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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通

COVER STORY| 21세기 연금술 3D 프린팅1



집집마다 한 대씩 있는 레이저프린터는 2차원 문서 출력용이다. 그런데 머지않아 문서가 아닌 3차원 입체 물건이 인쇄되는 3D프린터가 개별 가정에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컴퓨터로 작성된 물체의 3차원 설계도에 따라 잉크 대신 고분자 물질이나 플라스틱, 금속가루 등을 뿜어내 입체형 물건을 인쇄하 듯 만들어 내는 3D프린터의 등장으로 다양한 맞춤형 제품과 부품 제작이 가능해졌다. 제조업 에 혁명을 가져올 3D프린팅의 현황과 전망 등에 대해 알아본다.

■ 글 l 박현정 기자 phj@gfeo.or.kr



 

제3차 산업혁명 온다
3D프린팅, 상상 그 이상의 것 창출
2019년 65억달러 시장규모로 성장… 한국 아직 걸음마 단계


 

2006년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미션임파서블Ⅲ’에는 주인공(톰 크루즈)이 컴퓨터에 얼굴을 찍은 사진파 일을 입력해 즉석에서 특수도구를 사용해 변장용 가면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이 장면이 2013년 현실 속에서 가능해졌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이른바 ‘3D프린터’의 등장에 따른 것이다

디자인 파일 + 혼합재료 = 무궁무진
최근 제조업계에서 핫한 ‘3D프린팅’은 증기기관, 전기에 뒤이어 제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킬 강력한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3D프린팅은 디지털 디자인 데이터를 이용해 특수소재를 적층하는 방식으로 3차원 물체를 인쇄하듯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3D프린터가 있으면 과거 물건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잘라 내거나 금형을 만들어 주조할 필요가 없어진다. 정교한 디자인 파일과 혼합재료가 확보되면 3D프린터는 신발, 안경테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등의 악기, 카메라와 렌즈, 집과 자동차, 음식과 장기 등의 생체조직까지 무궁무진하게 프린트할 수 있다.
올해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년 연두교서를 통해 3D프린터를 통한 제조업 혁명을 미국 경제의 키워드로 만들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3D프린터는 지금까지 만들어 온 모든 것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잠재성을 갖고 있다”며 “미국에서 3D프린터를 기반으로한 새로운 산업이 탄생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 이후 3D프린터는 녹색에너지를 잇는 미국의 차기 핵심산업으로 부상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를 비롯 몇몇 유력 매체들도 3D프린팅 기술에 주목하고 있고, 산업현장에서 주로 활용되던 3D프린터의 가정용 보급이 시작되면서 3D프린터 시장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연평균 9%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
컨설팅 기관 홀러스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전 세계 3D프린팅 시장 규모는 현재 22억달러에서 2015년 37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에는 65억달러까지 연평균 9%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3D프린팅 시장은 3D프린터의 재료, 소프트웨어 등의 가치를 더할 경우 2019년 133억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3D프린팅 시장에서 최종 완성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지만 2020년엔 50%까지 늘어날 전망이고, 다양한 산업과 개인 고객들의 수요가 늘면서 3D프린팅 시장규모는 급속히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제조업 시스템은 표준화와 자동생산 공정 등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낸다. 생산비용은 낮지만 재고부담이 있고 고객 맞춤형 소량 주문제작은 어렵다. 하지만 3D프린터를 이용하면 제품을 소량생산하건 대량생산하건 제조비용이 변함없기 때문에 재고관리 부담이 없다. 정밀한 제품이나 단순한 제품의 생산 비용도 동일하다. 컴퓨터로 출력하기 때문에 별도의 인건비도 필요 없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의 맞춤 생산이 가능하다.
특히 3D프린팅 기술은 자본과 시간, 인력 등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시제품 제작에 유용하다. 컴퓨터로 디자인하고 그 데이터를 직접 프린트함으로써 제품 생산과정이 훨씬 단순해져 제품 연구개발에 필요한 반복작업과 실험시간 및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시험기기 설비 전문업체인 서울산업기술㈜의 오상택(50) 대표이사는 “3D프린터를 이용해 부품 제작을 해본 결과 시간과 비용이 대폭 절감됐다”며 “생산성 향상은 물론 아이디어를 손쉽게 실체로 구현해낼 수 있어 미래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조, 건설, 의료 등 전방위 확대
현재 3D프린터는 산업분야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주로 휴대폰, 카메라 등의 시제품을 출시하기 전 똑같은 모형의 ‘목업(moke-up)’ 제품을 만들어 디자인을 점검하는데 쓰인다. 애플, 로지텍, 재규어, 이케아 등 유명한 제조업체들은 이미 3D프린터를 사용하고 있다. 잉크의 종류가 합성수지, 티타늄 분말, 콘크리트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3D프린터를 활용하는 산업분야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버지니아 공대, 뉴올리언스 대학교,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 등 전 세계 유수 대학과 국내의 서울대학교, 카이스트 등에서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교육용 도구로 3D프린터를 사용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3D프린터를 이용해 인공 턱뼈와 치아 모형을 만들고 연골, 신장 등 인간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 프린팅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수술할 때 위험 부담이 컸던 고난도 성형수술, 의수 의족 등과 같은 의술에 3D프린터 활용이 기대되고 있다. 이 밖에도 애니메이션, 엔터테인먼트, 완구류, 패션 등 거의 모든 분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3D스캐너 및 디자인 도구의 발전으로 3D프린팅 기술이 단기 제조 분야를 포함해 건설, 엔지니어링, 토목, 의료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가정용 3D프린터 보급으로 대중화 조짐
최근 가정에서도 쓸 수 있는 저가 보급형 제품이 등장하면서 3D프린터는 대중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MIT미디어랩에서 독립한 폼랩은 300만원대 보급형 3D프린터를 내놓았고, 메이커봇은 1,749달러(196만원)짜리 3D프린터 ‘리플리케이터’를, 3D시스템즈는 1,299달러(145만원)짜리 3D프린터 ‘큐브’를 출시했다. 미국 아마존은 6월부터 3D프린팅 스토어를 신설하고, 개인용 3D프린터와 원료는 물론 각종 소프트웨어 부품, 서적 등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3D 캐드도 등장했다. 구글의 ‘스케치업’, 오토데스크의 ‘오토데스크 123D’ 등의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일반인들도 쉽게 3D 디자인을 설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8.1버전부터 캐드 등 전문가용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고도 3D프린터를 이용할 수 있는 3D프린팅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처럼 3D프린터가 대중화 조짐을 보이면서 1인 제조업의 활성화도 기대되고 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공장이 없어도 누구나 제품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디지털 디자인이 3D프린터와 결합, 원하는 물체를 대규모 자본 없이도 생산할 수 있어 획기적인 소규모 비즈니스가 가능해진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3D로보틱스의 CEO 크리스 앤더슨은 “디자인 기술의 민주화로 누구나 스스로 제조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며 “창의력과 혁신을 통해 인류사회가 새롭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기 불법 생산 등 부작용도
그러나 이처럼 기대치가 높은 3D프린팅도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3D프린팅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어 완성도나 강도, 정밀도 등에서 기존 생산공정보다 뒤쳐진다는 평가가 있다. 결국 3D프린터의 핵심기술은 상세한 작업을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하느냐에 달렸다.
또 복제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제품 디자인에 대한 특허 및 저작권 침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불법 무기 생산, 열쇠 복제 등에 3D프린팅 기술이 악용될 가능성이 있어 문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지난 5월 4일 세계 최초로 3D프린터로 제작한 권총의 시험 발사가 성공했다. 미국 정부는 온라인에 최초로 3D프린터 권총 설계 도면을 게재한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Defense Distributed)에 대해 설계 도면을 내리라고 지시했으나 이미 널리 퍼져나간 후였다. 7월에는 캐나다에서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를 보고 3D 22구경 소총을 만들어 발사에 성공한 남성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3D프린팅 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3D 프린팅산업 발전전략 포럼’ 발대식을 열고, 산·학·연·관 관계자 50여명으로 구성된 제도, 기술, 산업응용·사업화 분과위를 구성, 운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분기까지 3D프린팅 산업을 정책화할 방침이다.
김재홍 산업부 1차관은 “3D프린팅 기술이 주력산업과 제조업의 패러다임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3D프린팅 산업 발전방안을 마련해 기술 국산화·산업생태계 조성 등에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3D프린터 활용도는 2.2%로 걸음마 단계다.(표참조) 현재 대기업은 손을 대지 않은 불모지로 인스텍, 캐리마, 오픈크리에이터즈, 로킷 등 소수의 3D프린터 제조업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국 3D프린팅 산업 현황
정부 주도 연구소 설립하고 투자금 늘리고


