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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通

역사가 된 기업 이야기 | ⑤ 영국 버진그룹

열정과 도전 ‘창조경영’의 상징
1967년 리처든 브랜슨 창업…항공,금융,우주여행 등 350여개 계열사 거느려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서는 우주선 ‘스페이스십2’의 시험 비행이 이뤄졌다. 지상에서 1만5,000m까지 올라간 대형 운반기 ‘화이트나이트2’에서 관광우주선 ‘스페이스십2’가 떨어져 나왔고 우주선은 순식간에 음속의 1.2 배로 솟아올랐다. 로켓이 불을 뿜은 16초 동안 1만7,000m까지 도달한 우주선은 이후 활강으로 캘리포니아주 모하비사막 비행장에 가뿐히 착륙했다. 지상에선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우주여행의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모두가 불가능을 하다고 말한 우주여행을 현실로 실현시키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버진갤랙틱 (Virgin Gallactic)’.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이 기업은 영국인 사업가 리처드 브랜슨이 키워낸 글로벌 기업 버진그룹 소속이다.

‘괴짜’가 창업한 기업
콜라에서 와인, 웨딩드레스, 모바일, 책, 만화, 애니메이션, 금융, 비행기, 기차, 심지어 우주여행까지. 버진그룹의 사업 영역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범위하다. 1967년 리처드 브랜슨이 설립한 버진그룹은 현재 버진애틀랜틱, 버진오션, 버진트레인, 버진모바일, 버진미디어, 버진머니 등 세계 30여개국, 350여개 계열사, 연간 매출액만 200억달러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다. 특히 이 기업은 창업자 리처든 브랜슨의 남다른 경영방식으로 더 유명하다.
기존의 경영전략과 마케팅 불문율을 깨는 새로운 방식의 사업 스타일 덕분에 브랜슨은 ‘모험을 즐기는 괴짜’, ‘히피적 자본가’, ‘엔터테이너 CEO’로 불리고 있다. 1950년 런던 교외의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브랜슨은 학창시절, 난독증 때문에 읽고 쓰는 것이 어려워 교사들에게 공부를 못하는, 학생으로 취급당했다. 대신 스포츠에 몰두한 브랜슨은 친구들과 함께 팀을 구성, 미식축구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된 브랜슨은 17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첫 사업은 <스튜던트Student>라는 학생 잡지였다. 브랜슨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잡지를 발행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며 “학교의 교육방식이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젊은 패기에 그것들을 바로잡고 싶었다”라고 사업 동기를 밝혔다.
스튜던트의 주 내용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불합리한 관행 등을 비판하는 것으로 일종의 저항 잡지였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수익성 측면에서 이 잡지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브랜슨은 학생 잡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 다. 잡지 판매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학생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음반을 사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또 음악을 듣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버진(virgin)’의 탄생
브랜슨은 1967년 동료들과 함께 우편 할인판매를 시작했다. 회사 이름은 처음 사업을 해본다는 뜻에서 ‘버진(virgin·처녀)’이라고 붙였다. 버진그룹의 시초인 버진레코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버진레코드는 롤링스톤스, 필 콜린스, 재닛 잭슨 등과 잇따라 계약하면서 세계 최대 독립 음반사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브랜슨은 우체국의 파업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우편 판매 모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브랜슨은 다른 대형 음반 판매업체와의 차별화를 고민해야 했다.
‘매장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편안한 분위기에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옥스퍼드 가에 자리 잡은 최초의 버진음반 매장에는 푹신한 방석과 함께 학생들이 돈을 지불하기 전 음반을 들어볼 수 있는 부스를 갖췄다. 학생들이 와서 편안히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버진 매장은 곧 학생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갔다. ‘커피’가 아니라 ‘문화’를 판 스타벅스가 나오기 한참 전에 브랜슨은 이미 ‘음반’이 아니라 ‘즐거움’을 판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이 전략은 적중했다.
버진레코드의 매출은 대형 레코드사를 압도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음반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그는 나이트클럽, 영화 배급, 게임 소프트웨어, 호텔에 이어 항공사업까지 손을 댔다.

