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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通

MOVIE &

범죄자의 인권
<더티 해리>, 1971

 

1970년대 초 미국에선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범죄자가 ‘인권’의 이름으로 관대하게 처벌받거나 되레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는 일도 있었다.
물론 보수주의자라면 국가와 법률의 판단을 존중하고 거기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단서가 있다. 그 판단이라는 것이 오히려 국가와 법률의 기틀을 흔들고 혼란시키는 것이라면 마땅히 거부하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보수층은 당시의 사회 풍토 속에서는 국가와 법률의 판단이 이런 단서를 충족시키지 못 한다고 봤다. 돈 시겔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돈 시겔 감독은 이미 1956년 <신체 강탈자들의 침입>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이 미국 내 정치판을 잠식해가는 것을 경계한 바 있다. 이 점에 대해선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감독의 인생 행로를 보면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후 돈 시겔 감독은 15년이 지나 다시 <더티 해리>라는 스타일리쉬한 액션영화를 통해 자신의 보수 성향을 드러낸다.
워낙 유명한 명대사를, 양복에 선글라스, 매그넘을 든 아주 멋진 형사 해리 캘러한(클린트 이스트우드)이 내뱉는 대사가 인상적이라 영화사에서도 길이 남는 명작이 된 이 영화는 그래서 굉장히 논쟁적이다. 일단 줄거리를 보자.
캘러한은 죽을 고비를 거쳐 무차별 연쇄 살인범을 잡아낸다.
하지만 체포 과정에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즉 그 과정에서 얻어낸 증거가 무효라는 이유로 살인범은 유유히 석방된다.
살인범은 다시 살인 행각을 벌이기 시작하고 분노한 캘러한은 결국 그를 현장에서 사살한다.
<더티 해리> 외에도 많은 미국 영화에 위와 같은 법리적 모순이 꽤 나온다. 관객으로서 이런 장면은 화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말이다. 미국은 아무튼 법치주의 국가이고 체포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면 거기에 대해서 피의자에게도 따질 권리가 있는 것은 맞다. 단적으로 말해서 고문으로 얻은 증거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불법 가택 수색을 통해 얻은 증거도 증거가 아닌데, 영화를 보는 사람 입장 혹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막상 경찰이 ‘심증’이 간다고 해서 마구 집을 수색하면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이런 측면에서 돈 시겔 감독의 지적은 그의 보수주의적 입장을 바라볼 때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그 표현 과정에 무리가 있는 것은 맞다. 영화에서 무조건 악당을 대놓고 악당이라 표현해서 그렇지, 현실 세계에서는 그리 명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범죄자의 인권’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인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중요한 것은 입장과 견해에 따라 법이 달리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원칙, 혹은 상위법에 근거하여 법을 지켜가겠다는 굳건한 자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티 해리> 시리즈는 총 5편이 만들어졌는데 대부분 1편의 후광 혹은 해리 캘러한의 캐릭터에 기댄 작품들이다. 그나마 논쟁적 주제를 담은 것은 4편이다. 13년 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피해자가 피의자를 자의로 처벌하는 것의 정당성에 대해 아주 대놓고 논쟁을 걸고 있다.


자유기고가 홍훈표 l exom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