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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通

캘빈 클라인-도발적 광고로 청바지 시장 주름잡아

<New Brand>

 

16.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도발적 광고로 청바지 시장 주름잡아

단순한 섹시미 뉴요커 실용 패션지난해 글로벌 매출 88,000억원

 

나와 내 캘빈 사이엔 아무 것도 없어요.”

1980년대초 10대 모델이었던 미국의 인기 여배우 브룩 쉴즈는 청바지를 입은 채 엉덩이를 내민 요염한 포즈로 도발적인 카피를 내뱉었다.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은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이용한다며 캘빈 클라인을 거세게 비난했다. 뭐라고? 노팬티라고? 하면서 충격을 받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캘빈 클라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5년에는 향수 옵세션(obsession)을 광고하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여성을 등장시켰다. 포즈 또한 아주 선정적이었다. 알몸으로 서로 상체와 팔 다리를 휘감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은 캘빈 클라인의 도발에 또다시 들끓었다. 미국 학부모 단체를 비롯 페미니스트 단체 등 여러 보수단체들의 크나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캘빈 클라인은 충격적이고 지나치게 과감한 광고 연출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지만 결국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고, 지금까지 더욱 자극적인 광고를 계속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고정관념을 깬 도발로 브랜드 이름을 널리 알린 캘빈 클라인은 2011년 전 세계적으로 75억달러(8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중 아시아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로 지난해 14억달러(16,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대비 24%의 성장률을 나타냈다. 특히 한국 시장은 3억달러(3,500억원)의 매출로 1년 만에 20% 신장하면서 아시아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CK’라는 브랜드로 패션 비즈니스 제국을 건설한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은 랄프 로렌, 도나 카렌과 함께 생존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패션디자이너다. 1942년 뉴욕 빈민가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캘빈 클라인은 26살 때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1만달러를 빌려 뉴욕 7번가에 자신의 회사를 세웠다. 여성용 코트를 만들어 팔면서 패션계에 입문해 1973년에는 세련됨과 섹시함을 가미한 기성복을 만들어 업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77년 몸에 딱 달라붙는 실루엣의 진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캘빈 클라인의 브랜드 가치는 급상승하게 됐다. 특히 1980년 브룩 쉴즈의 캘빈 클라인 청바지 광고를 정점으로 캘빈 클라인은 미국을 대표하는 캐주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82년에는 ‘CK’ 로고가 크게 새겨진 언더웨어를 출시해 젊은 남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93년에는 남녀가 함께 하는 유니섹스 향수 ‘CK one’을 출시해 대성공을 거뒀다.

캘빈 클라인이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 1990년대에는 청바지 사업을 하다 부도 위기에 몰리기도 하고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서의 권위만큼은 내려놓지 않았다. 캘빈 클라인은 패션계에서 권위 있는 코티 어워드(Coty Award)’73년부터 75년까지 3년 연속 최연소 수상했고, 82, 83, 86년에는 미국패션디자인협회 여성의류 부문을 수상했으며, 93년에는 ‘CFDA 어워드에서 남성·여성의류 두 부문을 석권했다. 96년에는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25에 선정되기도 했다.

캘빈 클라인의 패션에는 단순미와 고급스러움이 공존한다. 고급 소재를 사용해 현대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을 만든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캘빈 클라인의 옷은 검정과 자연색을 주색으로 무난하고 실용적이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캘빈 클라인은 현재 캘빈 클라인 컬렉션‘CK 캘빈 클라인’ ‘CK캘빈클라인 진즈웨어는 물론 홈컬렉션, 언더웨어, 향수 그리고 아이웨어까지 총괄하는 글로벌 대단위 사업체로 자리매김했다. 현란한 찬사와 혹독한 비난을 동시에 받아온 캘빈 클라인은 세상에 대한 도발을 현재도 멈추지 않고 있다.

박현정 기자 phj@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