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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通

'뽑기의 달인' 10년 동안 라이터 2000개 수집

뽑기 승률 백전구십승. 1회에 200원 하는 뽑기기구에 1,000원을 투자하면 적어도 4~5개의 아이템을 건져낸다. 이쯤 되면 ‘뽑기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뽑기의 대상은 오직 라이터. 10여년 동안 뽑기를 통해 모은 라이터는 모두 2,000여개에 달한다.


개인택시를 24년째 운행하고 있는 정희석(60) 씨는 평택에서 ‘라이터 수집가’로 유명하다. 그가 ‘뽑기’를 통한 라이터 수집에 나선 것은 2001년. 택시 승강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다 우연히 상점 앞에 놓인 라이터 뽑기 기계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정 씨는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뽑기로 라이터를 수집했다”며 “처음에는 4,000원을 투자해 겨우 하나 뽑았지만 요령이 생기면서 1,000원을 넣으면 4~5개를 건졌다”고 말했다.

택시 운전을 하다 보니 평택과 인근 도시 곳곳을 다니며 취미이자 특기인 뽑기를 활용해 다양한 라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다. 돈도 벌고 취미생활도 즐기고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들이었다.

그는 소장하고 있는 라이터는 각양각색이다. 소설책 크기 만한 지포라이터도 있고, 호랑이, 돼지, 개 등 각종 동물모양의 라이터와 바이올린, 피아노, 오토바이, 권총, 자동차, 미사일, 탱크 등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모양의 이색라이터가 가득하다. 금색으로 도금된 라이터는 번쩍번쩍 빛이 난다. 마치 라이터가 아니라 황금덩이들 같다.

정 씨가 가장 아끼는 것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기념 라이터다. 축구공과 축구화가 마주보고 있는 금색 트로피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라이터는 무게가 꽤 나가 뽑기 기구에서 건져 올리는데 열흘이나 걸렸다. 백전구십승의 명성에 먹칠을 했지만 꼭 뽑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수십차례 도전해 뽑아냈다. 그 순간에는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것만큼 기뻤다고.

그는 “친구나 손님이 수집해 놓은 라이터를 보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며 “마음에 들어 하는 라이터를 선물하면 대부분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데 그 표정을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뽑기의 달인’이었던 그는 최근 뽑기를 그만뒀다. 이만하면 됐다 싶었단다. 그의 뽑기를 지켜보며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못내 아쉽게 됐다.

박현정 기자 phj@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