용해 국민 복리 증진에 기여하는 제 도’라고 정의한다.
‘한탕’을 노리는 국민의 도박 심리를 정 부의 통제 가능한 영역에 묶어두며, 그 들로부터 거둬들인 재원 중 일부는 특정 인에 몰아주고 나머지는 공적인 영역에 활용하는 간접적인 세금 제도가 복권인 셈이다.
복권을 사는 개인으로서는 도박보다는 적은 위험으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정부 로서도 불법의 가능성은 줄이며 손쉽게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뜻 보 면 ‘윈윈’의 공생관계가 형성된다. 지난 해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1억분의1이 넘 는 바늘구멍 확률을 뚫고 2,000억원이 넘는 횡재를 한 사례가 있었고 우리나라 에서도 최대 407억원의 행운을 거머쥐었 다는 사실은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박의 미련에 서민들은 없는 돈 을 쪼개 매년 평균 6만원 정도의 복권을 사고 있다.

1등 당첨 ‘벼락 맞을 확률’
복권을 사는 이들이 내심 가장 기대하는 것은 역시 ‘인생역전’ 대박이다. 그러나 이 런 기대를 품을 만큼 고액 당첨금을 내건 복권은 모두 1등 당첨 확률이 수백만∼수 천만분의 1이다.
주식로또 6/49 종목선택 게임의 1등 당 첨 확률은 1,398만3,816분의 1, 나눔로또 6/45의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또 연금복권520(1등 월 500만원 240개월 지급)은 315만분의 1, 스피또 2000(1등 10억원)은 500만분의 1에 불과 하다. 사람들이 흔히 복권 당첨 확률을 ‘벼락 맞을 확률’에 비유하는 이유다.
물론 복권 중 1등 확률이 꽤 높은 것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모두 당첨금이 소액 이어서 ‘인생역전 대박’은 불가능하다.
스피드키노 복권 중 픽2 게임은 1등 확 률이 10.45분의 1, 즉 9.57%나 되지만 상 금은 6,000원에 불과하다. 1등 확률이 1,000분의 1, 즉 0.1%를 넘는 복권으로는 스피드키노의 픽3(1등 1만원, 확률 35.55 분의 1), 픽4(1등 1만6,000원, 확률 125.34분의 1), 픽5(1등 5만5,000원, 확 률 456.6분의 1)가 있다.
특히 복권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관할하는 합법 사행산업 중에서 가장 환급 률이 낮다. 경마는 73%, 경륜·경정은 72%, 내국인 카지노는 82∼83%, 스포츠 토토·프로토(체육진흥투표권)는 50∼70% 수준이다. 다만 이들은 행위자의 실력, 경 험, 안목 등도 승패에 영향을 주므로 복권 처럼 철저한 확률 게임은 아니고, 또 경마,경륜·경정, 카지노는 한 자리에서 연속해서 여러 차례 게임을 할 수 있어 참가자들이 더 많은 돈을 쓰게 될 가능성이 있다.



작년 복권 판매액 3조원 넘어
그렇다면 복권 판매액은 어느 정도일까?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 복권 판매액은 3조1,853억5,400만원에 달한다. 이 중 당첨금은 판매액의 절반을 조금 넘는 1조6,234억2,900만원이다. 사업비를 제외한 순수익금만 1조2,754억8,800만원에 이르는 등 복권이야말로 정부에게 안정적인 동시에 고수익을 안겨 주는 수익률 좋은 ‘로또’이다.
문제는 정부에게는 고수익을 가져다주는 이 복권이 서민들에게는 하면 할수록 손해가 커지는, ‘신기루에 가까운 헛 희망’이라는 점이다. 수학적으로 복권 당첨금의 ‘기대값’은 구입 가격보다 낮다. 복권 당첨금의 기대값은 등위별 당첨금과 해당 등위의 당첨 확률을 곱한 뒤 모든 등위에 대해 이 곱을 더해서 얻는 값이며, 이는 당첨금 총액을 복권 판매량으로 나눈 것과 똑같다.
이는 상식적으로 말하면 복권을 구입한 사람이 받는 당첨금의 확률상 평균값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매되는 복권의 경우 당첨금 기대값은 복권 구입 가격의 50.0∼64.8%다. 1,000원짜리 복권을 사면 당첨 기대값이 500∼648원이라는 얘기. 이는 복권 한 장을 사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352∼500원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이것은 세금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어서 평균 실제 손해는 더 크다. 당첨금이 5만원 초과 3억원 이하라면 이 중 22%(소득세 20%, 주민세 2%)를 세금으로 내야 하고, 당첨금이 3억원을 초과하면 세율이 33%(소득세 30%, 주민세 3%)여서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더욱 줄어든다.

복권수익 어떻게 쓰이나
복권 같은 합법적인 사행산업을 통해 정부가 막대한 재원을 벌어들이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정부 입장에서 세금을 거두려고 하면 납세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복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제3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이런 의미에서 복권을 ‘고통 없는 세금’이자 ‘이상적 재정 수단’이라고 봤다. 하지만 복권의 단점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기 때문에 소득 역진성이 심하다는 것이다. 겉보기엔 ‘윈윈’이지만 알고 보면 ‘서민 등치기’라고도 볼 수 있다.
사행 심리를 이용해 가난한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 때문에 정부는 복권 수익금으로 조성된 복권기금의 35%를 법정배분사업, 65%는 공익사업으로 각각 나눠, 대부분 저소득층을 위해 쓰고 있다고 해명한다.
지난해의 경우 서민주거안정사업(4,880억5,000만원), 취약계층지원사업(2,850억5200만원), 보훈복지사업(155억4,500만원), 문화나눔사업(574억원), 재해예방사업(4억원) 등 공익지원사업에 모두 8,464억4,700만원이 쓰였다.
또 출산장려사업, 저소득층자녀지원 등 지방자치단체지원(735억4,900만원)과 과학기술진흥기금(549억3,000만원) 등 법정배분사업에는 4,259억원이 각각 지출됐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소득이 낮을수록 상대적으로 복권 구입이 많은 경향이 있다”며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복권 수익금을 저소득층을 위한 사업에 사용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복권위원회는 국무총리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에 복권의 매출한도를 풀어달라고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새 정부 들어 복지재원 확보에 목말라 있는 기획재정부로선 복권 판매의 걸림돌인 매출총량을 없애고 싶어 하는 게 당연지사. 하지만 사감위는 한도가 매출계획보다 크기 때문에 한도를 풀어봤자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복권위의 요청을 거부한 상황이다.
지난 3월 결정된 복권의 매출한도는 3조3,135억원으로 복권위의 올해 복권 매출계획 규모인 3조2,879억원보다 256억원이 많다. 매출한도는 국가가 사행산업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되, 일정범위 내로 제한하는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복권위는 지난 2009년과 2011년, 2012년 매출총량을 지키지 않았다. 작년에는 한도 초과액이 무려 3,101억원이었다.


이미영 기자 l misaga@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