 



미국 컨설팅기관 홀러스어소시에이츠(Wohlers Associates)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세계 3D프린터 누적 점유율을 미국이 38%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일본(9.7%), 독일(9.4%), 중국(8.7%), 영국(4.2%) 등이 뒤따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2.3%로 8위다.
현재 3D프린팅 산업의 중심이 되고 있는 미국은 포스트 제조업 혁명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3D프린팅의 성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제조업 혁신 정책의 일환으로 지난해 8월 오하이오 주에 민관공동혁신재단으로 3D프린팅 관련 연구소인 NAMII를 설립했고, 앞으로 15개의 새로운 연구시설을 더 설립할 계획이다. 또한 정부 3,000만달러와 민간참여 컨소시엄 4,000만달러의 투자자금을 모아 3D프린팅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EU 역시 2020년까지 GDP의 제조업 비중을 16%에서 20%로 늘릴 계획을 세웠으며, 대안으로 3D프린팅을 언급했다. 저성장기조와 실업률 문제를 해결할 견인차로 3D프린터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3D프린팅이 항공에서 주얼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기술로 평가하면서 기술전략위원회를 통해 700만파운드(약 12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2010년에는 영국 노팅엄대와 세필드대 등 3D프린터 연구센터를 만들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20여 대의 3D프린터를 설치해 기술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 국제 생명공학 전시회를 통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3D프린터로 만든 인공혈관을 공개하기도 했다.
중국의 기세도 무섭다. 중국은 에너지 절약, 자원 절감, 생산성 향상을 위한 대안 중 하나로 3D프린팅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베이징에 주요 교육기관, 협회, 기업 등이 참여한 ‘3D프린터 기술산업연맹’을 설립해 산관학 협력으로 산업표준을 제정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정부도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10개 도시에 ‘3D프린팅 혁신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중국 쿤산에는 20여개 3D프린터 개발회사와 연구소들이 밀집해 있다. 칭화대학교 연구진이 만든 베이징타이얼은 2011년에만 3D프린터 3,000만대를 판매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 4%를 기록했다.
일본은 제조산업 육성에 1조엔(12조2,0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정부와 기업, 대학이 손잡고 차세대 3D프린터 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캐릭터, 피규어 등이 발달한 일본은 중소 3D프린팅 회사를 중심으로 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의료분야에서 3D프린팅 기술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교토(京都)대학 iPS세포연구소와 도쿄대학은 인체에서 형상이 가장 복잡한 귀의 연골을 3D프린터로 만든 다음 유도만능줄기(iPS)세포를 주입해 귀를 재생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iPS세포와 3D프린팅 기술을 재생의료에 활용하는 것은 세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