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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내 아이 어디에 맡겨야 하나-무상보육 논쟁 속 보육시설 태부족

<ISSUE&TREND>

 

내 아이 어디에 맡겨야 하나

무상보육 논쟁 속 보육시설 태부족

어린이집 대기 경쟁 치열시설 이용 않는 가정, 양육 수당 차별없이 지원해야

 

올해부터 만0~2, 5세 무상보육이 시작됐다. 내년엔 만3~4세로 무상보육을 확대한다고 정부는 밝혔다. 혼선과 논쟁 속에 시행된 무상보육은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무상보육 실시라는 정부의 발표에 만세를 부르는 부모들은 많지 않다. 전업맘은 전업맘대로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차별소외를 느끼고 내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하나하는 고민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맞벌이 부부 무상보육은 남의 얘기

화성에 사는 워킹맘 이은주(35) 씨는 0~2세 무상보육이 누구를 위한 무상보육인지 모르겠다무상보육이다 보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도 되는 가정까지 어린이집에 등록하고 있어 정작 보육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워킹맘들은 무상보육이 되어도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집 주변 어린이집 5곳을 돌아다녀봤지만 만1세 딸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은 없었다. 이미 대기자가 수십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보육여건이 좋은 직장어린이집도 입학 경쟁이 치열하긴 마찬가지. 더욱이 직장어린이집은 재직하고 있는 회사 측과 협약을 통해 매월 일정금액을 사측에서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직장어린이집을 지원하지 않는 회사를 다니는 이 씨는 아이를 입학 시킬 수 없다.

이 씨는 무상보육 전에도 맞벌이부부는 소득이 높아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무상보육에 투입되는 세금은 맞벌이부부들이 많이 내고 있는데 혜택은 외벌이가 받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화성 동탄 A민간어린이집 원장 김모(28) 씨는 무상보육 전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가정의 90%이상이 외벌이였다실제 보육이 필요한 것은 아이를 집에서 돌볼 시간이 있는 전업맘이 아니라 워킹맘이지만 현재 워킹맘이 국가 보육정책의 혜택을 받기에는 어린이집 티오(TO·정원)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보육시설에 다녀야만 무상보육 지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데리고 있는 전업맘들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어린이집에 다녀야만 보육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지금까지 집에서 키우던 엄마들도 보육료를 받으려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28개월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안미정(32·군포 산본동) 씨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전까지 보육시설에 맡기지 않고 내 손으로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그러나 정부는 보육시설에 다니는 아이들만 지원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안 씨는 또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는 가정에는 양육수당을 차별없이 지원해야 한다보육 문제는 시혜가 아닌 보편적 복지로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4세 아이를 둔 부모들의 불만도 크다. 정부에서 내년부터 무상보육을 실시한다고 하지만 올해는 혜택이 없고 내년이 되더라도 보육시설이 대거 확충되지 않는 한 보육시설을 이용하는데 있어 경쟁률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워킹맘 김미경(36·안양 박달동) 씨는 보육시설의 보육이 필요한 적정한 시기도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길 적정한 시기도 만3~4세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올해 만3~4세에 대한 보육료 지원은 쏙 빠져 있고 내년에 무상보육이 실시되더라도 대기순번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 같다고 말했다.

 

도내 1만여명 보육시설 이용 못해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올해 만3~5세 아이들이 도내에 38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기준 유치원 원아 15986명과 어린이집 원아 146,066명을 빼면 올해 도내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입학이 가능한 아이들은 83,000여명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도내 보육시설에서 추가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7만명 수준. 1만여명이 넘는 아이들은 보육시설에 들어갈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내년부터 만3세 무상보육이 실시되면 보육시설 태부족 현상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부모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보육시설 이용 부모들도 보육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틀이 멀다하고 터져 나오는 보육시설 관련 뉴스에 부모들은 가슴을 졸인다.

현재 전국 보육시설 중 국공립 보육시설은 전체 보육시설의 5.4%에 불과하다. 보육의 90%이상이 민간시장에 맡겨져 있다. 엄마들 사이에서 민간어린이집은 복불복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산시 원동에 사는 강미희(36) 씨는 몇달 전 아이를 맡겼던 어린이집의 교사는 14개월 딸아이가 열이 39도까지 끓는 것도 몰랐다바로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겼지만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털어놨다.

강 씨의 동생 원희(33) 씨도 어린이집 사건사고 뉴스가 나올 때마다 과일을 한 상자씩 사가지고 어린이집에 갔었다그 과일이 일주일 내내 아이들 간식으로 제공됐고, 점심시간 불시 방문해 아이 식판을 살폈을 땐 건더기 없는 국, 짠 반찬 등 어떻게 이런 음식을 먹일까 싶었다고 하소연했다.

 

<사진은 기사내과 관련 없음.>

 

일부 어린이집 원생 돈벌이로 활용

어린이집의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아동이나 교사 수를 부풀리고, 정원이나 아동비율을 초과하는 등의 수법으로 보조금을 타내지만 솜방망이 처분에 다시 부정을 저지른 곳도 태반이다. 경북 청도의 한 공립어린이집 원장은 학부모들로부터 받은 견학비와 체험행사비 등을 빼돌려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고, 서울의 한 어린이집은 특기적성교육 업체에 사업권을 주는 대가로 교육비의 80%를 되돌려 받기도 했다.

전직 보육교사 B(35) 씨는 원장의 마인드에 따라 어린이집 서비스와 비용은 천차만별이라며 정부나 지자체의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민간어린이집 중 일부 어린이집은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아이들이 돈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바른 보육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권리금을 수천만원씩 붙여 어린이집을 사고 파는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일부 어린이집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만 체벌이라든지 식자재 문제가 발생해도 부모가 감시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돼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보육과 관련된 공적 인적 인프라가 전혀 구축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상보육 문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라며 보육시설을 지원하지 말고 학부모를 직접 지원하고, 민간시설이라도 학부모와 교사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보육문제는 선진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정 기자 phj@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