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通

[화차(火車)] 현실감 있는 스릴러, 곱씹을수록 소름

‘소설이나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
매주 토요일 TV에서 방영되는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이 프로그램은 현실에서 발생한 사건과 사건 속 범인의 행적을 쫓아 사건을 재구성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그 일렬의 과정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어떤 공포소설 혹은 스릴러 영화보다 현실이 주는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지난 3월 8일 개봉한 영화 <화차>에 대한 감상이 그랬다. 영화를 본 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소름이 돋았다. 영화 <화차>의 느낌은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볼 때마다 느꼈던 오싹함과 닮았다.

<화차[火車]: 생전에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을 향해 달리는 일본 전설 속의 불수레. 한번 올라탄 자는 두 번 다시 내릴 수 없다.>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약혼녀가 사라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사라진 약혼녀인 선영(김민희)을 찾기 위해 문호(이선균)는 동분서주 해보지만 그녀를 찾을 어떤 방법도 없다. 급하게 이사한 흔적이 역력한 그녀의 집 안엔 지문조차 남아 있지 않다. 문호는 전직 형사인 사촌형 종근(조성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종근과 문호는 선영의 행적을 쫓다가 이상한 점들을 발견한다. 그녀의 이름, 나이, 주민등록번호 그 모든 것이 거짓이며, 서류에 남은 필적과 사진도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 그녀의 행적을 뒤쫓던 종근은 문호의 약혼녀가 단순 실종사건이 아니라 살인사건과 관계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발레교습소>의 변영주 감독이 7년 만에 돌아와 메가폰을 잡은 영화 <화차>는 일본 ‘미스터리의 여왕’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1992년 출간된 소설은 버블경제 붕괴 후 199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신용불량, 개인파산, 사채, 주택담보대출 등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의 이면과 병폐를 미스터리하고 치밀한 스토리로 날카롭게 풀어낸다. 소설 <화차>는 사회주의 미스터리의 걸작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이다.

미스터리·스릴러 장르에서 유명한 원작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이미 결말이 노출됐다는 점에서 쉬운 작업이 아니다. 미스터리 장르에서 흔히 사용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에 대한 궁금증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수법은 애초에 포기해야 한다. 원작의 틀은 유지하되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아닌 관객들을 몰입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변 감독이 선택한 카드는 사라진 약혼녀를 찾는 문호라는 캐릭터이다. 소설에서는 초반에 등장해 주인공인 혼마 형사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사라지는 이 역할이 영화에서는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에 대해 변 감독은 “원작의 주인공 혼마 형사와는 다르게 사건의 중심인물인 그녀를 사랑하며 그녀를 잘 알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을 이야기의 축으로 놓게 된다면 해석의 영화가 아니라 체험의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소설 속 주인공인 혼마 형사가 사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따라가는 입장이라면 영화 속 주인공인 문호는 자신에게 닥친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당혹감, 분노, 공포를 여실히 체험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문호의 감정들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이 사건이 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선사한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가 주는 공포. 이는 미스터리 영화 <화차>가 가진 힘이다.

실제로 사채 빚에 시달리던 여자가 다른 사람을 죽이고 그 여자의 대리 인생을 산다는 <화차> 속 이야기는 지난 2010년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지난 3월 3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남의 인생을 훔친 한 여자의 진실’ 편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20대 여성과 보험금을 타기 위해 그 여성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살아온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제일 무서운 것은 현실이다. 괴물 같은 살인자, 피 튀기는 칼부림이 없어도 영화 <화차>가 무서운 이유다.