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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역사기행-화성 용주사(龍珠寺)

경기도 역사기행

 

화성 용주사(龍珠寺)
정조의 애틋한 사부곡 사찰로 탄생
천년 역사 갈양사터에 창건… 여의주 문 용꿈에서 이름 유래

 

대웅보전. 1790년 건립된 대웅보전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원과 화성에는 숱한 문화유적이 담겨 있지만, 특히 조선 제22대 정조대왕과 관련된 유적이 유명하다. 수원 화성(華城)과 정조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융건능, 그리고 이를 기리기 위한 능사(陵寺)로 창건된 용주사(龍珠寺)는 서로를 떼놓고 이야기 힘들만큼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
용주사는 융건능 동편에 위치해 있다. 능 경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진 않지만 능 입구에서는 거리가 제법 된다. 정확히는 화성시 송산동 화산(華山) 기슭에 있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산기슭이라고 하기에 어색함이 있지만, 융건능을 조성할 시기만 해도 제법 괜찮은 풍광을 지닌 사찰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주문. 문이라기보다는 한옥의 대문을 연상시킨다. 안쪽으로 사천왕상이 놓여 있다.

 

일주문에서 용주사로 가는 길. 주변으로 비석과 돌탑이 줄지어 있다.

 

 

사도세자 능사로 창건
원래 융건능이 있던 자리에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 창건되어 고려 광종 3년(952년)에 소실된 갈양사(葛陽寺)가 있었다.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을 화산으로 옮긴 후 갈양사 터에 용주사를 창건해 능사로 삼고 명복을 빌었다. 그때가 정조 14년(1790년)이었다. 당시 정조는 이 사찰을 세우기 위해 전국 팔도 관민의 시전(施錢) 8만7,000냥을 거두어 4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145칸이었다.
용주사란 이름은 낙성식 전날 밤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고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용주사는 창건과 동시에 전국 5규정소(糾正所:승려의 생활을 감독하는 곳)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했으며, 팔로도승원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하는 역할이 주어졌으며, 창건을 맡았던 보경(寶鏡)에게는 도총섭의 칭호를 주어 절을 주재하게 했다.

 

 

 천보루와 나유타료. 오른쪽으로 꽉찬 건물이 천보루, 왼편 멀리 보이는 건물이 나유타료다. 나유타료는 총면적 86평으로 현재 대중회의때 사용하는 큰 방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여지고 있다.

 

용주사 풍경. 사찰의 고요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국보 등 숱한 문화재 소장
용주사를 처음 찾은 사람은 여느 사찰과 다른 일주문에서 색다름을 느끼게 된다. 흔히 일주문하면 두 개의 기둥으로 지탱하는 전각을 연상하지만 용주사의 일주문은 기와집의 형상을 하고 있다. 용주사란 현판 아래로 난 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사천왕상이 서 있고, 문을 나서면 돌탑과 비석이 서 있는 한적한 오솔길을 만나게 된다. 비석에는 뜻을 알기 힘든 한자들이 새겨져 있다.
사찰로 들어서는 삼문 왼편으로 효행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삼문을 들어서면 대웅전으로 통하는 천보루와 그 앞에 서 있는 세존사리탑을 만나게 된다. 천보루는 2층 누각으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보루 아래를 통과하면 넓은 마당 맞은편으로 대웅보전이 한 눈에 들어온다. 1790년 건립된 대웅보전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주사에는 총 23개의 건물과 불탑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문화재로는 국보 제120호인 범종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1호인 금동향로, 제12호인 청동향로, 제13호인 상량문, 제14호인 전적수사본, 제15호인 병풍, 제15호인 대웅전 후불탱화. 제17호인 동판·석판·목판의 불설부모은중경판 등이 있다.

 

 

용주사 입구의 비석. 계학(戒學)을 쓴 듯하다. 계학은 삼학(三學)의 하나로 부처가 제정한 계율을 배우는 것을 뜻하며, 몸, 입, 마음으로 짓는 악업을 방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용주사에서 만나는 정조의 효심
요즘 용주사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수원 화성의 정교한 아름다움에 취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돌아봐야할 것이 있다. 바로 정조의 효심이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며 화성을 건축했고, 천도까지 꿈꿨던 정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융건능이고, 용주사다. 융건능에 오면 정조와 사도세자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잘 보존된 능원의 숲을 걸으며 사색에 잠겨보고, 되돌아 나오는 길에 용주사에 들러 정조의 효심을 만나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용주사를 둘러보고도 여유가 있다면 인근의 독산성을 들러 볼 수도 있다. 독산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의 시발점이 된 자그마한 산성이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감싸고 있는 작은 산성에 얽힌 큰 이야기처럼, 우리의 주변의 작은 바위 하나에도 역사의 발자취가 새겨져 있다.
겉으로만 볼 것인가, 그 속에 담겨 있는 역사의 의미까지 함께 볼 것인가. 마주한 이의 선택의 문제다.

 

이신덕 기자 oponce@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