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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通

힐링 에세이

두고 온 여심(旅心)



굳이 배낭을 메고 구두끈을 조이고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여심은 인생여정 속에 깃들어 있는 격조 높은 낭만이다. 여행이란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역마기의 중심에 있는 DNA 같은 여심(旅心)의 발산이다. 그래서 이 여심은 삶이 있는 한 평생을 동반하여 떠나기를 부추기면 떠나는 나그네 인 생이 되는 것이다.
순간에서 영원까지 시공(時空)을 흐르며 역사를 부조(浮彫)하는 것이 인생이라 한다면 여심은 한강의 갈래 탄천이 큰 강에 유입되면 그 몫을 다하듯 유한한 인간의 여로도 세월에 동화되기까지만 그 이름을 유지할 따름이다. 따라서 인생은 나서부터 평생을 여로인(旅路人)으로 걷다가 세월의 갈피 속에 묻히는 그 시점에서 우리는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느 시인은 인생을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라 노래했다. 해거름에 저녁연 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삼백리길을 여심따라 쫓기듯 걸어가는 나그네의 심정과 삶이 같다는 것이다.
그런 나그네에게 여심을 부추기는 유혹의 초청장이 부지런히 날아온다. 그럴 때마다 역마기가 발동하여 일상의 속박에서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주변과 용기를 지탄하면서 어느 여행길에 올랐다가 두고 온 여심을 반추하며 회심(灰心)을 한다.
지방신문사의 도움으로 중국 황산을 계획했다가 갑자기 뒤로 미루고 장강삼협(長江三峽)으로 그 행선지를 바꾸었던 적이 있다. 이유인즉 삼협댐이 완공되면 수몰될 중국 제일의 역사가 숨쉬는 장강의 비경(秘景)을 눈에 담아두자는 의견일치에서였다. 중경에서 시작하는 천리장강, 도도히 흐르고 구비마다 휘어져 막혔나 하면 다시 휘돌아 흐른다. 배는 낭만의 고동을 울리며 마주 오는 유람선을 비키면 더 큰 앞산이 가슴에 바싹 다가와 협곡을 이룬다. 마치 살아 있는 웅장한 중국화의 진본 속에 살고 있는 듯 착각이 든다. 강가 나무 가지에 잔나비들이 분주히 재주를 넘고 있는 여기가 선경이 아니고 어데이랴!
장강삼협의 지류 소삼협(小三峽)은 협곡이 좁아 팔을 펼치면 손이 닿을 듯 아슬아슬하다. 아기자기하기가 필치(筆致) 좋은 화선(畵仙)의 필운(筆運)이 산듯하게 그려 낸 산수화병풍이다. 그 흐르는 샛강에 배를 띄었으니 필자가 그림인지 소삼협이 병풍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치 선경의 운치를 더한다.
어느새 소삼협이 합류하여 천리장강으로 빠져드니 여심도 함께 흐르고, 선상 난간에 기댄 채 흐르는 강심에 빠져 있노라니 어데서 날아왔나 낯익은 노랑나비 한 마리 반기며 옷깃에 앉는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가는 어간이 버거워 잠깐 쉬었다 가려는가? 영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지구 위에 잠깐 쉬어 가는 우리 인생이듯, “어! 나비가…”. 반가워 가슴속에서 외친 소리를 들었는지 잠깐 날개를 폈다 다시 앉는다. 그러나 세월이 우리를 재촉하듯 장강바람은 나비의 갈 길을 흔들어 훅! 불어 날려 보낸다. 아쉬움에 손을 들어 배웅을 하면서도 넓은 강폭이 근심스럽다.
중국의 대 명승지 장가계(張家界)의 아름다운 풍광과 보봉호(寶鳳湖)의 청정한 수경(水景)에도 아! 감탄사를 쏟아 놓았을 뿐 마음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강삼협의 구당협(瞿塘峽) 선상에서 맞은 일출(日出)의 감동은 여심을 빼앗기에 넉넉했다. 이렇게 두고 온 여심을 따라 회상(回想)의 날개를 펴 여행의 유혹을 극복하며 무더운 여름, 신발장에 등산화를 바라본다.

수필가 윤주홍 l inbo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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