사업 성공의 핵심 ‘재미’
어느 날, 휴가를 즐기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브랜슨은 무슨 이유인지 비행기가 취소된 사실에 난감했다. 공항에는 비행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여기저기 배회하고 있었다. 이를 본 브랜슨은 2,000달러에 비행기 한 대를 전세 냈고 이 비용을 승객 수로 나눴다. 한 사람당 39달러. 그는 큰 칠판을 빌려서 이렇게 썼다. ‘버진 항공사, 푸에르토리코행 편도 39달러’ 이것이 버진항공을 시작하게 된 최초의 아이디어였다.
다른 회사가 운행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매번 행복한 경험보다는 끔찍한 경험을 해야 했던 브랜슨은 새로운 항공사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랜슨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버진뮤직에서 파트너들과 회의를 가졌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파트너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말했다. 당시 버진뮤직은 컬처클럽(Culture Club) 같은 밴드들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브랜슨은 항공사를 시작하는 데 소요되는 자금은 버진뮤직이 벌어들이는 한 해 수익의 3분의 1 미만이라고 설명하며 비율상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고 게다가 재미도 있을 거라고 강조했다.
브랜슨은 계속해서 열정과 믿음 그리고 사업 감각을 총동원해 그들을 설득해 나갔다. 결국 파트너들은 마지못해 동의를 했다. 새로운 항공사의 이름을 버진에서 차용해 ‘버진애틀랜틱’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직접 몸으로 광고하라
당시 버진애틀랜틱은 팬앰, TWA, 브리티시 항공 등 어마하게 돈이 많은 항공기업들과 경쟁을 해야만 했다. 시작 당시 작은 규모로 출발한데다가 모든 자원을 항공사업에 쏟아붓는 형편이어서 광고나 투자를 할 여력이 없었다.
브랜슨은 “내가 직접 나서서 회사를 알려야 했다”며 “버진을 신문 1면에 올리기 위해서 여러 해 동안 별의별 미친 짓을 다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버진이라는 이름으로 도배한 열기구를 타고 성층권까지 올라가는가 하면, 웨딩숍 버진브라이드를 광고할 때는 그가 직접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버진콜라를 출시할 때는 미국의 상징인 코카콜라를 제압하겠다며 뉴욕 한복판에 탱크를 몰고 들어가 코카콜라 간판에 대포를 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그밖에도 수십 가지가 넘는 대담한 묘기를 펼쳤다.
1984년 버진애틀랜틱이 출범했을 때 1년 이상을 버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음반사 사장이 항공사를 운영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코웃음을 쳤다. 미국의 대형항공사 사장들도 버진항공은 반드시 실패할 거라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브랜슨은 그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그가 설립한 버진애틀랜틱은 기존 항공사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일등석을 없애고 저렴한 요금의 ‘어퍼 클래스(upper-class)’를 선보였고 이 어퍼 클래스 승객에게는 다른 항공사 1등석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기내에서 비디오, 음악, 게임은 물론 목욕, 미용, 무료 안마, 동호회 모임까지 즐길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런 혁신적 서비스를 통해 버진항공은 매년 항공사들에게 수여하는 각종 상을 휩쓸며 버진이란 브랜드의 명성을 크게 높였다. 오늘날 버진애틀랜틱은 전 세계 약 300곳을 운항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질주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리차드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왼쪽)과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그룹 회장이 F1서킷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 날 토니 회장과의 내기에서 진 브랜슨 회장은 지난 5월 12일 여장을 하고 에어아시아의 일일승무원으로 근무했다.

우주여행에 도전
브랜슨은 버진이란 브랜드로 무차별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인터넷, 식품, 금융 등 버진의 계열사만 무려 350개가 넘었다. 그러나 그의 사업 다각화 방식은 ‘은행에서 대출받아 회사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 ‘버진이란 브랜드 사용권을 주고 경영전략을 수립해 주는 대신 주식을 제공받는 방식’이었다. 고객에게 ‘색다른 가치’를 준다는 기업 브랜드와 명성을 팔아 사업을 넓혀 온 것. 이런 브랜슨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사업이 바로 우주여행이다.
브랜슨은 민간우주여객사인 버진갤랙틱(Virgin Galactic)을 통해 2014년 출발을 목표로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여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969년 TV로 지켜본 인간의 달 착륙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하던 브랜슨은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뤄보겠다며 2004년 우주관광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난관에 부딪혔다. 기존 우주여행은 지상에서 쏘아 올리는 로켓을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수백억원씩 비용이 든 것은 물론 탑승 기회도 제한됐다. 어지간한 체력으론 감당이 어려워 특수훈련도 받아야 했다. 고심하던 그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벤처기업 ‘스케일드콤포지츠’란 회사가 대형 운반기에 우주선을 실어 고공으로 올라간 뒤 하늘에서 우주선 로켓을 점화시켜 우주비행을 성공시켰다는 뉴스였다.
무릎을 친 브랜슨은 곧바로 스케일드콤포지츠로 달려갔고 조종사 한 명이 탔던 우주선을 개량해 두 명의 조종사와 6명의 승객이 탈 수 있는 ‘스페이스십2’를 만들었다. 동체가 커지고 승객 수도 늘어난 만큼 더 큰 운반기와 더 강력한 로켓 엔진이 필요했다. 그러나 2007년 첫 비행을 목표로 무리하게 로켓 엔진 시험을 하다 폭발사고가 나 세 명이 숨지는 암초를 만났다. 이를 복구하고 지난 4월 시험비행에 성공하기까지 6년이 더 걸렸다.
버진갤랙틱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첫 상업비행에 나설 예정이다. 우주경계선인 지상 100㎞까지 올라간 승객은 캄캄한 우주공간에서 5~6분 동안 무중력 상태로 지구를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브랜슨은 “8년 전 아무도 믿지 않았던 우주관광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말했다.
20만달러에 달하는 버진갤랙틱의 우주관광 탑승권엔 이미 560여명이 2만달러씩 계약금을 내고 대기 중이다. 그중엔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할리우드 스타 커플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톰 행크스 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시작하라(Just do it)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도 ‘무슨 일이든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무슨 일이든, 그 일이 얼마나 어려워 보이든 개의치 말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브랜슨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얻은 최고의 교훈은 ‘당장 시작하라(Just do it.)’라고 말한다. 살면서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시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목표에 도착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바로 지금 그 첫발을 내딛어라’고 말하며 도전을 강조한다. 버진그룹의 직원들 사이에서 브랜슨의 별명은 ‘예스맨(Dr. Yes.)’이다.
그는 “이는 분명 내가 어떤 질문이나 요청 또는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하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것 때문에 생긴 별명일 것”이라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이익을 얻는 방식이다. 직원들의 일과 아이디어가 존중받고, 그것을 통해 직원들은 자신감을 얻으며, 버진그룹은 그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윤을 취한다”라고 밝혔다.
버진그룹은 “용기를 내서 일단 해보자!”라는 그의 좌우명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이미영 기자 l misaga@gfe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