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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通

우리 회사 최고人-메탈다인코리아 박연홍 사원

우리 회사 최고人

 

禁男의 일터, 열정으로 최고가 되다
메탈다인코리아 박연홍 사원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녀가 지금 남자들도 어려워하는 자동차부품 공장 생산라인에서 쇠와 함께 씨름을 하고 있다. 자동차 엔진부품을 만드는 외국인투자기업 메탈다인코리아 생산부 최초의 여성조장 박연홍(36) 씨가 그 주인공이다.
자동차부품제조업체의 생산라인에 여성이 근무하는 것은 보기 어렵다. 다른 제조공장 생산라인과 달리 자동차 부품, 그것도 엔진부품은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박연홍 씨는 10여명의 직원을 관리하는 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가 맡고 있는 곳은 ‘R엔진 BSM 조립라인’이다. 메탈다인코리아 이기석 이사는 “생산라인 어느 곳에 투입되더라도 업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원”으로 그를 평가했다.
박연홍 씨의 당찬 기록은 메탈다인코리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첫 직장은 조선소였다. 그곳에서 그의 업무는 용접 로봇의 오퍼레이터였다.
“당시 용접 로봇이 처음으로 도입되어 오퍼레이터를 모집했는데, 거기에 응시해 합격하고 운용 교육을 받은 뒤 오퍼레이터를 2년 정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장비가 모두 팔려 나갔어요. 그 뒤 2년간은 직접 용접을 했습니다.”
용접은 조선소에서 가장 중요한 현장 업무고 남자들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잡혀 있는 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박연홍 씨는 여상을 졸업했다는 점. 그런 그가 용접 자격증을 딴 이유는 간단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용접 일을 그만 둔 이유는 사고로 동료가 사망하는 것을 목격하면서였다. 그는 “20대 후반에 겪은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됐다”고 했다.
조선소를 나오면서 그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해졌다. 인테리어 회사에서 시공기사로 1년간 근무했고, 옷가게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옷가게를 운영하다가 실패해 빚을 지고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로 빚을 청산하는 뚝심도 보였다.
빚을 갚고 나서 경기도로 올라왔다. 그는 “좋은 직장을 찾아서”라고 했다.
“평택 인근의 제조업체를 두루 근무했습니다. 그러다가 같이 근무하던 여직원이 메탈다인코리아에 입사지원서를 낸다고 해 ‘괜찮은 회사냐’고 물었더니 업계에서 알아주는 좋은 회사라더군요. 그래서 같이 지원하게 됐죠.”
그러나 박연홍 씨의 첫 메탈다인코리아 근무는 계약직이었다. 6개월 후 성실함을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때가 2005년 5월이었다. 메탈다인코리아가 막 공장 준공을 끝내고 생산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시작된 메탈다인코리아에서의 근무가 이제 8년째가 됐다. 지난해 4월 그는 조장대리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 1월 정식으로 발령을 받았다.
“우리 회사는 경영진, 사무직, 생산직 간의 차별이 거의 없습니다. 가족적인 분위기도 너무 좋아요.”
밝고 씩씩해 보이는 그에게도 남아 있는 아쉬움이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기회가 주어지면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젠 희미해졌지만 어릴 때 가졌던 화가의 꿈도 여전히 꾸고 있다고.
“가장 치열했던 때가 조선소에 근무할 때였어요. 2,000명 직원 중 여자는 10명이 안됐으니까요. 그 남자들 틈에서 살아남으려면 치열할 수밖에 없어요.”
박연홍 씨의 열정과 꿈, 그리고 도전이 보다 큰 열매로 맺어지길 기원해본다.

 

이신덕 기자 oponce@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